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풍경 / 사진출처. 크라우드픽
비 오는 날 풍경 / 사진출처. 크라우드픽
6월은 장마가 시작되는 달이다. 음력 6월 21일 하지는 우리나라가 태양으로부터 가장 많은 열을 받는 시기다. 하지 이후부터는 본격적으로 무더워진다. 하지는 봄부터 차오른 양기가 완전히 부풀어 절정에 이른 상태다. 이제부터는 공기주머니에서 서서히 양기를 빼내고 음기를 섞어 다가올 가을을 향해 서서히 자연의 균형을 맞추어야 할 시기다. 자연이 스스로 극단에 이른 양에서 음을 채워 균형을 맞추는 도(道)의 실천이 오뉴월 여름 장마다.

보리 베고 한해 벼농사 못자리를 부지런히 준비해야 하는 농부에게는 오뉴월 장마는 달갑잖다. 그러나 하느님이 아닌 이상 그 누가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고 개천으로 흘러가는 물을 제 원하는 날과 양만큼 내리게, 흐르게, 멈추게 하랴! 그러나 다행인 것은 줄기차게 내리던 빗줄기도 중간중간 틈을 내며 쉰다는 것이다. 창밖 설핏 잦아든 빗줄기, 구름 사이로 비집고 내민 햇살이 반가운 건 인간만은 아니다. 비바람에 흔들리던 나뭇가지, 풀들도 숨을 돌린다. 빗물이 미끄럼틀을 타며 초록 이파리마다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가 일순간 땅으로 또르르 떨어진다. 풀잎에 맺힌 물방울은 마치 유리구슬 같다. 햇살이 물방울에 비치면 유리 렌즈나 프리즘처럼 주변에 무지개 같은 신비로운 현상이 펼쳐진다.
비 오는 날은 마른 날보다 풀색이 더 선명하게 느껴진다. / 사진출처. Freepik
비 오는 날은 마른 날보다 풀색이 더 선명하게 느껴진다. / 사진출처. Freepik
물방울 통해 보는 세계는 말라 있던 삭막한 세상과 달리 영롱하고 선명하다. 물 알맹이 안에 투영된, 압축된 이미지는 분명 내가 아는, 익숙한 풍경, 대상인데도 색다르게 보인다. 우리는 바깥에 나가 풀잎에 맺힌 작은 물방울을 매개로 일상을 새로이 발견하기도, 잊고 있던 삶의 어느 순간의 감정과 기억을 다시 만나기도 한다. 그러나 물방울은 햇살을 받으면 속절없이 사라진다. 작은 물방울을 들여다보았을 때 느낀 몰입의 즐거움, 물방울을 비추던 빛과 그림자를 통해 세상이 달리 보이던 순간의 경험을 오랫동안 지속할 수는 없을까? 만약 작가들이 자신이 본 물방울의 감성 그리고 투명함, 색, 빛 반사와 굴절 그리고 바닥에 일렁이는 빛 그림자. 이 모두를 가장 가깝게 재현할 재료를 찾는다면, ‘유리’가 제격이다.

나는 일상에서 마주하는 단상, 끊임없이 일어났다 사라지는 생각의 편린을 유리의 언어로 기록한다. 유리판 위에 유리 선이나 판, 조각 등을 유리 파우더와 함께 거듭 교차하여 쌓고 녹이면서 이미지를 만든다. 뜨거운 유리는 서로의 몸을 덮고 때로 서로 껴안으며 퍼지고, 뭉쳐 하나가 된다. 나의 머릿속에 반복적으로 떠오르던 장면들, 나에게 말을 걸어온 사물들의 언어, 감성이 유리의 색, 질감, 모종의 깊이와 일치시키기 위해 작업한다.
-김수연의 작업 노트(2025) 중에서

김수연의 작업은 다양한 유리 조각, 판재를 일련의 순서로 적층해 열로 압축시킨 유리 회화다. 엄밀히 말하면, 칠(漆)이 아니므로, 회화(painting)보다는 드로잉(drawing)에 가깝다. 유리판을 회화의 바탕으로 다양한 색상과 두께의 유리실(cane) 필촉으로, 유리 파우더를 물성의 깊이로 구사한다. 소재는 집과 작업실 그리고 주변을 오가며 보았던 풍경, 사물 등이다. 어느 날 나의 머릿속에 들어와 유의미한 순간으로 박제된 기억 혹은 응시의 순간들이다. 낱장의 드로잉, 파편화했던 일상을 한데 벽에 걸어 군집으로 한데 모아 보고 있으면, 그림보다는 그녀의 일기 같고 핸드폰 속 스냅사진을 보는 듯하다. 동시에 나의 것을 타인에게도 보는 듯한 동병상련도 느껴진다.

오랫동안 자신의 방과 작업실 같은 실내 풍경에 머물던 작가의 시선이 어느 날부터 바깥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실내와 달리 바깥은 시간이 흐르고 계절도, 날씨도 바뀐다. 차도 사람도 등장한다. 그러나 사람이 등장하더라도 손, 다리 등의 신체의 일부만이 등장할 뿐 여전히 타자를 보는 작가의 조심스러운 시선이 감지된다. 화면에는 먹먹한 공기, 적막함, 부재, 쓸쓸함이 느껴진다. 이 분위기는 대상, 풍경과 작가의 교감으로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이 화면 속에 울적함, 적막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비 오는 날은 유독 멜랑콜리하고 처지기 쉽다. 질척대고 고약하며 밉살스러운 비를 탓하고 그로 인한 우울한 기분이나 지독한 슬픔을 토로할 법도 하다. 그러나 작가의 비는 나를 방해하는 비, 우울한 비가 아니다. 작가에게 비 오는 날은 물방울에 유리를 투영하는 날이다. 빛이 물방울, 물 고임을 통과할 때 일어나는 미세한 색채 변화와 반짝임은 유리와 닮았다. 물로 가득한 날의 풍경 속에서 자신이 느낀 순간의 감정과 기억, 인생의 다양한 순간을 유리의 물성과 색채, 질감에 빗대어 재현한다.
[좌] 김수연, <Drawing 111>, 유리, 가마기법, 165×235×35mm, 2023. / 사진제공. ©김수연,  [우] 김수연, <Rainy Day>, 유리, 가마기법, 260×320×20mm, 2023. / 사진제공. ©김수연,  [아래] 김수연, <Puddle #2>, 유리, 가마기법, 연마, 480×390mm×(3T), 2025. / 사진제공. 갤러리완물
[좌] 김수연, <Drawing 111>, 유리, 가마기법, 165×235×35mm, 2023. / 사진제공. ©김수연, [우] 김수연, <Rainy Day>, 유리, 가마기법, 260×320×20mm, 2023. / 사진제공. ©김수연, [아래] 김수연, <Puddle #2>, 유리, 가마기법, 연마, 480×390mm×(3T), 2025. / 사진제공. 갤러리완물
물웅덩이 표면에 물이 똑똑 떨어지는 리드미컬한 파장을 지켜보는 것이라든지 어두운 밤 풀숲이 비바람에 윙윙대는 소리를 편안하게 듣는 적요한 순간이라든지 작가가 비 오는 날 경험한 감미로움, 평안 등의 정서를 먹먹한 모노톤 색채, 둥글둥글한 유리 조각, 느린 필촉으로 표현한다. 비가 오는 내내 길, 건물, 나무, 바위에 깊숙이 스미는 습기, 축축하고 무거운 공기의 고독과 침묵을 유리의 무거운 색채와 희미한 텍스추어에서 느껴진다. 이것은 작가에게 비가 아니라 비를 느끼는 방식, 불러일으키는 감정을 유리라는 물성, 색채, 질감, 깊이에 빗대며 가까운 것을 찾는 맞추는 일종의 퍼즐 놀이, 비슷한 그림 맞추기 놀이와 같은 것이다.
[위] 김수연, <Drawing 09>, 유리, 가마기법, 235×165×35mm, 2022. / 사진제공. ©김수연,  [아래] 김수연, <Drawing 48>, 유리, 가마기법, 233×262×35, 2023. / 사진제공. ©김수연
[위] 김수연, <Drawing 09>, 유리, 가마기법, 235×165×35mm, 2022. / 사진제공. ©김수연, [아래] 김수연, <Drawing 48>, 유리, 가마기법, 233×262×35, 2023. / 사진제공. ©김수연
김수연은 유리의 형태, 색채, 물성, 깊이, 광택, 무게 등을 화면 안에서 조율하면서 자신의 내면, 무형(無形)의 감정을 시각언어로 통찰하고 있다. 비 오는 날의 풍경은 미술사에서 수없이 시도된 장르지만, 김수연의 작업은 투명과 반투명, 매끈하고 껄끄러운 질감의 이질성, 얼음처럼 응고된 유리라는 물질 감각의 형국 속에서 풍경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계, 그러나 인간의 내면에 깃들여 있는 잠재된 세계를 자신의 것에 빗대어 이야기하고 있다. 이것은 물감으로도 시도할 수 있지만, 같은 소재라도 물의 빛 반사와 굴절과 가장 닮은 재료인 유리를 통해 우리가 느낄 분위기, 감수성은 분명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좌] 김수연, <Drawing 70>, 유리, 가마기법, 158×230×20mm, 2023. / 사진제공. ©김수연,  [우] 김수연, <Drawing 71>, 유리, 가마기법, 158×230×20mm, 2023. / 사진제공. ©김수연
[좌] 김수연, <Drawing 70>, 유리, 가마기법, 158×230×20mm, 2023. / 사진제공. ©김수연, [우] 김수연, <Drawing 71>, 유리, 가마기법, 158×230×20mm, 2023. / 사진제공. ©김수연
홍지수 공예 평론가•미술학 박사•CraftMIX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