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추천 뉴스
“AI? 좋은 영화 만들 수 있다면 무엇이든 써야죠”
피오트르 비니에비츠 감독 인터뷰
BIFAN 개막작 '그를 찾아서' 연출
생성AI가 만든 시나리오로 만든 작품
"기술은 영화를 죽이지 않는다"
BIFAN 개막작 '그를 찾아서' 연출
생성AI가 만든 시나리오로 만든 작품
"기술은 영화를 죽이지 않는다"
폴란드 출신인 비니에비츠 감독은 국내 관객들에겐 낯선 이름이다. 하지만 신예답지 않게 암스테르담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IDFA)에 초청받는 등 ‘그를 찾아서’ 한 편으로 지난해부터 유럽 영화계에서 주목받고 있다. 작품의 뼈대인 시나리오를 사람이 아닌 생성형 인공지능(AI)에게 쓰게 하면서다. 당연히 영화엔 실험적이고 논쟁적이란 평가가 따라붙는다.
AI를 내세운 신출내기의 실험은 까마득한 선배 베르너 헤어초크의 한 마디에서 비롯됐다. 20세기를 대표하는 독일의 작가주의 영화감독 헤어초크는 2016년 다큐멘터리 ‘사이버 세상에 대한 몽상’(2016)을 선보인 선댄스영화제에서 “4500년 후에도 컴퓨터는 나만큼 훌륭한 영화를 못 만들 것”이라 말했다. 이 확신은 비니에비츠 감독의 창작 욕구에 불을 지폈다. 지난 4일 BIFAN 현장에서 만난 그는 이렇게 말했다. “(헤어초크의 말에서) 인간이 기계보다 우월하단 감정과 동시에 마음속 품고 있는 ‘테크노포비아’(기술공포)를 느꼈어요. 그래서 인간과 기술이 맺고 있는 관계에 의문을 제기해보고 싶었죠.”
▷AI가 쓴 시나리오로 영화를 만들 생각을 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헤어초크에 도전장을 내민 건 아니에요. 인간과 기술의 관계를 탐구하고 새로운 사유와 토론을 이끌어내고자 시도해본 겁니다.”
▷AI를 어떻게 활용했나요?
“처음 제작을 시작한 2019년 당시만 해도 AI 관련 기술은 초기 단계에 불과했어요. 직접 기업을 설립해 기술을 개발하기도 했고, 필요한 기술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기도 했죠. 딥페이크, 보이스 생성 툴을 활용해서 헤어초크 감독이 했던 인터뷰 텍스트, 그가 쓴 시나리오를 학습시켜 새로운 시나리오를 작성하도록 했어요. 전통적 영화제작 방식에 머신러닝을 접목한 거죠. 챗GPT가 나올 즈음에서야 사람들에게 우리 팀의 의도를 제대로 설명할 수 있었어요.”
영화는 가상으로 만든 독일의 한 도시에서 발생한 공장 노동자의 죽음을 다룬다. 헤어초크로 연상되는 인물이 내레이션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AI가 만든 장면이 미스터리 스릴러와 드라마, 다큐멘터리를 넘나들며 서사적 왜곡을 보여주는 점이 독특하다. 그러나 다소 무리한 전개와 산만한 구조가 몰입을 방해한다. 개막식에서 작품을 본 한 영화계 관계자는 “분명히 의미 있는 작품이지만, AI가 쓴 영화적 내러티브가 훌륭하다고 하긴 어렵다”고 평가했다.
“AI가 쏟아낸 단어와 문장, 단락을 시나리오로 편집했어요. AI가 만든 세계관이나 캐릭터, 대사 같은 중요한 요소는 따로 편집을 거치진 않았습니다. 불완전한 스크립트 그대로를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물론 각색은 필요했어요.”
▷이해가 어려운 지점들이 있고, 갑작스러운 전개에 당혹감을 느꼈다는 평도 있습니다.
“범죄를 다룬다고 볼 수도 있어서 수사 같은 행위가 등장하지만 동시에 유머나 스릴러, 호러 같은 이야기도 나와요. 다양한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보여줄 수 있는 점이 좋았어요.”
다소 조악한 작품성에도 BIFAN을 비롯해 유럽의 여러 다큐멘터리 영화제가 이 작품을 주목한 건 ‘AI 영화가 어디쯤 와 있는가’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영화계 화두는 AI를 활용한 영화에 대한 단순한 찬반 대결에서 ‘AI로 얼마나 더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는가’로 옮겨가고 있다. 기술의 발전이 거스를 수 없는 변화라면, 잘 받아들여 영화적 가능성을 확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 것이다.
▷좋은 영화 제작을 위해 AI가 필요한가요.
“영화는 항상 산업의 영역에 있었고, 산업에는 기술의 도움이 늘 필요합니다. 기술은 영화를 죽이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은 영화를 더 잘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하는 때입니다.”
“AI를 활용한 영화와 함께 생각해볼 점은 ‘AI를 활용하지 않으면서도 나쁜 영화’들의 존재입니다. 100년이 넘는 영화의 역사에서 만들어진 수많은 안 좋은 영화들이 있다는 걸 기억해야 해요. 기술은 앞으로도 계속 진화할 겁니다. 시나리오를 쓰는 것을 넘어, AI의 도움 없이 도저히 할 수 없는 작업이 있다면 당연히 활용을 고민할 겁니다.”
다만 비니에비츠 감독은 AI 기술의 적극적인 활용을 장려하면서도 ‘영화예술은 결국 인간의 것’이라는 헤어초크의 말을 긍정했다. AI가 시나리오를 쓰고 영상을 만든다고 해서 영화감독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 내다봤다.
▷AI시대에 감독의 역할을 정의한다면.
“감독의 본질적 역할 자체는 변하지 않을 겁니다. 대신 큐레이터처럼 원하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도구를 고르게 되고, 어떻게 기술을 쓸지 결정하게 되겠죠.”
▷BIFAN 개막작으로 어떤 역할을 하길 기대하나요.
“홍상수, 봉준호 감독 같은 한국 영화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고 존경하고 있는 만큼 BIFAN 개막작으로 초대돼 영광입니다. AI영화에 대한 반응은 국가마다 다르겠지만, 제 영화를 통해 한국에서 관련 논의가 더욱 활발해진다면 좋겠어요.”
부천=유승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