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진 기자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생각보다 많은 곳에서 철로와 마주치게 됩니다. 지하철과 구분하는 지상철 구간이죠. 정부와 서울시는 이렇게 지상으로 뻗은 철도를 땅 속에 묻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는데요. 오늘은 서울시 용역자료를 통해 지상철 구간 지하화가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짚어보겠습니다.
서울역을 지하에 묻는다면 [집코노미 타임즈]
서울의 지상철 구간은 대부분 국가철도입니다. 과거 지하철 노선도에 국철로 표기되던 구간들이죠. 경인선과 경부선, 경의선 등 일제 때부터 깔린 철도의 선형이 그대로 이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지상철이 있는 지역들은 과거부터 중심지였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단점도 많습니다. 일단 철로가 도심을 가로지르면서 자연스럽게 생활권 단절이 발생합니다. 성장하는 도시엔 제약을 가져오죠. 지상 구간 철로로 인해 지역이 쇠퇴하고 노후화되는 부작용도 큽니다. 철로가 지나는 곳에 고가도로나 굴다리, 지하차도가 연속되다 보니 기반시설이 부족해지고, 이로 인해 주변이 슬럼화되는 악순환이 발생하는 것이죠. 서울역에서 용산역까지 지상철 구간에 연속된 굴다리와 주변 풍경을 떠올려 보시면 쉽게 이해가 될 것입니다.

토지이용의 효율성이 저하된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과거 철도물류가 중심이었을 땐 도심 입지와 넓은 역사, 많은 선로가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도로의 발달로 철도물류가 쇠퇴하면서 현재는 창고 위주로 그 기능이 축소됐습니다. 그 와중에 도심 역사 주변은 집적도 높은 시설들로 고도화됐죠. 철로와 역사가 깔고앉은 땅을 활용할 방법을 구상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된 것입니다.

서울의 지상철 구간 지하화 논의가 이뤄지게 된 데는 이 같은 배경이 있습니다.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세우기도 했지만 서울시 또한 10년가량 관련 용역을 진행해 왔습니다. 2040 도시기본계획에도 기반시설의 입체화와 지하화를 반영해둔 상태죠.
서울역을 지하에 묻는다면 [집코노미 타임즈]
최근 발표된 국가상징거리 조성계획을 보면 서울역~용산역 구간 지하화가 다시 한 번 공식화됐습니다. 이 구간의 철로를 땅에 묻으면서 상부는 녹지화시키겠다는 계획이죠.

다만 이 사업은 일시에 진행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닙니다. 그래서 1단계로 우선 고속철도부터 지하화하는 걸 목표로 세웠죠. 수색~광명고속선 건설사업은 지난해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하기도 했습니다. 2단계는 1호선을 지하화하는 것이고, 마지막 3단계가 돼서야 일반철도까지 땅에 묻으면서 지하화사업이 마무리됩니다. 지하의 대체선로를 공사하는 기간 동안 지상에선 정상적으로 열차가 다녀야 하다 보니 이 같은 난공사가 되는 것입니다.
서울역을 지하에 묻는다면 [집코노미 타임즈]
지난해 발표된 용산 마스터플랜에서도 이 같은 계획이 살짝 드러나긴 했습니다. 용산정비창을 개발하면서 철로를 땅에 묻고 지상은 공원화한다는 계획이죠. 용산역에서 한강대교로 뻗어나가는 철로는 그대로 선형공원이 됩니다.
서울역을 지하에 묻는다면 [집코노미 타임즈]
서울역에 대한 공간구상도 이미 나온 상태입니다. 현재의 서울역은 복잡한 동선과 초라한 광장, 꽉 막힌 시야 때문에 전혀 수도의 관문역 같지 않죠. 앞으론 역사를 지하화하고 그 공간을 공개공지로 만들어 광장처럼 쓰게 됩니다. 북부역세권과 남부역세권엔 업무지구가 조성되죠.
서울역을 지하에 묻는다면 [집코노미 타임즈]
해외에도 도심 철도를 지하화한 사례가 많습니다. 뉴욕 그랜드센트럴 터미널은 선로를 2개층으로 지하화하고 '공중권'을 매각해 개발한 사례죠. 파리의 리브고슈는 선로 위에 데크를 깔고 인공대지를 조성했습니다. 센강과 가까워 지하화가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조성한 인공대지엔 공원과 도서관, 학교 등 공공시설을 들였습니다.

가장 많이 회자되는 사례는 역시 뉴욕의 허드슨야드와 하이라인파크입니다. 차량기지 위를 덮어 경제중심지를 조성하고, 기차가 다니던 고가도로는 공원으로 활용한 것이죠. 사실 서울로7017의 모티브가 하이라인파크이기도 합니다.

국내의 지하화 사례로는 경의선숲길이 있습니다. 선형공원이란 점에서 서울숲 등의 공원과는 또 다른 색채를 풍기는 공간이죠. 선형공원은 도시를 접하는 면이 길게 이어지기 때문에 광범위한 지역의 많은 사람들이 녹지를 향유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서울역을 지하에 묻는다면 [집코노미 타임즈]
문제는 돈입니다. 서울역~영등포역까지 경부선 전체를 지하화 하는 데만 12조원가량 소요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이 가운데 올림픽대로를 우회해 땅에 묻는 비용만 2조원입니다. 올림픽대로를 타고 한강철교 부근을 지나본 분들은 이 구간의 도로가 철교를 피하기 위해 다른 곳들보다 낮게 설계됐다는 것을 보셨을 것입니다.

12조원이 너무 정도 규모인지 정부 예산과 비교해보죠. 국토교통부의 2024년 예산안이 총 60조원, 이 가운데 SOC(사회간접자본)가 20조원입니다. 여기서 다시 철도만 떼내면 8조원입니다. 물론 한 해에 12조원의 비용을 모두 투입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이 정도로 규모가 큰 사업이란 의미입니다. 참고로 서울시 예산은 올해 기준 47조원, 도로교통 분야는 2조5000억원입니다. 이렇다 보니 모든 구간의 지하화보단 뉴욕이나 파리처럼 데크를 적절히 활용하는 게 현실적이란 의견이 나오고 있습니다.
서울역을 지하에 묻는다면 [집코노미 타임즈]
지하화 과정에서 서울역과 용산역 등의 화물 취급 기능은 완전히 없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화물 취급 공간을 땅속에 넣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죠. 공간 확보와 매연, 소음 등의 문제 때문입니다.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선 철도 구축의 최상위계획인 국가철도망계획에 반영돼야 하는데요. 이 계획은 10년마다 수립됩니다. 2021년~2030년 구축할 철도 계획인 4차 국가철도망계획은 이미 수립된 상태인 만큼 앞으로 수립될 5차 국가철도망계획(2026년~2035년)에 먼저 반영돼야 합니다.

국가철도망계획에 반영된다 하더라도 예비타당성조사의 관문을 넘어야 삽을 뜰 수 있는데요. 총 사업비가 500억원 이상이면서 재정이 300억원 이상 투입되는 건설사업이면 이 조사를 통해 수지타산을 따져봐야 합니다. 여기서 비용대비 편익(B/C)이 얼마나 되느냐를 보는 것이죠. 통상 B/C값이 1.0 이상일 경우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했다고 합니다.

문제는 현행 철도사업의 B/C 산정 방식입니다. 철도 건설 전후의 교통편익을 따지다 보니 신규 노선은 B/C가 높게 나오고, 지하화는 기존 노선을 대체하는 사업은 B/C가 낮게 나타난다는 것이죠. 유휴부지 활용에 대한 편익 반영도 미흡하다는 게 서울시의 용역보고서에서 지적된 문제입니다. 철로를 지하화하고 남은 땅을 민간에 매각해 돈을 번다면 B/C가 높아지지만, 그 땅을 그대로 공공이 활용해 공원으로 쓴다면 B/C가 낮게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처음 지하화라는 단어를 봤을 때의 막연함대로 결국 이 사업 추진을 위해 넘어야 할 산은 한둘이 아닙니다. 제도를 개편하는 과정에서의 잡음은 물론 막대한 재정 투여, 기나기 공사 기간과 그로 인한 시민들의 불편이 기다리고 있죠. 하지만 진행해야 한다면 앞으로 가시화된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개통과 수색광명고속철도 공사에 맞춰 진행하는 게 가장 효율적입니다. 10년 뒤의 서울역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기획·진행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
촬영 이예주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