[토요칼럼] 신용점수 인플레이션
나의 무언가를 타인으로부터 점수로 평가받는 건 썩 달가운 일은 아니다. 때론 잔인한 일이기도 하다. 직장인에게는 상사의 인사 고과가 그렇겠고, 자영업자에겐 손님의 별점이 비슷하겠다.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절대 피할 수 없는 점수가 하나 더 있다. ‘개인 신용점수’다. 신용평가라는 사업은 1800년대 미국에서 탄생했다. 현금 거래를 고집하던 루이스 태펀이라는 섬유 판매상이 ‘다른 상인들의 신뢰도를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나름의 방식으로 정보를 축적하다가 1841년 차린 신용평가 회사가 시초다. 가장 성공한 신용평가 회사인 무디스는 1900년 설립됐다. 미국 최초로 200여 개 철도채권에 신용등급을 매겼는데, 무디스가 우량하다고 평가한 기업은 대공황 때 전부 살아남은 덕에 명성을 얻었다. 우리나라에는 1985년 기업 대상 신용평가가 먼저 도입됐다. 외환위기라는 경제적 재앙이 역설적으로 신용평가 시장을 키운 계기가 됐다.

개인을 대상으로 한 신용평가는 카드 사태가 온 나라를 집어삼킨 2003년을 기점으로 시작됐다. 이전까진 연체를 금액과 기간에 따라 주의, 황색, 적색 정도로 단순하게 분류했다. 하지만 이때부턴 1점부터 1000점까지 세분화한 점수를 통해 개인별 상환 능력을 한층 정밀하게 평가하게 됐다.
[토요칼럼] 신용점수 인플레이션
‘저 사람에게 돈 빌려줘도 괜찮은가’를 판단하는 작업은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하다. 호기롭게 뛰어들었다가 피를 본 핀테크 기업이 적지 않다. 대학생을 겨냥해 50만원 소액 대출을 운영하던 A사 대표는 “분명 성실해 보였는데 연락 끊고 군대 가버리는 학생이 그렇게나 많더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신 파일러(thin filer)에게 30만원 신용구매 한도를 내줬던 네이버와 카카오도 상상 이상의 연체율을 받아들었다. 신용점수를 앞서는 대안은 아직까진 없는 셈이다.

그런데 금융권에서 “개인 신용점수, 이젠 못 믿겠다”는 말이 적잖이 나온다고 한다. ‘신용 인플레이션’ 현상 때문에 변별력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NICE평가정보에서는 46.9%, 코리아크레딧뷰로(KCB)에서는 44.2%가 900점을 넘었다(지난해 말 기준). 국민 절반이 최상위 등급인 것이다. 금융권 싱크탱크들은 그 원인을 분석하는 보고서를 여러 번 냈는데,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 번째는 “국민들이 과거보다 신용 관리를 열심히 한다”는 것이다. 2000년대에는 내 신용점수를 확인하려면 돈을 내야 했다. 결과에 이의를 달 수도 없는, 일방적인 ‘답정너’ 평가이기도 했다. 핀테크산업의 발달이 이걸 바꿔놨다.

토스와 카카오뱅크를 비롯한 금융 앱들이 신용평가회사에 비용을 대신 지불하고 무료로 조회할 수 있게 해주면서다. 국민연금, 건강보험, 통신비 등의 납부 내역을 대신 제출해 점수를 올려주기도 한다. 손님몰이용 마케팅으로 출발한 것이지만, 신용을 적극 관리하는 건전한 습관을 젊은 층 사이에 정착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두 번째는 “정부가 연체자를 주기적으로 구제해줬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10만 명의 연체 기록을 삭제한 적이 있고, 코로나19 사태 이후 판이 더 커졌다. 2021년 문재인 정부는 250만 명, 2024년 윤석열 정부는 290만 명을 대상으로 ‘신용 사면’을 단행했다. 원래는 밀린 빚을 다 갚아도 연체 기록이 신용평가회사에 5년까지 남는다. 그 이력을 자꾸 지우니 점수가 상향 평준화한다는 것이다. 현재 5대 대형 은행이 대출을 내주는 소비자의 평균 신용점수는 944.2점까지 올라왔다(6월 기준). 강제로 끌어올린 신용은 금융산업 전체로 볼 때 건전한 현상은 아니라는 게 싱크탱크들의 시각이다.

얼마 전 또 한 번의 신용 사면이 발표됐다. 과거 2000만원 이하였던 대상이 5000만원 이하로 확대돼 324만 명이 혜택을 볼 것이라고 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빚을 다 갚았으면 칭찬해야 하는데, 불이익을 주며 전과자 취급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7년 이상 5000만원 이하 장기 연체자를 대상으로 빚 탕감도 예정돼 있다. 금융감독원 통계를 보면, 똑같은 조건에서 빚을 자력으로 갚아낸 국민이 2020년 이후 361만1119명이다. 이들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을까. 누군가는 재기의 기회를 나누는 데 흔쾌히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허탈감을 느꼈을 것이다. 이런 국민에게도 정중한 설명과 설득이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