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 '국장 투자'가 부동산을 대체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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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국민 주식투자 시대
전문가 운용 공모펀드 위축
각자도생 개미, 유튜브로
'위험의 개인화' 정도 심각
운용사 선관주의 희미해져
간접·장기투자 인센티브 절실
박한신 증권부 차장
운용자산이 3조원 정도 되는 한 자산운용사 대표가 얼마 전 혀를 끌끌 차며 한 말이다. 코스피지수가 4000을 넘고 미국 증시도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운 상황이지만, 직접투자 열풍의 부작용도 우려된다는 의미였다. 최근 차기 금융투자협회장으로 뽑힌 황성엽 신영증권 대표도 당선 직후 “전 국민이 눈이 벌겋도록 직접투자에 몰두하는 것이 건강하지만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어떤 문제의식일까.
1400만 개인투자자가 ‘각자도생’과 ‘자기책임’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얘기다. 간접투자 수단인 공모펀드가 크게 위축되고 종목 투자와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이 급성장하면서다. 개인들이 투자의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결정하고, 혼자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내몰렸다는 뜻. 전체 공모펀드 순자산총액은 지난 17일 기준 630조원가량으로 2020년 말에 비해 약 350조원 증가했다. 그러나 증가분의 대부분은 ETF(240조원)와 파킹형 단기금융 상품(53조원)이 차지한다. 이 기간 주가가 오른 데 따른 증가까지 고려하면 5년간 사실상 ‘역주행’을 한 셈이다.
“물론 운용 능력이 떨어지는 펀드매니저들도 있어요. 하지만 최소한 재무제표 보고 거시경제 분석해서 투자하죠. 우리나라는 개인이 종목 고르고 언제 팔지까지 다 판단해야 해요. 직원들이 업무 시간에 화장실에서 유튜브 보는 기업이 과연 얼마나 잘될까요?” 위 자산운용사 대표의 말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미국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미국은 1년을 기준으로 장기투자자와 단기 트레이더의 세금을 확실하게 차별한다. 차익 수준에 따라 보유 기간이 1년 이하라면 최대 40% 가까이를, 1년 초과라면 0~20% 세율을 매긴다. 자본이 기업에 오래 머물러야 한다는 철학, 전 국민이 단타만 치면 시장이 ‘투기판’이 된다는 이유가 깔려 있다.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장기투자를 할 때 개인의 승률도 따라서 올라간다.
1세대 스타 펀드매니저 출신인 목대균 KCGI자산운용 대표는 이에 대해 “장기적으로 미국 시장은 연평균 6~7% 수익을 냈다. 하지만 투자기간을 1년으로 놓고 보면 마이너스, 반토막 수익률도 수두룩하다”고 설명한다. 장기투자를 유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다행히 금융투자협회장에 당선된 황 대표가 취임 일성으로 장기투자 인센티브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연금 제도를 중심으로 장기투자 문화가 정착돼야 국가 전략산업에 마중물이 흘러가고 국민들의 노후가 풍요로워진다는 인식이다. 실제 그렇게 되면 투자는 전문가에게 맡기고 개인투자자들은 생업에 보다 집중하는 문화가 형성될 수 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지적한 것처럼, 자산운용사들이 선관주의(선량한 관리자의 의무)보다 개인들에게 팔리는 상품 출시에 열중하는 현상도 줄어들 것이다. 이른바 위험의 개인화(외주화) 또한 완화된다.
정부·여당은 몇 달 전부터 개인 투자를 적극 장려하고 있다. 부동산에 쏠린 가계 자산을 증시로 돌려보자는 취지다. 하지만 항상 ‘어떻게’와 ‘디테일’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아도 동학이든 서학이든 한국 개인투자자는 단타와 몰빵을 좋아한다. 외신에서 ‘한국 개미가 증시 물을 흐린다’는 민망한 보도를 할 정도다. 개인 중심의 국내 주식 투자 관행은 뿌리가 깊고 쉽게 바뀔 것 같지도 않다. 장기적으로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국내 증시가 정말 부동산과 미국 주식을 대체하려면, 일희일비하지 않고 돈을 묻어둘 수 있게 하는 장기투자 인센티브가 꼭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