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00년의 장구한 역사가 흐르는 ‘영원의 도시’ 로마는 ‘분수의 도시’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왜냐면 광장마다 건물 모퉁이마다, 크고 작은 분수들이 물을 뿜고 있기 때문이다. 이 분수들은 예로부터 로마를 찾는 여행자들과 순례자들에게 더위를 식혀주고, 목을 축여주기도 한다. 로마의 중심지에는 ‘족보’ 있는 분수만 꼽아 봐도 100개가 넘는데 상당수는 17세기부터 19세기 사이에 유명한 건축가와 조각가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트레비 분수(Fontana di Trevi)이다. 이 분수는 단순한 도시 시설물이 아니라, 건축과 조각, 그리고 물이 어우러진 바로크 미학의 총체다. 이 분수는 미국의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로마의 휴일>이나 이탈리아의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달콤한 인생>과 같은 영화를 통해서도 전 세계에 널리 알려졌다.
로마 후기 바로크 예술의 걸작 트레비 분수 / 사진. © 정태남
로마 후기 바로크 예술의 걸작 트레비 분수 / 사진. © 정태남
건축, 조각, 물이 어우러진 바로크 미학의 총체

로마의 심장부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직선거리 비아 델 코르소(Via del Corso)는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의 건축들이 밀집된 지역의 중추신경과 같은 길이다. 이 길 동쪽지역에서 좁은 골목길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면 자동차 소리가 차츰 사라지기 시작하고, 멀리서 물소리가 조금씩 들리기 시작하는데 마치 자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더 깊게 들어가면 물소리는 더욱더 커진다. 그러다가 갑자기 확 트인 광장이 눈 앞에 펼쳐지고 시원한 물소리가 귀에 가득 찬다. 이 광장이 트레비 광장이다. 이곳은 세 개(tre)의 길(via)이 모이는 곳이라고 해서 트레비(Trevi)라는 이름이 붙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광장에서 가장 큰 건물인 르네상스 시대 폴리 궁(Palazzo Poli)의 남쪽 면에는 트레비 분수의 역동적인 광경이 무대처럼 펼쳐진다. 후기 바로크 시대의 걸작품으로 손꼽히는 이 분수의 기원은 18세기 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730년 새 교황으로 선출된 클레멘스 12세는 로마를 더욱더 아름다운 도시로 만들고 싶었다. 그 일환으로 트레비 지역 재개발 설계 공모전을 열었는데 30대 초반의 젊은 건축가 니콜라 살비(Nicola Salvi, 1697~1751)가 뽑혔다. 그의 설계안이 선정된 것은 도시계획학적인 측면에서 매우 훌륭했을 뿐 아니라 다른 경쟁자들의 설계안에 비해 공사비가 훨씬 적게 들었기 때문이다. 공사는 1732년에 시작되었다. 하지만 공사 도중 예산 부족으로 공사가 여러 번 지연되었고, 니콜라 살비는 공사 중 이런저런 심한 스트레스를 받다가 제명대로 살지 못하고 1751년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가 죽은 후 이 분수는 다른 건축가와 조각가의 손을 거쳐, 착공된 지 30년이 지난 1762년에야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드러냈다.
건축, 조각, 물이 어우러진 트레비 분수 / 사진. © 정태남
건축, 조각, 물이 어우러진 트레비 분수 / 사진. © 정태남
트레비 분수를 구성하는 조각상들 한가운데에는 대양의 신 오케아누스가 마치 개선 마차에 올라탄 듯 두 마리의 말이 이끄는 거대한 조개껍데기 모양의 마차에 올라서 있다. 이 두 마리의 말은 바다의 신 트리톤이 이끌고 있고 그 앞에 펼쳐진 넓은 수반은 바다를 상징한다. 오케아노스의 좌우 조각상들은 각각 풍요의 여신과 건강의 여신이다.

트레비 분수를 전체적으로 보면 공간의 구성이 격렬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매끄럽게 깎은 돌 수반이 주는 부드러운 느낌은 거칠고 울퉁불퉁한 바위와 강한 대비를 이루며, 분수의 물은 작은 폭포가 되어 수반에 흘러내리고, 물소리 속에 바다의 신 트리톤과 사나운 군마(軍馬)가 양쪽에 그 하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흘러내리는 물은 정지된 공간에 생명을 불어넣고 시간성을 부여하며, 물소리는 음향적 요소로 작용하여 시각과 청각을 모두 자극한다. 이 광경 뒤에는 수직의 기둥들, 그리고 육중한 돌림띠를 두른 르네상스 건물의 벽면이 이 격정적인 무대를 고요히 조율하고 있다.
거칠게 다듬어진 돌 표면과 대조를 이루는 바다의 신 트리톤 조각상 / 사진. © 정태남
거칠게 다듬어진 돌 표면과 대조를 이루는 바다의 신 트리톤 조각상 / 사진. © 정태남
고대 로마의 ‘처녀수로’

그런데 트레비 분수의 물은 그냥 수돗물이 아니라, 아주 특별한 물이다. 즉, 기원전 19년에 로마 제국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오른팔 아그리파(M. V. Agrippa)가 로마 시내에 깨끗한 물을 공급하기 위해 건설한 ‘처녀수로(Aqua Virgo)’라는 지하 수로를 통하여 로마에서 21킬로미터 떨어진 산악지대의 수원에서부터 흘러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수로의 이름이 ‘처녀수로’가 된 것은 땡볕 아래에서 수원을 찾다가 기진맥진한 로마 공병들 앞에 한 이름 모를 처녀가 나타나 물이 솟는 곳으로 이들을 인도하고는 사라졌다는 전설에 의한다. 이 이야기는 오케아누스 상부 아치의 좌우에 부조로 표현되어있다.
 처녀수로 건설을 지휘하는 아그리파 / 사진. © 정태남
처녀수로 건설을 지휘하는 아그리파 / 사진. © 정태남
처녀가 로마 병정들을 물이 솟는 곳으로 인도한 모습 / 사진. © 정태남
처녀가 로마 병정들을 물이 솟는 곳으로 인도한 모습 / 사진. © 정태남
그런데 수원과 트레비 분수 사이의 낙차가 불과 4미터에 불과하다. 즉, 처녀수로의 경사는 100미터당 2센티미터도 안 되는 셈이다. 2천여 년 전에 이 정도로 ‘아슬아슬한’ 경사를 유지하면서 이토록 긴 지하 수로를 건설한 로마인들의 측량 기술과 시공 기술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해 질 무렵의 트레비 분수 / 사진. © 정태남
해 질 무렵의 트레비 분수 / 사진. © 정태남
이 수로는 로마 제국이 멸망한 후 오랫동안 방치되었다가 8세기에 한 차례 복원되었으며, 또 오랜 세월이 지난 1453년에 완전히 복원되어 오늘날까지도 이용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오늘날 트레비 분수에 떨어지는 물 한 방울 한 방울은 바로 이 고대 로마의 기술과 신화, 바로크 예술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로마를 찾아온 사람들은 이 분수에 동전을 던지며 다시 로마에 돌아오기를 기원한다. 그것은 단지 관광 이벤트가 아니라, 고대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영원의 도시’ 로마와 자신의 추억을 연결 짓는 현대적 의식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