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짐 진 리암, 기타 치는 노엘 한 무대에…오아시스 '리브 포에버'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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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결합' 오아시스, 16년만 내한 공연
고양종합운동장서 5만5000명 동원
'왓에버'·'리브 포에버' 등 히트곡 릴레이
'돈트 룩 백 인 앵거' 무대선 우렁찬 떼창 나와
깔끔하고 정직한 멋으로 '브릿팝 전설' 입증
지난 21일 오후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고양종합운동장 주경기장에서 오아시스 내한 공연 '오아시스 라이브 25 사우스 코리아'가 개최됐다.
1991년 결성된 오아시스는 1990년대 브릿팝을 견인한 핵심 밴드다. 전 세계에서 9000만장이 넘는 음반 판매고를 올렸고, 정규 앨범 7장 모두를 영국 차트 정상에 올려놓은 '살아있는 전설'이다. 히트곡 '돈트 룩 백 인 앵거(Don't Look Back in Anger)'는 안 들어본 사람을 찾는 게 더 어려울 정도로 유명하다.
오아시스의 전신은 리암이 속했던 밴드 더 레인이다. 리암은 노엘보다 늦게 음악에 입문했으나, 그보다 먼저 밴드 활동을 시작했다. 리암은 노엘의 천재적인 작곡 능력이 필요했는데, 노엘은 더 레인의 라이브 공연을 보고 합류를 결심했다. 그렇게 오아시스는 노엘과 리암 갤러거 형제를 주축으로 브릿팝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그러나 2009년 이후로 이들의 무대를 볼 수 없었다. 노엘과 리암의 불화로 팀 활동이 중단됐기 때문이다. 이들은 해체 직전 한국 팬들과 만났었다. 2009년 7월 지산 록 페스티벌에서의 공연을 마치고 약 한 달 뒤, 형제의 다툼은 노엘의 탈퇴와 팀 해체로 이어졌다.
이후 갤러거 형제는 솔로로 각각 한국을 여러 차례 찾았으나, '오아시스'라는 이름으로 내한한 건 무려 16년 만이었다. 지난해 재결합을 발표한 이들은 올해 7월 영국을 시작으로 월드투어를 시작했고, 한국에서도 1회 공연으로 팬들과 만난다고 밝혀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주최 측에 따르면 현장에는 5만5000명의 관객이 운집했다.
기세 좋은 밴드 연주와 함께 첫 곡 '헬로(Hello)'가 시작되자, 스탠딩석 관객들은 일제히 몸을 흔들었다. '애퀴에스(Acquiesce)', '모닝 글로리(Morning Glory)', '썸 마이트 세이(Some Might Say)' 등 명곡의 향연에 관객들은 신나게 뛰고 손을 뻗으며 오아시스를 향해 열띤 응원을 보냈다. '모닝 글로리' 무대에서는 '웨이크 업(Wake Up)'이라는 가사에 맞춰 지정석 관객들까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는 환상적인 호흡을 보여줬다.
'브릿팝 전설' 오아시스의 명곡은 수십 년의 세월을 지났음에도 생동감 있게 살아 숨 쉬었다. 이들 음악의 가장 큰 특징이자 매력으로 꼽히는 건 비틀스에 이어 전통적인 브릿팝의 정수를 느껴볼 수 있다는 점이다. 기타를 중심으로 깔끔하고 직관적인 사운드와 안정적인 멜로디가 주를 이룬다. 화려한 기교와 복잡함 대신 정통성을 강조한 '오리지널리티'는 묵직한 멋을 낸다.
어떠한 과시도, 변칙도 없는 정직한 리듬이 귀에 꽂혔다. 그렇다고 재미가 없을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아시스는 자유분방함의 대명사와도 같은 팀이다. 갤러거 형제의 '남이 뭐라든 나는 나대로'라는 다소 거침없는 삶의 태도는 음악과 만나 자기 확신이라는 낙관적인 메시지로 발전해 강한 해방감을 안긴다.
16년 만의 재결합 무대에서도 오아시스의 정체성은 뚜렷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 리암은 탬버린을 치면서 무대 이곳저곳을 유유자적 누볐고, 껌을 질겅질겅 씹으며 팔짱을 끼고 아무 말 없이 객석을 쳐다보기도 했다. 노엘은 일렉트릭 기타와 어쿠스틱 기타를 오가며 연주의 정석을 펼쳐 보였다. 꾸며낸 멋 없이 음악으로 정면 돌파하는 승부사다운 기질이 변함없었다. 이 규율 없는 정직함은 서정적인 브릿팝 고유의 무드 안에서도 쾌감과 자유로움이 느껴지도록 하는 요소였다.
무대 한편에는 오아시스의 원년 멤버로 이번 투어에 합류하기로 했으나, 전립선암 치료로 한국에 오지 못한 본헤드와 펩 과르디올라 맨체스터 시티(맨시티) 감독의 입간판도 세워져 있었다. 오아시스는 맨시티의 열렬한 광팬으로 잘 알려져 있다.
'페이드 어웨이(Fade Away)'에 이어 '슈퍼소닉(Supersonic)'의 전주가 흘러나오자 관객들은 우레와 같은 환호성으로 화답했다. '시가렛 앤 알코올(Cigarettes & Alcohol)'을 시작하기에 앞서서는 리암이 뒤로 돌아서 주변 사람들과 어깨동무하고 곡을 즐기는 '맨시티 응원법'을 제안해 이색적인 즐거움을 안겼다. 바닥이 쿵쿵 울릴 정도의 열정적인 무대 위아래 호흡이 강렬한 쾌감을 줬다. 관객들은 "오아시스"를 연호했고, 노엘과 리암은 "땡큐 베리 머치"라고 연신 인사했다.
'불화'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 순간이었다. '스탠드 바이 미(Stand by Me)'에서는 낮게 내뱉는 리암 특유의 창법에 노엘의 고음이 얹혀 환상적인 분위기가 완성됐다. 덤덤하게 개성 있는 보컬을 구사하는 리암과 선명한 목소리로 에너지를 터트리는 노엘의 창법을 비교하는 재미도 있었다.
넌 무얼 하든 자유롭다고 이야기하며 강한 자기 확신을 심어주는 '왓에버(Whatever)', 삶에 대한 희망과 끈끈한 연대의 에너지를 전달하는 '리브 포에버(Live Forever)' 등 히트곡이 나오자 관객들은 이내 곡의 분위기에 젖어 들었다. 오아시스는 '돈트 룩 백 인 앵거', '원더월(Wonderwall)'의 후렴을 팬들에게 양보했다. 5만5000명의 목소리가 한데 모여 환상적인 하모니가 완성됐다. 특히 노엘은 관객들이 '돈트 룩 백 인 앵거'를 반복해 외치자 시계를 보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며 "우리 가야 한다"고 말해 웃음을 주기도 했다.
음악에는 장벽이 없었다. 세대를 초월하는 음악의 힘을 현장에서 느껴볼 수 있었다. 관객 김민경(23) 씨는 "오아시스로 공연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재결합하고 이렇게 한국에 와준 것만으로도 고맙다"며 환하게 웃었다.
또 다른 관객 유정한(34) 씨는 "오아시스가 한창 활동하던 시기와 내 나이대가 겹치진 않지만, 어릴 때부터 밴드 음악을 좋아해서 찾아 듣다가 90년대에 엄청난 인기를 누린 오아시스를 알게 됐고 이렇게 공연까지 왔다"며 "희망, 내일에 대해 노래하는 게 멋있다. 힘들 때 오아시스의 곡으로 위로를 많이 받았다. 이들은 제 히어로"라고 말했다.
마지막까지 특별한 선물을 남기고 떠난 오아시스였다. 모든 무대가 끝난 뒤 약 3분에 달하는 불꽃놀이로 관객들은 물론이고, 티켓을 구매하지 못해 공연장 밖에서 응원하던 팬들에게도 진하게 작별 인사를 했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