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덮으려고"…조진웅·조세호·박나래 논란에 '음모론' [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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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계 연쇄 이슈에 '음모론 판' 된 한국 사회
여야 지지자들 "불리한 정치 사건 덮으려는 공작"
음모론 공공연히 옮기는 정치인·스피커들까지
정치권에 따르면 이경 전 더불어민주당 상근부대변인, 친여 성향 방송인 김어준씨 등은 최근 연쇄적으로 터지고 있는 연예계 이슈가 보수 진영에 불리한 사건들을 덮기 위한 공작이라는 음모론을 펴고 있다. 이에 지지층들도 크게 동요하고 있다. 이들이 주장하는 '보수 진영에 불리한 사건'으로 언급되는 사안들은 윤석열 전 대통령·김건희 여사 관련 재판, 내란 관련 재판, 조희대 대법원장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입건 등이다.
김씨는 지난 9일 유튜브 라이브 방송에서 "문재인 정부 시절의 활동 때문에 선수들한테 작업을 당한 것이라고 의심한다"고 음모론에 군불을 지폈다. 이 전 부대변인은 같은 날 페이스북에 "'누군가'에게 불리한 '보도'가 나올 때마다 '딴 게' 터진다"라고 시작하는 장문의 글을 써 올렸다.
이 전 부대변인은 "2013년 3월 '성 접대 사건'이 폭발해 김학의 법무부 차관이 사퇴한 바로 그날,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는 갑작스럽게 불거진 '김용만 불법도박 사건'에 집중됐다"며 "이것이 단순한 우연일까. 기득권을 누리던 권력자들이 벌인 범죄들이 불거질 위기가 닥칠 때마다 연예인 이슈가 등장해 판을 흐리던 패턴, 10년이 지나도 이 공식은 깨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2025년 지금 이 순간, 내란 재판은 사라지고 조진웅의 이름만 남았다. 대통령이 역도(逆徒)의 이름으로 피고인석에 앉은 역사적 순간이지만, 관련 보도는 되려 현저히 줄어들고, 중대한 김건희 범죄 의혹 보도는 기적처럼 줄어들고 연예인 이름으로 덮였다"고 덧붙였다.
이와 동시에 보수 진영에서도 공작의 주체만 달리한 같은 내용의 음모론이 터져 나오고 있다. 여기서는 김현지 대통령실 제1부속실장, 범여권이 추진하는 국가보안법 폐지 등의 이슈를 가리기 위해 진보 진영에서 연예계 이슈를 의도적으로 터트렸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국민의힘 관계자 등을 비롯한 보수층에서는 "조진웅 갖고 싸우면 그들이 원하는 대로 말려드는 것", "문제는 조진웅이 아니라 '현지 누나'의 국정농단과 국가보안법 폐지에 있다. 좌파 세력의 의도는 중대한 시점에서 다른 이슈를 꺼내 국민들의 초점을 흐리는 데 있다", "조진웅, 박나래 등으로 대중의 눈과 귀를 돌려놓고 지금 국회에서는 간첩들만 좋아할 만한 국가보안법 폐지 법안을 올렸다" 등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명박 정부였던 2010년 한미 FTA 추가 협상 이후 가수 크라운제이의 마약 적발 소식이 전해졌을 때도 미심쩍다는 반응이 나왔으며, 2014년에는 방송인 노홍철의 무한도전 음주운전 하차를 두고 박근혜 정부가 반(反)정권 성향이던 MBC 길들이기에 나섰다는 말이 퍼지기도 했다. 2021년 대선 당시에도 이재명 후보 아들의 도박 의혹이 불거지자, 김남국 의원은 "김건희씨 의혹을 덮기 위해 후보자 아들 문제를 갑자기 터뜨렸다"고 주장했었다. 특정 세력에 불리한 정치적 국면이 도래할 때마다 유명인 스캔들이 터진다는 공식은 10년 넘게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정치에 대한 불신이 낳은 병폐라고 지적한다.
김영익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객원교수(정치학 박사)는 "연예인들에게 큰 사건이 터질 때마다 '정치적 약점을 덮으려는 것 아니냐'는 음모론이 나오는 현상 자체는 우리 사회가 병들어 있음을 보여준다. 즉, 우리 사회가 고도의 정치병에 걸려 있다는 것"이라며 "한국은 민주화된 사회이기에 언론의 다양성이 확보된 환경에서 집권 세력이 모든 보도를 통제하고 완전히 덮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러한 시각은 곧 권위주의 시대 독재 국가의 시민이 가질 수 있는 시각에 가깝다"고 했다.
김 교수는 음모론의 확산을 막고 민주주의 시스템을 지키기 위한 첫걸음으로 '오피니언 리더의 자중'을 강조했다. 그는 "책임 있는 오피니언 리더들부터 자중해야 한다. 일반 시민들과 달리 오피니언 리더들은 자신들의 발언 하나하나에 따르는 사회적 영향력을 인지해야 한다"며 "이들이 사회의 불안을 조장하거나, 특정한 목적을 갖고 병든 시각을 전파하면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와 거리가 먼 위험한 길로 가게 된다"고 덧붙였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