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수가없다·보스·원 배틀…극장가는 명감독들 작품에 몰입 중
입력
수정
지면C3
볼만한 영화사회 통념은 시간이 흐르면서 변하기 마련이다. ‘명절엔 온 가족이 극장 간다’는 옛말이 됐다. 해외여행부터 아무 때나 어디에서건 꺼내 볼 수 있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까지 대체 콘텐츠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래도 구관이 명관일 때가 있다. 올해처럼 추석 연휴가 최장 10일에 달할 만큼 긴 황금연휴에, 모처럼 이름난 감독들의 작품이 스크린에 걸린다면 ‘어쩔 수 없이’ 영화관에 가야 한다. 괜한 대화로 얼굴 붉히는 일 없이 가족들과 오롯하게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영화 말고 또 있을까. 명절 극장 나들이를 위한 ‘볼만한 영화’를 소개한다.
◇ 드디어 왔다 ‘어쩔수가없다’
‘어쩔수가없다’는 미국 소설가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도끼>를 원작 삼아 박 감독만의 연출력과 상상력을 버무려 만든 작품이다. 중년 회사원 만수(이병헌 역)가 덜컥 해고된 후 가족의 안정적인 생활을 지키려고 재취업을 결심하고, 구직 경쟁자를 제거하는 이야기가 얼개다. 대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볼륨을 키운 조용필의 ‘고추잠자리’가 나오는 ‘고추잠자리 시퀀스’는 압도적 카타르시스를 준다. 영화에서 강조되는 가을 계절감은 추석 명절과도 잘 어울린다.
호평 일색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미리 보고 온 관객들 사이에선 서사가 다소 늘어지고 주인공에 공감하기 어렵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전작인 ‘헤어질 결심’의 감성을 기대했다면 아쉬울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박찬욱이 현존하는 가장 품위 있는 감독임을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라는 평가에 걸맞은 요소만큼은 분명하다는 점이다. 장면마다 웃음이 터져 나오는 박찬욱식 유머 코드는 물론 특유의 미장센이 생생하다. 이병헌부터 손예진, 이성민, 염혜란, 박희순 등 충무로 정상급 배우들의 연기 역시 수준급이다. 박수 칠 것인가, 실망할 것인가. 보고 나서 판단해보자. 139분.
◇ ‘보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도 있다
◇ 예술을 본다 ‘그저 사고였을뿐’
영화를 즐기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스트레스를 해소하거나, 예술로 몰입해보거나다. 가끔 시간이 난다면 예술영화를 보는 것도 좋다는 뜻이다. 알맞은 영화가 있다. 지난 1일 개봉한 자파르 파나히의 ‘그저 사고였을뿐’이다. 올해 칸 국제 영화제에서 최고영예인 황금종려상을 받았고, BIFF에선 세계적인 화제작을 엄선한 갈라 프리젠테이션 섹션에 올라 관객과 만났다.‘그저 사고였을뿐’은 불확실한 진실과 도덕적 혼란 속 인간성을 시험하는 영화다. 이란 권위주의 정권에서 억울하게 고문당한 피해자가 우연히 만난 남성을 자신을 고문한 정보관으로 확신해 납치하고 신원을 확인하고자 다른 피해자들을 찾아가며 일어나는 갈등을 그렸다. 화려한 영상미는 없지만, 현실을 고발하는 다큐멘터리적 리얼리즘이 돋보인다. 오랜 검열, 영화 제작 금지 처분 등 정부의 억압에 맞서 영화로 자유의 존재 의미를 조명해온 파나히다운 영화다. “이 영화를 보는 게 절대 시간 낭비가 아닐 것”이라는 파나히의 말을 속는 셈 치고 믿어봐도 좋다. 103분.
유승목 기자 mo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