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 위에 느린 필촉으로 물의 기억을 투영하다
[arte] 홍지수의 공예 완상
그해 여름, '비 오던 날' : 김수연의 유리 드로잉
비 내리는 순간의 감정과 기억을
유리 위에 그림으로 남겨
그해 여름, '비 오던 날' : 김수연의 유리 드로잉
비 내리는 순간의 감정과 기억을
유리 위에 그림으로 남겨
보리 베고 한해 벼농사 못자리를 부지런히 준비해야 하는 농부에게는 오뉴월 장마는 달갑잖다. 그러나 하느님이 아닌 이상 그 누가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고 개천으로 흘러가는 물을 제 원하는 날과 양만큼 내리게, 흐르게, 멈추게 하랴! 그러나 다행인 것은 줄기차게 내리던 빗줄기도 중간중간 틈을 내며 쉰다는 것이다. 창밖 설핏 잦아든 빗줄기, 구름 사이로 비집고 내민 햇살이 반가운 건 인간만은 아니다. 비바람에 흔들리던 나뭇가지, 풀들도 숨을 돌린다. 빗물이 미끄럼틀을 타며 초록 이파리마다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가 일순간 땅으로 또르르 떨어진다. 풀잎에 맺힌 물방울은 마치 유리구슬 같다. 햇살이 물방울에 비치면 유리 렌즈나 프리즘처럼 주변에 무지개 같은 신비로운 현상이 펼쳐진다.
나는 일상에서 마주하는 단상, 끊임없이 일어났다 사라지는 생각의 편린을 유리의 언어로 기록한다. 유리판 위에 유리 선이나 판, 조각 등을 유리 파우더와 함께 거듭 교차하여 쌓고 녹이면서 이미지를 만든다. 뜨거운 유리는 서로의 몸을 덮고 때로 서로 껴안으며 퍼지고, 뭉쳐 하나가 된다. 나의 머릿속에 반복적으로 떠오르던 장면들, 나에게 말을 걸어온 사물들의 언어, 감성이 유리의 색, 질감, 모종의 깊이와 일치시키기 위해 작업한다.
-김수연의 작업 노트(2025) 중에서
김수연의 작업은 다양한 유리 조각, 판재를 일련의 순서로 적층해 열로 압축시킨 유리 회화다. 엄밀히 말하면, 칠(漆)이 아니므로, 회화(painting)보다는 드로잉(drawing)에 가깝다. 유리판을 회화의 바탕으로 다양한 색상과 두께의 유리실(cane) 필촉으로, 유리 파우더를 물성의 깊이로 구사한다. 소재는 집과 작업실 그리고 주변을 오가며 보았던 풍경, 사물 등이다. 어느 날 나의 머릿속에 들어와 유의미한 순간으로 박제된 기억 혹은 응시의 순간들이다. 낱장의 드로잉, 파편화했던 일상을 한데 벽에 걸어 군집으로 한데 모아 보고 있으면, 그림보다는 그녀의 일기 같고 핸드폰 속 스냅사진을 보는 듯하다. 동시에 나의 것을 타인에게도 보는 듯한 동병상련도 느껴진다.
오랫동안 자신의 방과 작업실 같은 실내 풍경에 머물던 작가의 시선이 어느 날부터 바깥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실내와 달리 바깥은 시간이 흐르고 계절도, 날씨도 바뀐다. 차도 사람도 등장한다. 그러나 사람이 등장하더라도 손, 다리 등의 신체의 일부만이 등장할 뿐 여전히 타자를 보는 작가의 조심스러운 시선이 감지된다. 화면에는 먹먹한 공기, 적막함, 부재, 쓸쓸함이 느껴진다. 이 분위기는 대상, 풍경과 작가의 교감으로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이 화면 속에 울적함, 적막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비 오는 날은 유독 멜랑콜리하고 처지기 쉽다. 질척대고 고약하며 밉살스러운 비를 탓하고 그로 인한 우울한 기분이나 지독한 슬픔을 토로할 법도 하다. 그러나 작가의 비는 나를 방해하는 비, 우울한 비가 아니다. 작가에게 비 오는 날은 물방울에 유리를 투영하는 날이다. 빛이 물방울, 물 고임을 통과할 때 일어나는 미세한 색채 변화와 반짝임은 유리와 닮았다. 물로 가득한 날의 풍경 속에서 자신이 느낀 순간의 감정과 기억, 인생의 다양한 순간을 유리의 물성과 색채, 질감에 빗대어 재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