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신록의 계절이 되면 꼭 한번 듣고 싶은 음악이 있습니다. 바로 베토벤의 여섯 번째 교향곡 '전원'입니다. 이 교향곡은 4개의 악장으로 구성된 그의 다른 교향곡과 달리 모두 5개의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베토벤으로서는 매우 이례적으로 작곡가 스스로가 직접 악장마다 아래와 같은 제목을 달아 놓았습니다.
1악장: 전원(시골)에 도착했을 때 일어나는 기쁨의 감정
2악장: 시냇가 풍경
3악장: 시골 사람들의 즐거운 모임
4악장: 폭풍우
5악장: 목동의 노래; 폭풍우 이후의 행복하고 감사한 감정
베토벤 / 그림. ⓒJoseph Karl Stieler, 출처. 위키피디아
이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 이전에도 크네흐트(Knecht)라는 작곡가가 '자연에 대한 음악적 초상화'라는 제목으로 위와 비슷하게 5악장 구성의 교향곡을 작곡한 적이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크네흐트의 교향곡 역시 악장별로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아름다운 풍경(1악장), 하늘이 어두워지고 먹구름이 몰려오다(2악장), 매서운 바람과 격노하는 폭풍우(3악장), 폭풍우는 잠잠해지고 맑게 갠 하늘(4악장), 신에게 바치는 자연의 아름다운 기쁨의 노래(5악장)라는 제목이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과 흐름이 제법 비슷합니다.
[크네흐트 '자연에 대한 음악적 초상화']
베토벤은 자신의 '전원' 교향곡이 (비발디의 4계와 같이 자연의 사물이나 현상을 악기로 최대한 가깝게 묘사해 내는) '톤 페인팅'의 방법으로 전원을 구체적으로 또는 사실적으로 묘사하기보다는 단지 (추억 속에 간직하는) 전원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표현해낸 것에 더 가깝다는 취지로 언급하였습니다.
그러나 베토벤의 그러한 언급에도 불구하고, 1악장 도입부에서부터 목관 등 다양한 악기들이 새소리를 묘사하고 있고, 2악장에서도 현악기들이 흐르는 시냇물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외에 코다에서는 아예 구체적으로 새의 이름까지 악보에 적고 있으며, 4악장에서는 저음현과 피콜로, 금관, 팀파니 등이 동원되어 천둥번개나 비바람의 소리를 흉내내는 등 군데군데 자연의 모습이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상당히 구체적으로 묘사되고 있음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감상하는 분들 또한 이 곡을 전원을 묘사하는 '표제음악'처럼 이해하면서 곡을 들을 때 알게 모르게 머릿속에서 자연의 구체적인 이미지를 연상하거나 떠올리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전원' 교향곡을 좀 더 깊이 감상하기 위해서 결코 간과하여서는 안되는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 작품이 (비슷한 시기에 작곡된 베토벤의 제5번 교향곡 '운명'과 마찬가지로, 아니 그 이상으로) 고전주의적 구조와 형식에 따라 정밀하게 음악적으로 설계된 곡이라는 점입니다.
바로 그 점이 (비슷한 외형과 표제를 가진) 크네흐트의 작품과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을 명백히 구분지을 수 있는 지점이라고 하겠는데, 지휘자 번스타인은 'Unanswered Question(답변되지 아니한 질문)'이라는 제목으로 하버드 대학에서 한 시리즈 강연에서 "음악을 들을 때 너무 표제적으로 이해하려고 할 경우 절대음악의 아름다움을 놓치기 쉽다"고 하면서 그 예로 이 '전원' 교향곡의 1악장을 들고 있습니다. [▶영상 보기]
이 강의에서 번스타인이 '전원' 교향곡의 정밀한 구조와 함께 단순한 음악적 모티브들로 거대한 음향적 건축물이 구축되는 과정에 대해 설명하면서, 하버드대 학생들에게 "음악을 들을 때 너무 머릿속에 어떤 구체적인 그림이나 장면을 그리려고 하지 말고 음악을 그 자체로 받아들여 보라"고 권유하는 장면은 참 인상적입니다. 실제로 지극히 단순한 소재를 유기적으로 발전시키며 정교하고도 일체감 있는 거대한 음악적 구축물을 만들어가는 그 과정을 깊이 들여다보면 마치 위대한 자연을 바라보듯 경외감과 함께 신비로운 느낌마저 듭니다.
이 '전원' 교향곡은 브루노 발터, 칼 뵘, 몽퇴 등 거장 지휘자들을 필두로 아바도나 아르농쿠르, 노링턴 등등 이루 셀 수조차 없는 많은 지휘자가 다양한 명연들을 남겼고, 시대악기 연주 역시 가디너, 브루노 바일, 엠마누엘 크리빈(Krivine), 포르크(Forck) 등 다양한 지휘자들에 의한 좋은 녹음들이 존재합니다.
최근의 연주로는 현대 오케스트라에 의한 만프레드 호넥의 연주가 이 작품에 숨겨진 매력을 좀 더 투명하게 드러내 주려고 시도하였다는 점에서 참신하였는데, 이하에서는 유튜브에 올라온 호넥의 실황 연주를 중심으로 순음악적인 측면에서 이 곡의 구조와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드리기로 하겠습니다.
호넥의 연주는 시대악기에 의한 것은 아니지만 우선 템포가 마치 시대악기 연주와도 같이 상당히 빠릅니다. 종래 거장들의 명반에 익숙하신 분들은 이른 빠른 템포에 이맛살을 찌푸리실 것이지만, 사실 이는 베토벤이 악보에 기재한 템포를 비교적 충실하게 따른 것입니다.
베토벤이 기재한 1악장의 제목을 보더라도 "전원(시골)에 도착했을 때 일어나는 기쁨의 감정"이라고 해서 마차를 타고 전원에 막 도착하는 장면이나(나중에 설명해 드리겠지만, 1악장의 발전부에서는 짧은 모티브들이 마치 마차 바퀴의 움직임과도 같이 지속적 반복됩니다) 또는 마음속에서 신선한 감정이 일어나는 느낌 등은 매우 운동성이 강한 것이어서 1악장을 너무 차분하게 연주하는 것은 베토벤의 의도와는 거리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1악장은 제시부-전개부(발전부)-재현부-코다 등으로 구성된 알레그로 소나타 양식을 따른 것인데, 지극히 단순한 음악적 소재를 유기적으로 발전시켜 거대한 음악을 구축해 나가는 과정이 실로 경이롭습니다.
제시부
I - 제1주제 (핵심 주제)
도입부에서 먼저 제시되는 음악적 소재는 아래와 같이 단 네 마디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악장에서 펼쳐지는 아름답고 화려한 잎이 무성한 나무는 모두 이 첫 네 마디의 마디별 각 동기라는 씨앗에서 자라난 것입니다. 즉, 1악장은 아래의 지극히 간단한 모티브들을 사용하여 베토벤이 구축해 낸 거대한 음악적 구조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바이올린이 연주하는 핵심 소재도 중요하지만, 그 기저에서 첼로가 연주하는 4도 하행 음형(위의 악보의 보라색 박스 부분)의 음악적 의미를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이 4도 하행 음형은 사실 위의 두 번째 마디 동기의 마지막에 스타카토에 의한 두 개의 음 속에도 감추어져 있는데, 이는 뒤의 발전부에서 바순이 연주하는 뻐꾸기의 소리로 그 정체를 드러냅니다.
특히 이 4도 하행 음형은 이어지는 3도 하행 음형과 연결되며 마치 마음에 일어나는 꽉 찬 만족감을 표현하는 듯한데, 이 연속 하행 음형은 1악장에서 중요한 대목마다 기둥처럼 작용합니다.
이러한 뻐꾸기의 소리와도 같은 4도, 3도의 연속 하행 음형은 훗날 브람스의 '전원' 교향곡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그의 2번 교향곡 4악장에서 핵심 동기로 채택하였고, 말러 역시 자신의 교향곡 1번에서 그와 같은 연속 4도 하행 동기를 자연의 생명력에 대한 상징과도 같이 사용하였습니다.
이처럼 전원의 생명력과 또 전원에 도착한 사람의 마음에 차오르는 만족과 기쁨을 표현하는 4도, 3도 연속 하행 음형은 이 교향곡의 3악장의 트리오에서 시골 농부들이 추는 춤에도 그대로 차용되어 트리오의 골격을 이루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이 음형들은 이 교향곡의 마지막에서 신을 향한 감사를 노래하는 5악장의 핵심 주제의 동기로도 연결됩니다(아래 악보의 첫 4개의 음표 참조). 특히 뻐꾸기의 노래와 같은 4도 하행 음형에 대한 응답처럼 따르는 3도 하행 음형은 1악장의 클라이막스의 핵심이기도 하지만 전체 교향곡이 대미를 장식합니다.
이처럼 베토벤은 1악장에서 도입부에서 네 마디에 걸쳐 짧게 제시된 핵심 주제를 구성하는 각각의 모티브들을 늘이거나 줄이거나 뒤집거나 하는 등 다양하게 변형하는 방법으로 '전원' 교향곡이라는 거대한 음향의 구조물을 건축해나가는데, 예를 들어 핵심 동기들이 도입부에서 제시된 이후 곧바로 이어지는 아래와 같은 선율에서부터 벌써 핵심 동기의 (늘이고 뒤집는 등과 같은) 변주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핵심 동기는 지속적인 반복과 저음의 트레몰로를 통해 점점 커지고 급기야 (마치 완전히 전원 속으로 들어온 듯) 제1주제가 전체 오케스트라에 퍼지면서 기쁨과 환희를 표현하는데, 이때 플루트가 새소리를 흉내내며 전원의 분위기를 북돋웁니다. 적지 않은 연주에서 이 새소리가 다른 오케스트라의 음향에 묻혀 잘 들리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호넥은 (악보에는 없는) 피콜로를 가세시켜 이 부분을 더욱 분명히 강조하는 것이 이색적입니다.
이렇게 점점 분위기가 고양된 후 음들이 (흥분된 즐거움을 표현하는 듯한) 셋잇단음 리듬에 의해 (마치 마차가 전원에 도착하여 멈추듯이) 옆으로 고요히 흐르며 분위기는 좀 더 부드러운 느낌의 제2주제로 넘어갑니다.
II - 제2주제
아래와 같이 레가토로 우아하게 하행하며 흐르는 제2주제는 사실 도입부에서 제시되었던 핵심 주제의 두 번째 마디 모티프를 부드럽게 변형한 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위에서 제1바이올린이 위의 제2주제를 부드럽게 노래할 때 그 기저에서 첼로가 마치 2중창처럼 받쳐준다는 점인데, 곧 그 두 악기군의 역할이 아래와 같이 바뀌어 2중창은 반복됩니다.
이렇게 동시에 전개되는 이중창은 마치 질문에 대하여(아래 악보의 f 부분) 답하듯(아래 악보의 p 부분) 아래와 같이 전개됩니다. 특히 답에 해당하는 부분은 너무나 우아한 선율인데, 이 역시 핵심 주제를 좀 더 길게 늘인(augmentation) 변주들입니다.
그 우아한 선율의 이면에 리듬의 변화도 매우 흥미로운데, 아마도 세심한 지휘자나 청자는 여기서 호른이 주도하여 생성해 내는 리듬에 주목할 것입니다(아래 연주 부분 참조).
[지휘자 엠마누엘 크리빈의 베토벤 교향곡 제6번 '전원']
그 호른의 리듬은 셋잇단음 리듬으로 발전하여 급기야 곡을 지배하며 마치 신나서 덩실덩실 춤추는 듯한 노래로 연결됩니다. 그리고 그 끝에서 다시 (도입부에서 설명 드린) 제1주제의 발랄한 핵심 동기를 노래하는 현악기와 그 위로 4도 및 3도로 연속 하행하는 동기를 노래하는 목관의 대화가 연결됩니다.
이 대목에서 귀를 기울일 부분은 위의 4도 및 3도로 연속하여 하행하는 동기는 늘 (제5번 교향곡의 운명의 동기의 리듬과 흡사한) 셋잇단음 기반의 리듬(아래 악보의 빨간색 부분)과 결합하여 (마음에 기쁨이 차오르듯) 추진력을 가지며 움직인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핵심 동기와 리듬의 결합은 (나중에 설명해 드리겠지만) 1악장의 코다에서 1악장의 감정적 클라이막스를 형성할 정도로, 음악적으로 중요합니다.
기저에서 베이스나 호른 등이 연주하는 이러한 셋잇단음 기반의 중요한 리듬이 (심지어 호넥의 연주를 포함한) 대부분의 연주에서 다른 오케스트라의 음향에 묻혀서 잘 부각되지 않는 것은 아쉬운 일인데, 다행히 크리빈의 연주에는 이러한 텍스쳐가 비교적 선명히 잘 부각되었습니다. [▶영상 보기] 이렇게 제시부가 마무리된 이후 고전적 소나타 양식에 따라 이 제시부는 다시 한번 더 반복되어 연주됩니다.
발전부
발전부는 아래와 같이 핵심 주제의 모티브를 집요하게 반복하면서 시작합니다. 물론 제시부에서도 핵심 주제의 동기들을 자주 반복하였지만 발전부에서는 예를 들어 (끝부분에 뻐꾸기의 울음과도 같은 4도 하행 음형이 스타카토로 포함된) 도입부의 두 번째 마디의 동기는 물경 72마디에 걸쳐 반복됩니다(아래 악보의 B플랫장조 부분).
이러한 반복에 대해 어떤 분은 자연의 속성을 묘사한 것이라고도 하는데, 특이한 것은 2박 리듬의 핵심 동기의 기저에서 셋잇단음의 3박 리듬이 겹치면서 서로 엇갈리게 함으로써 마치 시골길을 달리는 마차 바퀴의 덜덕거리는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리듬의 교차는 훗날 7번 교향곡의 1악장이나 9번 교향곡의 2악장 등에서 보다 정교하게 사용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동일한 리듬의 집요한 반복과 더불어 조성은 수시로 변화하는데, 예를 들어 b플랫장조로 시작한 반복이 D장조로, 그리고 G장조에서 E장조로 바뀌는 등의 장면이나 그밖에 핵심 동기에 살짝 단조의 애달픈 색채를 입히는 부분 등이 이채롭습니다.
재현부
비교적 온건한 발전부는 아래와 같은 과정을 거쳐 다시 자연스럽게 처음의 주제들을 재현하는 재현부로 접어듭니다.
코다
재현부에서 제시부를 반복한 다음 오케스트라가 핵심 주제를 크게 강조하면서 1악장은 코다에 진입합니다. 코다에서는 제시부에서 설명한 하행 4도에 이은 하행 3도의 음형의 기저에서 곡의 추진력을 제공한다고 설명해 드렸던 (마치 유명한 베토벤 운명 교향곡의 핵심 동기와 리듬이 비슷한) 셋잇단음의 리듬을 통해 베토벤은 진정한 감정의 클라이막스를 구축합니다.
[운명의 동기 리듬]
이 운명의 동기 리듬에 의한 8분음의 셋잇단음은 아래 악보와 같이 440마디부터 포르테(f)로 호른과 첼로, 베이스 등 저음현에 의해 울리기 시작하는데, 이러한 리듬이 집요하게 반복되면서 포르테씨모(ff)에 의해 (마음에 차오르는 말로는 다할 수 없는 만족감과 심지어 과거의 어떤 아름다웠던 순간을 추억하며 목이 메는 듯한 느낌마저 드는) 벅찬 감정의 클라이막스로 올라가는 형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리듬을 구성하는 셋잇단음들은 스타카토가 아닌 (전문용어로) 각 활에 의한 논레가토이므로 짧게 끊어 연주하기보다는 한 음 한 음 무게감을 가지고 연주를 해야 하고 감상자 또한 이 부분을 느끼며 곡의 흐름을 따라갈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아래 악보와 같이 바이올린과 비올라, 그리고 호른(Cor.)과 첼로/베이스 등 저음현이 서로 엇갈리면서 두 개의 8분음에 기반한 리듬을 연주하면서 깊은 감정의 클라이막스를 형성하기 때문에 이러한 교차되는 리듬도 같이 느낄 수 있도록 연주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아래의 피아노 버전이나 트리오 편곡 등을 들어보면 이러한 셋잇단음 리듬의 전개 구조를 좀 더 쉽게 이해를 할 수 있을 것도 같은데, 정작 오케스트라 연주에서 호른을 포함하여 각기 다른 악기군들에 의해 그와 같이 교차되는 리듬을 분명히 잘 살려내는 연주가 흔치 않습니다.
이처럼 1악장의 마지막 코다에서 클라이막스를 형성한 후 아래 악보와 같이 제1바이올린은 서서히 소리를 줄이면서 아주 여리게(pp) 가라앉다가 갑자기 초록색 밑줄 부분처럼 세게(f) 이음줄과 스타카토가 결합된 제1주제의 핵심 음형을 통해 1악장은 고요하고 부드럽게 마무리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