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억 달러' GTA6의 출시 연기…반도체 시장까지 '흔들' [글로벌 머니 X파일]

락스타게임즈, GTA6
최근 콘솔용 게임 하나가 글로벌 게임 시장, 차세대 컴퓨터 하드웨어 전략, 글로벌 반도체 수요 등 다양한 업종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인기 게임 시리즈의 그랜드 태프트 오토(GTA)의 신작인 'GTA6' 출시일이 연기되면서다. 최근 인공지능(AI) 기술 발전에도 고도화된 지식 노동 시장의 관리 리스크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100억 달러' IP의 출시 연기

26일 글로벌 게임업계에 따르면 최근 미국 게임사 락스타 게임즈의 모기업 '테이크투 인터랙티브'는 GTA 6의 출시일을 내년 11월 19일로 공식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당초 '2025년 가을' 목표를 '2026년 5월'로 조정한 지난해 5월의 1차 연기에 이은 두 번째 연기 발표다. 해당 소식 발표 직후 테이크투의 주가는 시간 외 거래에서 7% 이상 급락하며 시장의 즉각적인 반응을 보여줬다.

GTA 시리즈는 현대 대중문화를 상징하는 아이콘 중 하나라는 평가다. 단일 게임 IP(지식재산권)으로 수십억 달러를 창출했다. 2013년 출시된 전작 GTA5 출시 12년이 지금까지 누적 판매량 2억 2000만장을 돌파했다. 출시 10년이 넘은 올해에도 분기당 약 500만 장씩 꾸준히 판매되는 실적을 보여줬다.

테이크투의 실적 발표와 IT 전문매체 '트윅타운'의 집계에 따르면, GTA 프랜차이즈는 GTAV 출시 이후 12년간 최소 102억 210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 할리우드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영화 프랜차이즈 몇 개를 합친 것과 맞먹는 규모다. GTA6에 대한 시장의 기대감은 이런 성공을 기반으로 천문학적인 수준에 도달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GTA6이 출시 첫해에 약 30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최대 엔터테인먼트 출시'가 될 것이라는 보도했다.

하지만 이런 기대감의 이면에는 대규모 개발비와 길어지는 개발 기간이라는 'AAA'(흥행 대작 게임) 게임 산업의 구조적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업계에서는 GTA6의 개발비만 15억 달러를 넘어설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마케팅비까지 더하면 총비용은 최대 20억 달러에 달할 수 있다는 추정도 나온다. 이는 일부 국가의 연간 문화 예산에 맞먹는 규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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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게임업계 상황이 그렇다. 게임 제작 지원 업체 'Allcorrect Games'의 지난 4월 분석에 따르면 AAA 게임 개발비는 2017~2022년 연평균 6%, 2022년 이후 연평균 8%의 속도로 증가했다. 매출 증가 속도를 상회하는 수준이다. 개발 기간 역시 과거 3~4년에서 최근 5~7년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게임의 규모와 복잡성이 증가하고, '히트작 의존도' 심화로 게임 개발 리스크는 커지고 있다. GTA6의 연기는 이런 산업적 배경 속에서 발생한 필연적인 결과라는 분석이다.

IT 생태계 '직격탄'

GTA6의 출시 지연은 게임 산업 생태계 전반에 걸쳐 연쇄적인 파급 효과를 일으키고 있다. GTA6는 게임 하드웨어 교체 주기를 강제하는 강력한 '플랫폼 셀러'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됐다. 역사적으로 GTA 시리즈의 출시는 콘솔 판매량을 폭발적으로 증가시키는 기폭제 역할을 해왔다. 이번 지연은 콘솔 시장의 슈퍼사이클을 뒤로 미루었다는 분석이다. IT시장 분석업체 '앰피어 어널리시스'는 GTA6의 출시 연기로 올해 콘솔 판매량 전망치를 약 70만 대 하향 조정했다.

소니가 큰 타격을 받았다. 작년 말 출시된 고성능 모델 'PS5 프로'는 당초 올해 GTA6 출시 등을 염두에 두고 기획된 하드웨어라는 얘기가 있었다. 소비자들은 GTA6 출시가 임박한 내년 하반기까지 하드웨어 업그레이드를 미룰 유인이 커졌다. 마이크로소프트(MS) 역시 엑스박스 시리즈 X|S의 판매 모멘텀 유지에 어려움을 겪을 전망이다.

차세대 콘솔 게임기의 출시 일정도 영향을 받는다. GTA6 출시 연기가 현세대 기기의 수명을 연장하는 '산소호흡기' 역할을 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소니와 MS는 차세대 콘솔 출시를 2027년에서 2028년 이후로 미룰 가능성이 높다. 이는 콘솔용 시스템온칩(SoC)을 공급하는 AMD 등 부품사의 중장기 사업 계획에도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변수다.

GTA6의 출시 일정은 경쟁사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경쟁사들은 GTA6와의 정면충돌을 피하기 위해 사활을 건다. 블룸버그는 GTA6의 첫 연기 후 뉴스레터 제목으로 'GTA6 지연은 모든 게임 회사에 영향을 준다'고 달기도 했다. 작년 5월 1차 연기 직후부터 EA, 유비소프트 등 경쟁사는 GTA6가 비워둔 출시 기간을 선점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EA의 앤드류 윌슨 CEO는 "경쟁이 덜 치열한 시기는 우리 타이틀에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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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현상은 AAA급 타이틀뿐만 아니라 중소형 개발사에도 영향을 미친다. 인기작 '헬다이버즈 2' 개발사 애로우헤드 스튜디오의 샴스 조르자니 CEO는 GTA 6을 두고 "태양을 가려버릴 정도로 압도적인 존재"라고 표현했다. 이번 2차 연기에 대해 "우리에겐 GTA가 머리 위에 드리우지 않는 6개월의 보너스 시간"이라고 말했다.

AI 때문에 개발 지연?

GTA6의 출시 연기는 'AI라는 혁신적인 도구가 생겼는데 왜 개발 기간은 단축되지 않은가'라는 질문으로도 이어진다. 투자 시장은 생성형 AI가 게임 개발 속도를 획기적으로 단축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실제 AI 도입은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지난 8월 구글 클라우드와 '해리스 폴'의 설문에 따르면, 게임 개발자의 87%가 텍스트, 코드, 오디오 등 작업에 AI를 활용하고 있다고 답했다. 94%는 장기적으로 비용 절감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응답했다.

그러나 GTA6의 사례는 이런 낙관론의 한계를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GTA6의 개발사 락스타 게임즈의 모기업 '테이크투 인터랙티브'의 스트라우스 젤닉 CEO는 최근 한 강연에서 "생성형 AI는 데이터 기반이라 '앞을 내다보는 창의성'이 없고, GTA6 같은 게임은 AI가 만들 수 없다"며 "GTA6의 창의성은 전적으로 인간의 산물"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AI를 '기술의 미래'라며 장기적으로는 생산성을 높여 고용과 GDP를 늘릴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을 제시하기는 했다. 하지만 단기적인 개발 기간 단축 효과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일각에서는 이른바 '제본스의 역설(Jevons Paradox)'과 비슷하다는 지적도 있다. 기술 혁신으로 효율성이 높아지면 자원 사용량이 줄지 않는다. 오히려 수요가 증가해 총사용량이 늘어나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게임 개발에서 AI 도구는 코딩 등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하지만 개발자들은 절약된 시간을 더 복잡하고 창의적인 작업에 쏟게 된다. 전체적인 게임의 수준 목표가 상향 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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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도입은 개발 기간 단축이 아닌, 게임의 밀도와 복잡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개발이 늦어지는 기술적 역설이라는 지적이다.

락스터 게임즈의 완벽주의가 출시 연기 이유라는 분석도 있다. 락스타 게임즈는 극심한 노동 강도를 의미하는 '크런치(Crunch)' 문화로 악명이 높았다. 게임 '레드 데드 리뎀션 2' 개발 당시 주 100시간에 달하는 노동 강도로 비판은 적이 있다. 최근 몇 년간 조직 문화 개선을 시도했다는 얘기도 있다. 이번 지연 결정의 배경에는 이런 변화가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크런치 모드를 피하려는 노력이 노동 환경 개선으로 이어진 건 아니었다. 락스타는 2022년 대규모 데이터 유출 사건 이후 보안 강화를 이유로 지난해 유연 근무제를 폐지했다. 주 5일 전면 사무실 출근을 실시했다. 직원들과 영국의 독립 노동조합 IWGB는 워라밸 악화와 통제 강화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관련 갈등은 최근 락스타 에든버러 스튜디오에서 31명의 직원이 해고되면서 극에 달했다. 사측은 이를 '중대한 비위행위(기밀 유출)'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노조 측의 설명은 달랐다. IWGB의 알렉스 마셜 위원장은 "게임 산업 역사상 가장 노골적이고 무자비한 노조 탄압"이라고 비난했다.

한국 경제에도 영향

GTA6의 출시 연기는 거시경제 지표와 투자 시장에도 영향을 미친다. 앰피어 어널리시스가 추산한 올해 27억 달러의 관련 매출 감소는 거시경제 관점에서 소비자의 '강제 저축'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앰피어는 보고서에서 "이건 사라지는 매출이 아니라, 상당 부분이 연기된 매출"이라는 설명했다. 내년 11월 출시로 개발사인 록스타는 내년 4분기에 역사상 최대 규모의 단일 분기 매출이 달성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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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대형 게임사엔 새로운 기회가 생겼다. GTA6가 내년 상반기 시장에서 빠지면서 해당 시기에 출시를 목표로 하던 한국의 AAA급 콘솔용 게임은 강력한 경쟁자를 피할 수 있다. 한국 게임 산업이 글로벌 IP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 생겼다는 분석도 있다.

반면 국내 반도체 기업은 사업 전략 수정할 수도 있다. 보통 GTA 시리즈의 출시는 전 세계적인 PC 업그레이드 및 콘솔 구매 수요를 촉발해 D램과 낸드플래시(SSD) 수요를 폭발시키는 기폭제 역할을 해왔다. 이번 연기로 인해 내년 상반기에 기대했던 고용량 SSD 및 차세대 그래픽 D램(GDDR7)의 수요 급증 시점이 하반기로 밀렸다. 이는 단기적으로 내년 상반기 소비자용 메모리 판매량 목표치 하향 조정이 불가피한 뜻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국내 증권가 분석에 따르면, AI용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 급증에 대응하기 위해 기존 범용 D램 라인을 HBM 라인으로 전환하고 있다. 범용 메모리 공급 여력이 부족한 상황이다. 만약 GTA6가 내년 상반기에 출시돼 소비자용 D램 수요까지 폭증했다면 HBM 생산에 집중하기 위해 범용 메모리 공급이 부족한 상황에서 '공급 쇼크'와 가격 급등이 발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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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