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마음을 두드린 스크린의 빛 한 줄기가 인생을 바꾸기도 하고, 때론 그 빛이 누군가와의 관계, 더 나아가 인생 그 자체가 되기도 한다. 어린 토토에게 영화는 놀이터이자, 학교였으며, 가장 친한 친구이자 스승이었고, 꿈이었다.
영화 <시네마 천국> 스틸 컷 /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시네마 천국> 스틸 컷 /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시네마 천국(Cinema Paradiso)>은 영화에 대한 헌사이자 사랑이다. 어떻게든 영사실 안에 머물고 싶고, 틈만 나면 영화가 보고 싶은, 말 그대로 영화에 미친 소년 토토. 영화관 Cinema Paradiso의 영사기사 알프레도는 그런 소년을 귀찮아하는 것 같으면서도 그 호기심 많은 눈빛을 외면하지 못하고 따뜻한 눈으로 사랑하게 된다. 꾀를 내서 알프레도의 자전거를 얻어타고야 마는 소년의 영리함을 알프레도는 아마 일찍이 알아봤을 것이다.

영화라는 기계를 만지고 싶어 안달이 난 소년과 그 기계 뒤의 세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중년 남자. 이 둘 사이의 관계는 단순한 스승과 제자, 친구, 동료를 넘어 인생 전체를 건 감정의 교류로 발전한다.

많은 관객이 영화를 즐겁게 봐주면 관객들의 근심, 걱정을 잠시라도 잊게 해준 것 같아서 괜히 으쓱한다는 알프레도였지만 그런 그도 토토에게는 냉정하게 마을을 떠나라고 말한다. 그 말 안에는, 그가 한때 꿈꿨지만 가지 못했던 길을 토토가 대신 가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바람이 묻어나는 것도 같다. 어쩌면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건넬 수 있는 가장 무거운 애정을, 가장 열렬히 쏟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알프레도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토토를 키운다.
영화 <시네마 천국> 스틸 컷 /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시네마 천국> 스틸 컷 /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관의 화재로 시력을 잃은 알프레도, 불구덩이 속으로 알프레도를 찾으러 들어간 어린 소년. 광장에 있던 모두가 불을 피해 도망갈 때, 어린 토토만이 알프레도를 떠올리며 반대로 뛰었다. 이게 사랑이 아니면 무엇이 사랑인가. 그때부터 토토는 알프레도의 또 다른 인생이었을 지도. 아이는 자라서 청년이 되고 사랑을 하고 실연을 겪는다. 그때 알프레도가 들려준 ‘공주와 병사’ 이야기는 인물들의 관계뿐 아니라, 영화와 사랑, 꿈과 삶을 압축하는 강력한 비유로 작동한다. 어떤 것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도, 무조건적인 희생도 결국은 자신을 잃는 것이라는 걸, 토토를 향한 자신만의 뜨거운 사랑의 방식으로 알프레도는 줄곧 말하고 있던 것이다. 이것은 마치, 더 건강한 사랑을 위해 때론 종속을 경계하라는 이야기로 들린다.

자칫 잔인한 조언이나 비유처럼 들리지만, 실은 그것이야말로 토토에게 진짜 자유를 주는 유일한 길이었을 수도. 알프레도는 토토가 자신의 길을 스스로 선택하도록 자신의 방식으로 이끌었다.
영화 <시네마 천국> 스틸 컷 / 출처. 네이버 영화, IMDb
영화 <시네마 천국> 스틸 컷 / 출처. 네이버 영화, IMDb
영화의 후반부, 알프레도가 남긴 필름 릴 하나만이 토토를 기다리고 있다. 그 필름으로 말하자면, 영화가 가장 아름답고 인간적인 순간들로 가득 찬 ‘러브레터’이다.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만큼 어려운 것이 떠나는 용기라는 걸, 어른이 된 토토는 이제 알게 됐을까.

알프레도가 남긴 ‘필름’이라는 마지막 편지, 영사실 안에 깃든 알프레도의 시간, 토토의 어린 시절, 잃어버린 사랑, 그리고 무엇보다 영화가 그에게 처음 속삭였던 그 감정. 스크린을 응시하는 토토는 마을 전체가 영화관에서 함께였던, 모두의 희로애락이 담겼던 그 시간, 공간, 흔적을 떠올린다.

때론 환상이 삶을 지탱하는 힘이다. 전후 혼란의 시절, 그 마을 사람들의 삶을 지탱한 것은 Cinema Paradiso의 영사기사 알프레도와 토토가 틀어줬던 ‘영화의 환상’ 덕분이다. 영화관은 그들에게 희망과 해방의 통로였고,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며 상실과 복원이 이뤄지는 곳이었다. 지금 당신의 삶을 지탱하는 힘은 무엇인가.
영화 <시네마 천국> 스틸 컷 /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시네마 천국> 스틸 컷 /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는 집단적 감정의 발화 장치이다. 토토에게 영화는 추억이었고, 떠남이었고, 회복이었다. 알프레도는 영화를 통해 토토에게 세상을 건넸고, 영화는 토토를 통해 알프레도의 인생을 완성했다. 둘은 영화라는 스크린을 사이에 두고, 한 사람은 스크린 뒤에서, 다른 한 사람은 스크린 앞에서 서로를 비추며 살아온 셈이다.

영화가 말한다. 영화만큼 삶을 닮은, 삶을 담은 예술은 없다고. <시네마 천국>이 지금, 이 순간 다시 의미 있는 이유다. 스크린이 영화를 재생할 때, 우리 역시 각자의 삶을 재생하고 있다.
영화 <시네마 천국> 스틸 컷 /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시네마 천국> 스틸 컷 / 출처. 네이버 영화
이언정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