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 마지막 시리즈가 공개됐다. 기하학적 구조와 화려한 색감으로 설계된 작품 속 공간은, 게임의 잔혹함과 극명히 대비되어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오늘은 그 공간을 설계하고 운영하는 프론트맨, 황인호의 눈을 통해 '오징어 게임' 속 건축 공간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게임 속 공간과 인물 모두를 관장하는 프론트맨 / 사진제공. 넷플릭스
내가 가장 먼저 준비한 건, 게임의 ‘룰’이 아니라 ‘공간’이었다. 이 게임의 본질은 통제이고, 통제의 시작은 공간이기 때문이다. 참가자들이 눈을 뜨는 첫 순간부터, 숨을 거두는 마지막까지. 참가자들은 나의 통제를 벗어날 수 없다.
나는 네 개의 큰 축을 중심으로 공간을 설계했다. 섬, 생활공간, 게임공간 그리고 통제공간. 모든 공간은 본래의 기능이 아닌 새로운 의미로서 존재해야 했다. 참가자들의 본능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섬 - 단절의 땅, 새로운 룰
게임의 무대는 외부 세계와 철저히 단절된 바다 한가운데. 나는 섬이라는 장소를 통해 참가자들이 자신의 배경을 잃게 만들고 싶었다. 그들은 이곳에서 사회의 규칙, 윤리, 시간 감각을 모두 잊는다.
본래의 익숙한 모든 것으로부터 끊어내는 것. 과거와의 단절은 참가자들에게 가장 원초적인 불안을 심어주고 그들의 본성을 일깨운다. 그리고 오직 생존이라는 새로운 룰을 부여한다. 그들은 섬에서 새로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야 했다. 철저히 무너트리기 위해.
섬 : 단절의 땅, 새로운 룰 / 사진제공. 넷플릭스생활공간 - 통제된 일상, 긴장된 시선
참가자 모두가 함께 매일 눈 뜨고 잠드는 생활공간. 표면적으로 이곳은 게임 사이사이 쉴 수 있는 공간이다. 하지만 나는 안락함이라는 느낌을 철저히 제거했다. 휴식의 공간이 아니라, 경계심이 계속 유지되는 공간으로 만들어야 했다.
첫째, 침대를 성처럼 높게 쌓아올렸다. 생존과 상금을 위해 타인을 짓밟고 올라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최 측의 CCTV보다도 무서운, 참가자들 서로를 향하는 날카로운 시선. 프라이버시는 제거되고, 덕분에 모든 대화와 행동은 하나의 ‘쇼’가 된다.
둘째, 참가자들을 두 편으로 나누었다. 게임의 지속 여부를 두고 O 또는 X를 선택한 사람들이 편을 나누고 서로 대치하도록 만들었다. 참가자 모두가 한편이라는 인식을 철저히 제거하고 긴장으로 가득한 공간을 만들었다. 게임 공간보다 더욱더 잔혹한 일상공간이다.
나는 멋진 쇼를 만들어야 할 의무가 있다. 덕분에 참가자들은 언제나 무대 위에 있게 되었고, 나는 그 무대를 연출하고 조명하는 연출자다. 생활공간에서조차 사람들끼리 서로 싸우면서 나에 대한 적대감은 흐릿해진다.
참가자들이 목숨을 걸고 경쟁하는 게임공간. 나는 이곳을 가장 화려하고, 가장 거짓된 공간으로 설계했다. 참가자들이 마치 아이처럼 게임에 몰입할 수 있도록 원색과 과장된 스케일을 적극 활용했다. 오버스케일 속 참가자들은 마치 어린아이처럼 작아져 자신의 순수한 악한 본성을 드러낼 것이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단체줄넘기, 숨바꼭질 같은 놀이는 유년의 기억을 불러오는 동시에, 생존 경쟁을 강요하는 이중적 구조다. 순수한 공간 속에서 드러나는 살의. 이 기묘한 대비는 인간의 잔혹함을 더욱 극적으로 보여줄 것이다. 죽음에 이르는 과정까지도 과장된 익살스러움으로 표현해 죽음의 비극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냈다. 더 잔혹하고, 더 재밌는 쇼가 되도록.
나는 게임공간을 단순한 구조로 구성했다. 그래야 참여자 개개인의 복잡한 감정이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가 게임공간을 설계할 때 세운 핵심 원칙이다. 나는 인간이 공간에 의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고 싶었다. 어떻게 무너지는지, 혹은 끝내 버티는지를.
게임공간 : 환상의 세계, 죽음의 공포 / 사진제공. 넷플릭스통제공간 - 냉정한 시선, 권력의 정점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와 VIP의 공간. 가장 조용하고 은밀한 구역이다. 이곳엔 참가자들은 물론이고 진행요원조차 함부로 들어올 수 없다. 이곳에서 참가자들의 모든 게임을 생생히 내려다보지만, 그들은 우리를 볼 수 없다. 마치 거짓된 TV쇼를 보듯, 화려하게 꾸민 공간에서 유리창 너머의 잔혹함을 들여다본다.
나는 이 공간을 파놉티콘(Panopticon)의 개념을 적용해 설계했다. 참가자들은 자신이 언제, 어떻게 감시당하는지 모른 채 스스로를 통제하게 된다. 나는 그저 존재하기면 하면 된다. 항상 누군가가 지켜본다는 시스템 자체가 공포가 되는 구조. 이 공간은 그 통제의 정점에 있다.
통제공간 : 냉정한 시선, 권력의 정점 / 사진제공. 넷플릭스
화려한 장식으로 치장되어 탐욕과 위선으로 가득 찬 VIP공간과는 달리, 나-프론트맨의 방은 장식도 없이 절제로 가득 찬 공간이다. 웃음도 즐거움도 존재하지 않는, 가장 어두운 공간이다. 이곳은 모두에게 두려움을 주는 공간이지만, 나의 두려움을 감추는 곳이기도 하다. 그곳에서 나는 매일 같은 질문을 되새겼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게임의 참가자였다가 호스트를 이어받은 나. 나는 게임에 참여한 이후 단 한 번도 살아있다고 느끼지 못한다. 그저 끊임없이 게임을 설계하고 운영할 뿐이다.
차라리... 그때 456번에게 죽임을 당했다면 어땠을까?
게임 속 공간을 지켜보고 있는 프론트맨 / 사진제공. 넷플릭스
나는 안다. 공간이 어떻게 사람의 행동을 유도하는지.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공간으로 질문을 던졌다. 새로운 질서에서, 인간은 결국 어떤 선택을 하는가.
<오징어 게임>의 공간은 VIP를 위한 무대이자 나의 실험실이었고, 참가자들에겐 천국이자 지옥이었다. 내가 만든 이 구조 안에서, 승리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유희만이 존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