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 ‘공공의료 만능론’ 경고한 서울대 의대 교수들

李 정부 의료개혁 과제 다룬 서울대 의료개혁TF
"정치적 의지는 강하지만 정책 준비 매우 부족"
서울대학교 국가미래전략원 의료개혁TF토론회에서 패널들이 토론에 참여하는 모습. 왼쪽부터 하은진 서울대학교병원 신경외과 중환자의학과 교수, 조은영 한국 YWCA연합회 회장, 송경준 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 부원장, 민차영 의료혁신소통과장, 김홍수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보건학과 교수, 김성주 한국중증질환연합회 대표.
이재명 정부의 지역·필수·공공의료를 중심으로 한 의료개혁 정책이 충분한 근거 없이 추진되고 있다는 비판이 서울대 의대 교수들 사이에서 제기됐다. 공공의료를 의료개혁의 ‘만병통치약’처럼 취급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공공의료 만능론 경계…“정책 근거 부족”

서울대학교 국가미래전략원 의료개혁TF토론회에서좌장을 맡은 윤영호 서울의대 교수. /사진=이민형 기자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 의료개혁TF는 12일 서울대 우석경제관에서 ‘모두를 위한 의료개혁 성공을 위해 필요한 합리적인 논쟁점들’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고 이재명 정부 의료개혁 방향성을 짚었다.

발제를 맡은 오주환 서울의대 교수는 “이재명 정부는 지역·필수·공공의료 강화를 중심으로 의료 시스템 개혁하겠다는 정치적 의지를 피력하고 있으나 정치적 의지를 뒷받침하는 정책적 준비가 매우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정책 효과에 대한 실증적 근거가 없고 예상되는 부작용에 대한 위험관리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오 교수는 공공의료를 바라보는 정부의 관점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공공의료가 지역 의료격차 해소나 필수의료 확충이라는 목표를 통해 달성돼야 할 ‘결과’로 보는 시각이 있음에도, 정부가 이를 문제를 해결할 ‘수단’으로만 접근하고 있다는 우려다.

그는 “공공의료를 도구적으로 보는 사고에 대해서는 상당한 합리성을 갖춘 이견이 존재한다”며 “윤석열 정부가 ‘의사 수’를 만병통치약으로 사고한 것과 유사한 오류로, 이재명 정부가 ‘공공의료’를 동일하게 만병통치약으로 사고하고 있을 가능성이 부정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오 교수는 앞으로 정부 의료 정책 추진 과정에서 추진 논거와 반대 논거 간 건강한 논쟁 절차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런 과정이 부족하면 전 정부와 마찬가지로 의료개혁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의료계 내부에서 나타난 갈등 양상에 대한 문제 제기도 나왔다. 김정은 서울대 의대 학장은 지난 의정 갈등 과정에서 동료 전공의를 비방하고 신상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개한 이른바 ‘의료계 블랙리스트’ 사태를 언급하며 “교육하는 입장에서 블랙리스트 사건을 보면서 포용과 승복, 공감과 소통, 희생과 배려 세 가지를 비교과 과정에라도 넣자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시민 참여는 남은 과제

서울대학교 국가미래전략원 의료개혁TF토론회에서 하은진 서울대학교병원 신경외과 중환자의학과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이민형 기자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가능성과 의료계가 요구하는 개선 방향이 충돌한다는 지적도 청중 사이 제기됐다. 한준희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학생은 “의료계 요구를 모두 반영하려면 결국 더 많은 건강보험료를 걷거나 지출을 줄여야 한다”며 “의료계가 무엇을 희생할 수 있는지 질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하은진 서울대병원 신경외과 중환자의학과 교수는 “예방 중심으로 시스템을 전환하면 중증·응급환자 관리 비용이 줄어들어 현 재정 수준에서도 지속이 가능한 구조를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날 출범한 정부 의료혁신위원회(혁신위)를 둘러싼 우려도 이어졌다. 혁신위 위원인 조은영 한국YWCA연합회 회장은 “첫 회의를 해보니 변화가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며 “정부는 탑다운(하향식)과 버텀업(상향식) 방식을 병행하겠다고 했지만 실제로 이를 운영해본 경험이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손영래 의료개혁추진단장을 대신해 참석한 민차영 의료혁신소통과장은 다양한 공론화 방식을 활용하겠다고 설명했다. 그는 “혁신위와 시민 패널의 역할이 모호하다는 평가를 받았다”라면서도 “지역에서 타운홀 미팅을 열거나 소규모 공론화를 여러 차례 개최하는 등 국민 의견을 지속해서 수렴할 것”이라고 말했다.

좌장을 맡은 윤영호 서울의대 교수는 “정부가 아젠다를 정해놓고 시작하기보다 시민 참여를 통해 시작한다면 더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세계 여러 나라의 방안을 활용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한편 혁신위에는 100~300명 규모의 시민 패널이 참여해 위원회가 다룰 의제를 정하고 공론화가 필요한 사안에 대해 권고안을 제출하게 된다. 이날 민 과장에 따르면 내년도 시민 패널에 책정된 예산은 20억원이다.

이민형 기자 mean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