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 칼럼] 혹시 나도 꼰대가 아닐까

좌동욱 경제부 차장
“서른이 넘었는데 아직도 엄마가 차를 태워 주네.”

예전 맞은편 아파트에 살던 ‘골드 미스’를 두고 “요즘 애들은 도대체 개념이 없다”며 여러 차례 힐난했다. 걸어서 10분 거리의 지하철역까지 매일 엄마 차를 얻어타고 출근하는 게 한심해 보였다. 이런 일이 정작 우리 집에서 일어나는 걸 최근 알았다. 눈, 비가 오면 아내가 아이들을 학교까지 차로 데려다줬는데 어느새 일상이 돼 있었다. 내가 몰랐던 이유? 아내와 아이 모두 “개념 없다”는 잔소리가 싫었던 것이다.

나도 어느새 ‘꼰대’가 된 게 아닐까. 최근 화제인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를 보며 더 강한 의심이 들었다. 꼰대는 구시대적 사고방식, 경험을 강요하는 권위적인 사람을 일컫는 속어다. 성공 경험이 많고 지위가 높을수록 전염되기 쉽다. 정도의 차이만 있다.

성공할수록 '꼰대'될 가능성

“요즘 젊은이들이 해외 투자를 많이 하는 이유가 ‘쿨해서’라고 하더라”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발언도 젊은이들에겐 ‘꼰대’처럼 비친다. 젊은 세대를 진심으로 걱정한 발언이었지만, “내 판단은 맞고 젊은이는 틀렸다”는 뉘앙스가 깔려 있다.

꼰대 문화는 불편한 정도를 넘어서 소통을 막고 조직을 병들게 한다. 드라마에서 송 과장은 회의 도중 “사실대로 인정하고 매뉴얼대로 처리하는 게 낫겠다”고 말한다. 유튜버가 회사 측에 제기한 문제를 솔직히 인정하고 고객 피해를 보상하자는 제안이다. 하지만 김 부장은 “유튜버한테 연락해 영상을 내리라고 해”라고 지시한다. 반대 의견은 없다. 논란이 확산할 조짐에 김 부장은 직원들에게 말한다. “영 아니다 싶으면 회의 때 강하게 말렸어야지.”

이런 문화가 확산하면 기업의 생존까지 위협한다. 폭스바겐의 디젤게이트, 웰스파고 교차판매 스캔들도 내부 부조리를 이야기할 수 없는 두려움의 문화에서 비롯됐다(<두려움 없는 조직>·에이미 에드먼슨 지음). 정권 출범 첫해부터 소위 ‘비상대권’을 거론한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해 참모들이 침묵했던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다. 차로 등교하는 사실을 쉬쉬했던 우리 집도 마찬가지다.

AI 시대 키워드는 소통과 협력

패스트팔로 시대엔 정답을 열심히 따라가도 성공할 수 있었다. 조직에 충성하는 꼰대가 몇 명 있더라도 경쟁력을 훼손하지 않았다. 인공지능(AI)이 정답을 순식간에 알려주는 요즘 시대엔 창의력과 독창성이 중요하다. 이런 역량은 실수나 실패를 털어놓고 건전한 비판을 제기할 수 있는 조직에서 생겨날 수 있다.

자율주행차(웨이모)와 알파고(AI)를 개발한 구글X는 몇 년간 추진된 프로젝트를 중단하면 ‘두둑한’ 보너스를 준다. 아스트로 텔러 최고경영자(CEO)는 “가능성 없는 프로젝트를 질질 끄는 것보다 실상을 정확히 파악해 중단시킨 직원에게 보상하는 편이 낫다”고 설명한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문화를 만드는 동시에 성과 없는 조직을 없애는 인센티브 제도가 남다르다.

최근 국내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이 둔화하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현직 대통령이 두 번씩이나 탄핵당하는 국내 정치 문화도 우려스럽다. 다른 구조적 원인도 많겠지만, 과거 유교 문화에서 비롯된 ‘연공 서열’의 영향도 크다는 생각이 든다. 연말을 맞아 주변을 한번 돌아보길 권한다. 올바른 소통을 하고 있는가, 우리 조직은 건강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