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271억 할인 쿠폰 지원, 관객 유입 효과는 '미미'...
쿠폰보다 콘텐츠·창작자 지원 시급
여름에도 한국 영화의 침체기가 이어지고 있다. <F1>, <슈퍼맨>, <판타스틱 4> 등의 해외 흥행작들까지도 유독 한국에서만큼은 미미한 수치를 보였으니 엄밀히 말하면 한국 영화와 극장 산업의 침체가 함께 이어지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번 여름에 개봉되는 유일한 한국 블록버스터이자 올해 최고 규모의 대작 프로젝트 <전지적 독자 시점> (김병우)이 개봉한 지 6일 차를 넘기고 있지만 누적 관객은 68만 명에 불과하다. 궁극적으로 영화의 손익분기점 600만 명은 달성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 스틸컷 / 사진출처. 왓챠피디아
일단 줄어든 스케일이나마 관객들의 선택을 받은 영화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 한국 영화를 기준으로 올해 상반기(7월 27일 기준)에 개봉한 영화들의 흥행 순위를 꼽는다면, 1위 <야당> (황병국), 2위 <히트맨2> (최원섭), 3위 <승부> (김형주), 4위 <하이파이브> (김형철), 5위 <검은 수녀들> (권혁재) 순이다. 순위 안에는 들지 못했지만, 제작비 약 35억원의 중예산 호러 <노이즈> (김수진)는 161만명(손익분기 100만명)을 동원하면서 수익률 기준으로는 올해 가장 큰 성공을 누렸다고 할 수 있다.
사실상 <노이즈>의 성공이 전혀 예상 밖에 사건이라고 보긴 힘들다. 왜냐하면 한국 영화 산업이 위축되기 시작하면서 지난 3~4년간 가장 많이 제작된 분야가 공포/호러 장르이기 때문이다. 한정된 공간, A-리스트 스타를 쓰지 않는다(혹은 쓸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다른 장르에 비해 제작비를 절감할 수 있는 이점을 가진 호러는 전통적으로 영화산업에서 메이저 프로젝트의 대안 혹은 틈새시장으로 선택되어 꾸준히 생존해 온 산업이다. 7월과 8월만 해도 <괴기열차>, <구마수녀 - 들러붙었구나>, <강령: 귀신놀이> 등 공포 장르의 활약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언급했듯, 수익률 기준으로 올해 최고 흥행작이라고 할 수 있는 <노이즈>는 층간소음을 주제로 한 공포영화다. 한정된 아파트에서 모든 사건이 벌어진다는 점에서 영화는 공간형 공포영화의 최고작이라고 할 수 있는 <불신지옥> (이용주, 2009)을 연상하게 한다. <노이즈>는 아파트 분양에 성공한 주영(이선빈)과 주희(한수아) 자매가 정체불명의 층간소음에 시달리면서부터 시작된다. 특히 주희는 소음으로 인해 점점 더 히스테리컬하게 변해가고 이로인해 자매는 사이가 멀어진다. 곧 주영의 생일을 앞둔 어느 날, 주희가 아파트 안에서 사라져 버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주영은 그녀의 남자친구 기훈(김민석)과 함께 실종된 동생의 자취를 추적한다. 그리고 이들은 아파트 안에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영화 '노이즈' 스틸컷 / 사진출처. 왓챠피디아
엄밀히 말해 <노이즈>의 성공 원인은 뛰어난 작품성도, 독특한 아이디어도 아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영화는 한정된 아파트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라는 점에서 <불신지옥>이나 <아파트> (안병기, 2006) 같은 작품들과 비슷한 배경을 공유하고 있으며, 층간소음을 중심 이슈로 한다는 점에서는 최근에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84제곱미터> (김태준)와 유사하다. 다시 말해 영화는 지극히 보편적인 테마를 가진 평범한 수준의 작품인 것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올해의 (현재 기준) 승자가 된 이유는 한국영화의 전반적인 하향평준 경향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소주전쟁>, <스트리밍>, <거룩한 밤: 데몬 헌터스> 등 완성도와 독창성의 결핍으로 혹평받았던 대작, 혹은 장르 영화들이 흥행에 연이어 실패하면서 중저예산의 평작들이 관객의 선택을 받는 기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특히 그 가운데 호러/공포는 가장 마니아층이 두터운 장르이기도 하다. 현재처럼 영화산업과 시장의 축소가 장기화하는 상황이라면 공포 영화는 제작의 맥락에서도, 관람의 맥락에서도 가장 승산이 높은 상품이 될 것이다.
정부는 지난 25일, 영화 산업의 불황을 완화하고자 271억 원을 들여서 450만 장의 극장 할인 배포했다. 그럼에도 지난 4일간의 수치를 보면 고작 15%의 관객 수가 늘어났을 뿐 큰 효과는 드러내지 못했다. 사실상 450만장이라는 숫자를 450만명으로 환산해도 웬만한 대작 영화의 손익분기점에도 못 미치는 숫자다. 다시 말해 애초에 쿠폰 행사는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없는 (한계가 분명한) 미봉책에 불과했다는 의미다. 티켓 가격을 일시적으로 내려서 관객들이 안보는 영화를 어떻게든 보게 하는 정책은 정책으로서도, 방안으로서도 가치가 없다. 시간이 더 걸리는 과정일지라도 더 확실한 해결책이라면 관객의 수준을 충족할 만한 좋은 영화와 창작자를 길러낼 수 있는 보다 근본적인 정책이어야 할 것이다. 지금은 티켓값을 지원할 때가 아닌 제작과 창작을 위한 지원이 더 절실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