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AI 충격 무풍지대'로 더는 남아있을 수 없다"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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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재권 더밀크 대표 인터뷰
내달 출간
내달 출간되는 <2026 글로벌 테크 트렌드> 대표 저자인 손재권 더밀크 대표는 “인간의 창의력을 무한하게 확장할 수 있는 축복과 같은 도구인 AI를 활용할 기회를 놓쳐선 안 된다”고 힘줘 말했다. 지난 29일 한경매거진&북 사무실에서 만난 손 대표는 ‘AI 대충격’의 시대를 맞아 변화에 대응하는 행태에 따라 기업을 4가지로 분류했다. AI 변혁을 이끄는 주체인 ‘AI 퍼스트(AI First)’기업,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AI 시대로 넘어가는 기업인 ‘AI 포워드(AI Forward)’기업, AI 기술을 마지못해 뒤늦게 수용하는 ‘AI 네거티브(AI Negative)’기업, AI 기술 도입에 저항하는 ‘AI 러다이트(AI Luddite)’기업으로 AI 대변화에 대응하는 모습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중 한국 기업 대다수는 명목상으로는 ‘AI 포워드’기업을 지향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AI 네거티브’ 기업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고 손 대표는 진단했다. 그렇게 된 이유로는 기업 경영자급에서는 AI 도입과 기업 변화의 욕구가 강하더라도 기업의 경직된 조직문화나 의사결정 구조가 시대 흐름에 발맞춘 변화를 가로막는 점이 꼽혔다. 손 대표는 “미국, 중국, 대만은 물론 일본까지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AI 포워드로 나아가고 있다”며 “한국 기업이 그만큼 절박함이 없다는 증거이며 5년 뒤 회사가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다는 긴장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국내 언론사 실리콘밸리 특파원 출신으로 미국에서 테크 트렌드를 발굴·소개하는 사업을 하는 손 대표는 “AI 기술의 확산이 놀랄 만큼 빠르고 그 영향이 놀랄 만큼 광범위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실제 한국 기업들이 AI 변화에 주춤하는 사이 글로벌 기업에서 AI는 그동안의 ‘보조적’인 역할을 넘어서 ‘의사 결정’을 하는 영역까지 빠르게 침투하고 있다. 손 대표는 “AI 재무 담당 임원이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글로벌 반도체 시장 데이터를 분석하며 다음 분기 투자 전략을 제안하고, AI 인사 담당 임원이 전 세계 인재 시장의 동향을 바탕으로 핵심 인력 확보 계획을 발표하는 게 이미 현실이 됐다”며 “인간은 데이터와 경험의 한계가 분명하지만, AI는 이런 측면에서 인간에 비해 월등한 강점이 있다”고 분석했다. 구체적으로 기업의 임원 수를 효율적으로 절감하는 것이 현실화하고 있다는 것. AI 임원의 도움을 받아 HR 임원이 CFO 업무를 병행하는 식으로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기존 ‘매그니피센트 7’(주요 기술주 7개 기업) 가운데 AI 투자, 인프라, 생태계에서 압도적 주도권을 확보한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엔비디아, 메타, 테슬라, 팰런티어, 브로드컴에 초거대 비상장 슈퍼 유니콘인 오픈AI, 스페이스X, 앤스로픽 등 ‘매그넷10(MAGNET10)’이 주도하는 신 경제질서에 빠르게 적응해야 한다는 주문도 이어졌다. 손 대표는 “막강한 자금력과 기술력을 겸비한 ‘매그넷10’이 차세대 기술 표준을 주도하고 있다”며 “한국 기업이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매그넷10’과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원자재, 전력, 데이터 인프라 확보를 산업 전략의 최전선에 둬야 한다”고 조언했다. AI칩 제조에 필수적인 삼성의 반도체 기술, AI 글래스나 메타버스 기기의 핵심 소재인 LG의 디스플레이 기술 등을 활용해 ‘매그넷10’의 핵심 파트너가 되는 것이 현실적인 전략이라는 설명이다. 같은 이유에서 현대자동차는 테슬라와 직접 경쟁하기보다는 자율주행과 AI를 접목한 독자적인 모빌리티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네이버와 카카오는 오픈AI와 직접 경쟁하기보다는 한국 시장에 특화된 AI 서비스로 차별화하는 전략을 권했다. 한국의 중견·중소 기업들은 “현재 영위하는 이 사업이 기업을 먹여 살린다”는 아이템적 사고를 버려야 진정한 AI화를 이룰 수 있다고 조언했다.
손 대표는 치열한 글로벌 AI 기술 경쟁 속에서 한국의 기술력과 관련 인프라 저변에는 긍정적인 측면이 많다고 평가했다. 그는 “한국은 AI 기술 관련 논문 수나 대학의 연구 수준,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LG에너지솔루션 등 관련 기업의 기술력 등에서 충분히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며 “다만 대만이 AI에 국가 총력을 집중해 국민소득 4만달러 시대를 열 수 있었던 반면 한국은 여전히 과거의 고정관념, 정부 규제, 연구개발(R&D)의 비효율성 등이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한국에서 진행되는 AI 관련 R&D는 ‘무엇을 위한 AI’인지가 불분명한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 결과, 개발한 기술의 수명이 2~3개월에 불과하다든지 개발하자마자 상품성이 없는 구닥다리 기술이 되기 쉽다는 비판이다.
AI 규제와 관련해선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알 수 없고 움직임을 통제할 수 없는 AI는 흔히 ‘블랙박스’로 불린다”며 “AI에 대한 규제는 불가피한 면이 없지 않지만, 우리가 다른 나라보다 앞서서 선제적으로 규제에 나설 필요는 없다”고 주장했다. 자칫 섣부른 규제가 AI 기술 개발을 가로막는 ‘AI 대못’이 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이와 함께 ‘AI의 베타 테스터’로서 AI 함께 성장하는 최초의 세대인 ‘베타 세대’의 등장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손 대표는 “태어나자마자 AI를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인 베타 세대는 AI의 축복과 불행을 모두 경험하는 첫 세대가 될 것”이라며 “기성세대와는 전혀 다른 그들의 소비 패턴과 가치관은 사회 구조 전반에 걸쳐 근본적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밖에 AI의 확산이 일자리에 대한 인식에도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그동안은 일(task)과 자리(position)가 혼용됐지만, AI의 발전으로 ‘직이 아닌 업’의 중요성이 본격적으로 두드러지지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일자리의 디커플링’이 본격화한다는 것이다. AI가 인간이 하던 일을 상당 부분 대체하면서 “자리가 맡은 업무는 AI가 할 수 있지만 ‘업’은 대체할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바라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AI 변혁의 최전선인 실리콘밸리에서 전하는 ‘먼저 온 미래’의 모습은 ‘예상했더라도 충격적’일 수밖에 없다. “변화에 눈을 감고, 고개를 돌린다고 해서 그 변화가 닥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손 대표가 전한 말의 무게가 남다르게 느껴진다.
김동욱 한경매거진&북 편집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