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發 '초저가 시대'의 종말?…글로벌 물가 쇼크 오나 [글로벌 머니 X파일]

지난 7월 1일 중국 서부 칭하이성 하이난 지역에서 양들이 태양광 패널 아래에서 풀을 뜯고 있다. AP연합뉴스
최근 중국발(發) 디플레이션 수출이 정점을 찍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 정부가 자국 기업의 소모적 과다 경쟁을 막으면서다. 과잉 생산된 중국산 저가 제품이 감소하면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중국의 디플레이션 수출은 최근 몇 년 간 글로벌 경제의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요인 중 하나였다.

중국 수출가격 지수 반등

29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최근 중국 국가통계국(NBS)은 지난달 중국 생산자물가지수(PPI)가 전년 동기 대비 2.1% 감소했다고 밝혔다. 37개월 연속 마이너스 행진을 이어갔다. 중국 내 디플레이션 압력을 보여주는 수치다.

하지만 하락 폭이 9월(-2.3%)보다 축소됐다. 특히 중국 정부의 정책이 집중된 태양광, 철강 등 핵심 산업재의 가격 하락세가 눈에 띄게 둔화했다. 반면 중국 기업들의 고통은 한계에 달했다는 분석이다. 지난달 중국 산업이익은 전년 동월 대비 5.5% 감소했다. 앞선 두 달간의 증가세에서 급반전했다.

중국 수출가격 지수는 반등했다. 2022년 이후 하락을 이어오다가 지난 6월에 전년 같은 달 대비 0.5% 상승했다. 25개월 만에 플러스 전환이다. 지난달 중국 상품 수출가격(달러 기준)도 전월 대비 1.5% 정도 상승했다. 중국발 디플레이션 수출이 정점을 지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다만 지난 8월 기준 중국 수출가격은 2022년 평균 대비 약 17% 낮은 수준이다.

최근 중국 정부는 이른바 강력한 '반(反)내권' 정책의 고삐를 죄고 있다. 중국 지도부는 경제의 질적 성장을 가로막는 '악성 무한 경쟁', 즉 내권(内卷·Neijuan)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내권'이라는 용어는 본래 인류학자 클리포드 기어츠가 농업 사회에서 투입 대비 산출이 정체되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개념이다.

그러나 2020년대 중국 사회에서는 이 단어가 기술 혁신 없이 가격 인하 경쟁에만 몰두해 공멸하는 '제로섬 게임'을 지칭하는 키워드로 떠올랐다. 시진핑 체제 3기 지도부는 '내권'은 중국 경제의 질적 성장을 가로막는, 반드시 타파해야 할 구습으로 규정했다.

이는 중국 경제가 직면한 구조적 위기감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다. 부동산 시장의 장기 침체, 막대한 부채 등 복합적인 요인으로 중국의 성장세가 둔화했다. 중국 경제는 만성적인 공급 과잉에 시달려왔다. 특히 정부의 전략적 지원을 받은 산업에서 문제는 심각했다. 태양광, 배터리, 전기차 등은 정부의 막대한 보조금과 저가 금융을 바탕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통제 불능 수준의 공급 과잉으로 이어졌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인용한 키엘연구소 분석에 따르면, 중국의 산업 보조금은 경제협력기구(OECD) 평균의 3~9배 수준에 달한다. 이런 비정상적인 지원은 구조적 과잉 설비를 누적시켰다는 지적이다. 지난 8월 로이터통신의 분석에 따르면 중국 태양광 패널 업체들은 세계 연간 수요의 약 2배 수준을 생산할 수 있는 설비를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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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수 부진 속에서 기업들은 생존을 위해 출혈 경쟁에 내몰렸다. 블룸버그통신의 분석에 따르면 올해 기준 중국 기업의 34%가 이자 비용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좀비 기업' 상태로 추정된다. 25년 만에 최고 수준이다. 올 상반기 중국 상장사의 약 25%가 영업적자를 기록했다는 분석도 있다.

이런 중국 내부의 침체는 외부로 전가됐다. 중국 기업은 내수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재고를 해외로 밀어냈다. 이는 글로벌 시장에서 가격 붕괴로 이어졌다. 영국의 경제 분석 기관인 '캐피털 이코노믹스'에 따르면, 2022년 중반 이후 중국의 수출 가격은 17~20%대 하락했다.

글로벌 물가 상승 막은 중국 저가 제품

이는 수입국의 물가를 끌어내리는 디스인플레이션 요인으로 작용했다. 동시에 수입국의 제조업 기반을 위협하며 글로벌 무역 마찰도 격화됐다. 요르그 부트케 전 주중 유럽상공회의소 회장은 유로비즈 인터뷰와 인터뷰에서 "유럽 기업들에게 중국의 과잉 생산은 실존적 위협이었다"고 토로했다. 브래드 세처 미국 외교협회 선임연구원은 “중국의 제조업 상품 잉여분(수출-수입)은 2조 달러가 넘고 이는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약 10.5%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중국 지도부는 이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9월 공산당 이론지 '치우스' 기고문에서 "노후하고 비효율적인 생산능력의 질서 있는 퇴출을 가속화하고, 발전의 질과 효율을 높여야 한다"며 ""라고 강조했다. 앞서 7월 중앙정치국 회의에서는 "무질서한 경쟁의 관리 강화"와 "일부 산업의 중복·과잉 생산능력 정리 강화"를 하반기 핵심 과제로 설정했다.

이는 과거의 공급 개혁과는 궤를 달리하는 '제2차 공급측 개혁'으로 평가된다. 2015년의 1차 개혁은 국유기업 중심의 철강·석탄 설비 폐쇄라는 물리적 방식에 집중했다. 이번 반내권 정책은 민간 섹터의 치킨 게임을 멈추고 질서 있는 시장 재편을 유도하는 고도로 정교화된 시장 개입 전략이라는 평가다.

옥스퍼드대 중국센터의 조지 매그너스 연구원은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문에서 "시진핑의 반내권 드라이브는 경제적 절박함의 표현"이라며 "과잉 생산을 해결하지 못하면 중국 경제는 '일본화'를 피할 수 없음을 그들도 알고 있다"고 진단했다.

중국의 반내권 정책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다. 금융, 환경 표준, 사법적 청산 절차 그리고 공급망 거래 관행까지 포괄하는 다층적인 정책 패키지로 구체화해 있다는 분석이다. 무분별한 가격 인하 경쟁을 지속할 수 있는 기업의 '체력' 자체를 소진하는 강력한 제동 장치다.

올 하반기 반내권 정책 중 가장 파괴력이 큰 조치로 공급망 금융 구조의 강제적 변경이 꼽힌다. 지난 3월 중국 국무원은 '중소기업 지불보장 규정'을 개정하고 지난 6월부터 전면 시행했다. 핵심은 '대기업 및 국유기업이 중소 공급업체로부터 물품이나 용역을 받은 후 60일 이내에 대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의무 조항이다. 위반 시 처벌 수위가 대폭 강화됐다. 최종 고객에게 돈을 받아야 하청업체에 주겠다는 계약 조건도 금지됐다.

이는 중국 산업 구조의 근간을 흔드는 조치라는 평가다. 그동안 중국의 전기차, 배터리, 태양광 대기업들은 6개월에서 길게는 12개월에 달하는 긴 어음 결제나 대금 지급 지연이 일반적이었다. 하청업체들의 자금을 사실상 '무이자 운전자본'으로 활용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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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대기업이 풍부한 현금 유동성을 바탕으로 경쟁사의 고사를 유도하는 출혈 경쟁을 장기간 지속할 수 있게 하는 '숨겨진 보조금' 역할을 했다.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요구에 맞춰 원가 이하의 납품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산업 전체의 가격 하락 압력으로 이어졌다는 지적이다.

실제 결제 주기가 60일로 강제 단축되면서 대기업의 현금 흐름 압박이 가중됐다. 더 이상 하청업체의 자금을 유용할 수 없게 되면서, 무리한 생산 확장과 저가 수주 경쟁을 지속할 수 있는 자금 여력이 축소되는 이른바 '금융 브레이크'가 걸린 것이다. BYD, 장성자동차(GWM), 샤오미 오토 등 20여 개 주요 완성차 업체들이 6월 규정 시행 직후 '60일 결제 주기를 준수하겠다'고 잇따라 밝혔다.

'기술 표준'과 '에너지 쿼터'도 정교한 시장 퇴출을 촉진했다는 평가다. 단순한 생산량 감축을 넘어, 비효율적인 설비를 시장에서 영구적으로 제거하는 구조적 접근이다. 지난 9월 국가표준화관리위원회(SAC)와 공업정보화부(MIIT)는 폴리실리콘 생산의 단위당 에너지 소비 한도를 대폭 강화하는 강제 표준 초안을 발표했다.

업계 분석에 따르면, 이 기준이 엄격히 적용될 경우 중국 내 폴리실리콘 생산 능력의 약 20~30%에 해당하는 노후 설비가 퇴출당할 위기에 처한다. 공급 과잉을 물리적으로 해소하는 가장 확실한 수단 중 하나다.

국가발전개혁위원회(NDRC)도 나섰다. 2025~2026년 재생에너지 소비 쿼터제에서 처음으로 철강, 시멘트, 폴리실리콘, 데이터센터 등에 대한 구체적인 재생에너지 사용 비율을 명시했다. 허베이성 탕산 지역의 제철소들에 대해 지난 8월 말부터 30% 수준의 감산 명령이 내려진 것도 이런 맥락에서 해석된다.

'좀비 기업'의 퇴출도 중국 경제의 오랜 숙제였다. 반내권 캠페인에선 그 실행 강도가 달라졌다. 국무원 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SASAC)와 금융 당국은 수익을 내지 못하면서 정부 보조금과 국책 은행의 대출 연명으로 버티는 기업에 대한 신용 공급 중단에 나섰다.

올 하반기 중국 주요 시중은행들은 한계 기업에 대한 대출 심사 기준을 대폭 강화했다. 만기 연장을 거부하는 사례가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판공성 인민은행 총재는 지난 9월 금융가 포럼 기조연설에서 "구조조정 대상인 좀비 기업에 대한 무분별한 자금 지원은 차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7월 발표된 '가격법 개정 초안'도 내권식 저가 경쟁을 규제하고 시장 질서를 회복하는 것을 명시적 목표로 제시했다. 반내권 정책은 모든 산업에 균일하게 적용되지는 않았다. 공급 과잉이 가장 심각한 태양광, 철강, 배터리 및 전기차 섹터가 주 타깃이다.

업계에선 중국의 디플레이션 수출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라고 본다. 가격 파괴의 강도가 정점을 찍고 내려오는 단계라는 것이다. 중국 기업은 이제 60일 결제 규정과 에너지 쿼터라는 제약 조건으로 더 이상 원가 이하로 물건을 덤핑할 수 없게 됐다. 이는 글로벌 교역재 가격의 하단 가격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디플레이션 압력은 점차 약화할 것이다.

글로벌 인플레이션 자극할까

중국의 반내권 정책은 글로벌 경제에는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이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선진국 중앙은행들은 그동안 중국산 저가 수입품이 인플레이션을 낮추는 데 기여했다고 설명해왔다. 이 효과가 사라지면 글로벌 인플레이션 경로는 상향 조정될 수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내년 글로벌 인플레이션이 3.5% 수준에서 안정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중국의 공급 개혁이 강력하게 작동할 경우 재화 인플레이션이 예상보다 높게 유지될 수 있다. 중국산 제품의 가격 상승은 미국과 유럽의 수입 물가를 자극해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서비스 물가와 '끈적한 인플레이션(Sticky Inflation)'을 유발할 수 있다.

매쿼리의 래리 후 수석 중국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반내권은 결국 기업들의 '가격 결정력' 회복을 목표로 한다"며 "이는 중국발 수출 가격의 바닥을 높여 글로벌 디스인플레이션 효과를 약화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미국 중앙은행(Fed)과 유럽중앙은행(ECB)의 금리 인하 속도를 늦추는 요인이 될 수 있다. 값싼 중국산의 시대가 저물면 글로벌 공급망 비용 상승으로 중립 금리(경제를 과열시키지도 냉각시키지도 않는 금리 수준)가 구조적으로 상향될 가능성도 있다. 이는 각국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달성하기 위해 더 높은 금리 수준을 더 오래 유지해야 한다는 뜻이다.

미국의 경우 중국산 수입품 가격 상승은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과 맞물려 인플레이션 압력을 더욱 가중할 수 있다. 이는 Fed의 통화 정책 운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경기 침체 우려 속에서도 금리 인하를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한국은 중국 공급망 정책 변화에 민감하다. 한국의 대중국 수출 비중은 20%가 넘는다. 중국의 반내권 정책은 한국 주력 산업에 '반사이익'과 '비용 상승'이라는 두 가지 요인이 같이 작용한다. 중국의 과잉 설비가 통제되면 가장 큰 수혜를 입는 분야는 철강 및 석유화학이다. 이들 산업은 중국의 저가 공세로 인해 장기간 수익성 악화에 시달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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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태양광 등에서도 중국의 출혈 경쟁이 완화되면 한국 기업들이 기술력과 품질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방어하는 데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디스플레이 및 일반기계 분야 역시 중국 내 '내권' 경쟁 완화로 출혈 경쟁 압력이 낮아질 수 있다.

반면 리스크 요인도 있다. 배터리 소재, 희토류, 범용 화학제품 등 중국산 원자재 및 중간재 의존도가 높은 산업은 비용 상승 압력을 받을 수 있다. 중국의 환경 규제와 수출 통제가 겹치면 공급망 불안정이 커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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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