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반세계화의 오만과 편견 .. 최병일 <이대 경제학 교수>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다음 달에 예정되어 있는 세계은행-IMF 연례총회가 당초 1주일의 회의기간을 이틀로 축소했다.
세계식량기구(FAO)는 로마에서 열릴 예정인 연례회의 장소변경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다.
내년 7월 개최될 G8 회의는 캐나다의 로키산중에 있는 한적한 휴양지에서 열릴 것이라고 한다.
이들 국제기구나 회의는 모두 갈수록 격렬해지는 반세계화운동의 표적대상이다.
'반세계화'란 자연적 정치적 한계를 초월해 가속화되는 경제활동의 통합현상에 불만을 가진 집단들을 결집시키는 정치적 구호다.
노동단체 환경단체 인권단체 동성애자 무정부주의자 여권운동가 등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각종 정치세력들은 주요 국제회의가 열릴 때마다 반세계화의 깃발 아래 몰려들어 자신들의 불만을 각종 형태로 표시한다.
반세계화 단체는 반세계화 구호나 외치는 낭만적 집단이 아닌,고도로 조직화된 집단이다.
국제기구 운영의 문제점을 주입시키는 위크숍부터 비폭력적 의사표현방법,가두시위 요령,언론과 인터뷰 요령 등을 가르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고 현장에서의 집합장소,경찰과의 대처요령 등이 반복 학습된다.
이만한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체계적으로 운영하려면 거대한 조직과 자금을 가진 배후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들은 겉으론 세계화가 모든 사람을 끊임없는 경쟁으로 내몰기 때문에 반인간적이며,경제적 강자와 약자의 차이를 영속화하기 때문에 반정의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경제적 강자의 기득권을 옹호하고 약자의 경제적 기회를 박탈하는 것은 세계화가 아니라 반세계화다.
반세계화운동의 핵심세력인 선진국의 노동단체는 개도국의 싼 물건 때문에 선진국 노동자들의 대량 실업사태를 몰고 오는 세계화를 중단시키고 싶어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는 쏙 빼고 대신 개도국 노동자의 인권이니 노동환경을 들먹인다.
미국의 최저임금수준에 턱없이 못 미치는 인도네시아 나이키 신발공장 노동자들의 시간당 임금의 비도덕성을 규탄하고,학교에 다녀야 할 나이에 공기도 잘 통하지 않는 침침한 작업장에서 카펫을 짜는 파키스탄 소년의 처절한 얼굴을 보여준다.
이들이 세계화의 피해자이며,세계화는 더 많은 개도국의 노동자들을 이러한 환경으로 내몬다고 주장한다.
그러면 세계화가 중단되면 이들 개도국 노동자들의 삶은 더 나아질까.
천만에 말씀.그나마 외국기업이 진출했기에 국내기업보다 나은 임금을 받을 수 있는 일자리가 생기게 된 것이고,카펫을 짜서 수출할 수 있는 해외시장이라도 있기에 그 소년의 가족이 굶주림을 면하는 것이다.
세계은행은 보다 개방적인 경제체제를 운영해 온 24개 개도국의 30억 시민들이 높은 소득,높은 수명,양질의 교육혜택을 누렸다고 보고하고 있다.
세계화는 아무리 자원이 빈약한 국가도 기업 친화적인 환경을 만들어 내고 유지하는 국가는 잘 살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홍콩과 싱가포르가 대표적인 예다.
이들 국가 노동자와 세계화의 조류를 거부해 왔던 인도 노동자를 비교해 보라.폐쇄적인 체제를 가진 국가일수록 만연된 부패,취약한 제도적 기반,교육 및 후생시설의 부족 때문에 시민들 삶의 질이 후퇴하고 있다.
개도국 노동자들에게는 세계화과정에서 개방된 국제시장이 그들의 처절한 삶을 인간적인 것으로 변모시킬 수 있는 탈출구인 것이다.
임금은 수요와 공급,생산성을 반영한다.
때문에 당장의 임금수준은 낮을지라도,경제성장을 통해 임금은 장기적으로 높아지게 되어 있다.
지난 40년 간 경제성장 과정에서의 한국 노동자의 임금 상승이 대표적인 예다.
세계화를 반인권이며,반정의라고 목소리 높이는 개도국의 양심을 대변한다는 사람들의 주장을 맹목적으로 추종할 것이 아니라,과연 무엇이 인간적이며 무엇이 정의인지 곰곰 생각해 봐야 한다.
한술 밥에 배부를리 없고 경제에는 진화가 있을 따름이라는 냉엄한 현실을 생각해보면,반세계화의 환상은 분명해진다.
byc@ewha.ac.kr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