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도 중력이 있어, 그래서 끝나도 끝나지 않을 때가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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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남무성의 재즈와 커피 한잔보험사에서 보내온 선물 상자가 며칠째 문밖에 놓여있다. 돌려보내겠다고 하니 그냥 쓰시라고 하지만 청약을 철회한 마당에 집안으로 들일 수가 없다. 마침, 바쁜 일정으로 해결을 못 하고 있는데 현관문을 여닫을 때마다 마치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아서 불편하다. 길 잃은 상자를 어서 우체국으로 들고 가야겠다.
불확실성과 해결하지 않은 감정
노래가 끝나도 감정은 남아 있어
나이가 들면서 명확하게 정리하는 습관 같은 게 생겼다. 마음속에는 끝났지만 실제로는 끝나지 않는 일들이 많기 때문에, 사소한 것들까지 꼬박꼬박 메모하고 결론을 내린다. 예전처럼 ‘어떻게든 해결되겠지’라고 외면해 버릴 배짱도 없다. 그런데 이게 꼭 좋은 방식인지는 모르겠다. 어떤 책에서는 인생이란 원래 해결되지 못한 채 지나가는 시간이라 했고, 또 누군가는 설명되지 않는 일들을 받아들이며 사는 것이라고 했다.
“살인이 일어났던 숲은 산불로 전부 타버렸다. 시간이 지나 숲은 다시 자라고 이상하게도 예전보다 더 울창하고 생명력이 넘치며, 길들여지지 않은 모습이었다.”
[The Beach Boys - God Only Knows]
음악에서 해결하지 않는 감정이란 무엇일까? 쉽게 말해 원래의 자리로 떨어져야 할 음을 잠시 붙잡아 두는 방법이다. 재즈에서는 오래전부터 이런 미완의 감정을 다루는 화성이 중요한 미학이다. 보통의 노래들은 긴장에서 안정으로, 떠 있는 느낌에서 착지하는 느낌으로 움직인다.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야 할 음이 있고 그 자리에 돌아오면 해소된 느낌을 만든다. 예를 들어 생일 축하 노래를 보자면,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이쯤에서 작곡을 끝낼 수 없는 것이다. 아직 노래가 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음악에도 중력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중력을 무시한다면 어떻게 될까? 듣는 사람은 끝날 것 같지만 끝나지 않는 느낌을 받는다. 사랑 고백을 할 것 같다가 말을 삼키는 순간 같은 거랄까, 이런 식의 해소되지 않는 감정은 어떤 기대와 미련, 기다림으로 남는다. 노래가 끝나도 감정은 남는 것이다.
문밖에는 택배 상자가 그대로 있다. 해결되지 않은 일들은 그렇게 어딘가에 남는다. 아직 정리되지 못한 내 마음이 상자 속에 들어있는 건 아닐까?
남무성 재즈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