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목숨' 보좌진…작년 800명 실업급여 탔다

의원 입맛따라 '해고'
수급자 4년前의 3배 '역대 최대'

상임위 변경·정책 이견땐 교체
선심쓰듯 실업급여 챙겨주기 관행

고용보험 기금 '구멍'된 국회
5년간 반복 수급자 100명 육박
작년 납부액 39억, 수급은 73억
"의원평가에 보좌진 면직률 반영"
지난해 국회 소속 보좌진의 실업급여 수급 규모가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국회의원의 ‘입맛’에 따라 보좌진을 쉽게 해고할 수 있는 기형적 구조가 고착화하면서 고용보험 기금의 새로운 ‘누수 구멍’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 다섯 명 중 한 명꼴로 실업급여 받아

14일 한국경제신문이 고용노동부로부터 국회사무처의 고용보험 부과·수급 내역을 받아 분석한 결과 작년 한 해 동안 국회 보좌진 등 임기제·별정직 공무원 790명이 실업급여를 수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고용보험 가입자가 3438명인 것을 감안하면 다섯 명 중 한 명꼴(22.9%)로 실업급여를 받은 셈이다. 지난해에는 22대 총선으로 보좌진의 의원실 이동이 많았던 점을 고려해도 크게 늘어난 수치다. 21대 총선이 있었던 2020년 실업급여 수급자는 271명에 불과했다.

2020년부터 올해 6월까지 실업급여를 2회 이상 반복 수급한 인원은 98명, 3회 이상 수급자도 5명에 달했다. 한 공인노무사는 “민간기업에서 이런 수준의 실업급여 수급이 발생했다면 집중 감독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국회 보좌진은 ‘공무원’으로 분류돼 고용보험 가입 대상이 아니었지만 2015년 국회고용보험법 시행령 등을 개정해 고용보험에 가입할 수 있게 됐다.

실업급여 수급자가 늘면서 지급액도 급증했다. 지난해 국회 보좌진이 낸 고용보험료는 39억434만원이었으나, 받아간 실업급여는 73억1235만원으로 납부액의 두 배에 달했다. 2023년까지는 고용보험 납부액이 수급액보다 많았는데, 지급액이 납부액을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보좌진 실업급여 지급 건수와 지급액이 급증한 배경에는 쉬운 해고가 가능한 국회 내 고용 구조가 지목된다. 국회의원은 입법 활동을 지원하는 보좌진으로 보좌관(4급) 2명, 선임비서관(5급) 2명, 비서관(6~9급) 급수별 1명, 인턴비서관 1명 등 최다 9명까지 고용할 수 있다. 보좌직원은 별정직 공무원으로 국회사무처에 소속돼 급여를 받지만 임면권은 의원이 지닌다. 국회의원 개인 사무실 소속 별정직 신분으로 분류돼 일반 근로자에게 적용되는 부당해고 구제 절차는 작동하지 않는다.

◇ 바뀐 정치 관행에 보좌관 ‘교체’ 급증

바뀐 정치 관행도 원인으로 꼽힌다. 과거 ‘정치적 동지’ ‘운명공동체’로 여겨지던 의원과 보좌진의 관계가 ‘단순 고용 관계’로 변하면서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의 한 보좌관은 “예전과 달리 상임위원회 변경이나 정책 노선의 차이만으로도 보좌진을 교체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며 “해고를 쉽게 하면서 선심 쓰듯 실업급여를 타게 해주는 관행이 맞물려 수급 증가로 이어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의힘 출신인 한 전직 보좌관은 “모범이 돼야 할 국회가 되레 고용보험 기금 누수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국회를 일반 사업장과 동일하게 취급하는 현행 고용보험 체계의 한계를 지적했다. 의원의 권한 남용을 막기 위해 보좌진 면직률이나 실업급여 수급률을 의원 평가에 반영하는 등 관리 장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한 노동정책 전문가는 “국회라는 특수고용구조를 감안하면 해고 요건과 고용보험 수급 요건을 일반 사업장과 동일하게 적용하기 어렵다”며 “보좌관 법적 처우 개선과 국회 차원의 모니터링 체계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