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대법원장 "어떤 어려움에도 흔들림 없이 헌법 믿고 재판하라"

법원의 날 기념식서 재판독립 당부
"사법제도개혁, 국회와 소통해 올바른 길 찾겠다"
사진=연합뉴스
조희대 대법원장이 12일 제11회 '대한민국 법원의 날' 기념식에서 법관들에게 "어떠한 어려움에도 흔들림 없이, 오직 헌법을 믿고 당당하고 의연하게 재판에 임해달라"고 당부하며 재판의 독립을 강조했다.

조 대법원장은 "사법부가 헌신적인 사명을 온전히 완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재판의 독립이 확고히 보장되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또한 국민들에게는 "사법부가 본연의 사명과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지켜봐 주시고 응원해달라"고 요청했다.

사법제도개혁에 적극 참여 의지

조 대법원장은 최근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사법제도 개선과 관련해서도 입장을 밝혔다. 전날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념 기자회견에서 삼권분립과 관련해 "사법부는 입법부가 설정한 구조 속에서 판단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조 대법원장은 "권력분립과 사법권 독립의 헌법 가치를 중심에 두고 국회에 사법부의 의견을 충분히 제시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사법제도 개선을 둘러싼 국회의 논의 과정에서 사법부는 국회는 물론 정부, 변호사회, 법학교수회, 언론 등과 다각도로 소통하고 공론의 장을 통해 충분히 검토한 후 국민의 불편을 해소하고 사법 정의를 실현하는 바람직한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과거 주요 사법제도 개선이 이뤄졌을 때 사법부가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전례를 바탕으로, 필요한 부분은 합리적인 설명과 소통을 통해 설득해 나감으로써 국민 모두를 위한 올바른 길을 찾아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12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2025 대한민국 법원의 날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밝히고 있다. 허란 기자
조 대법원장은 현재 사법부가 직면한 상황에 대해서도 솔직한 입장을 드러냈다. 그는 "여러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법부가 국민 여러분의 기대와 눈높이에 미치지 못함을 잘 알고 있다"며 "특히 최근 우리 사법부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우려 섞인 시선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이 사법부에 기대하는 바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보완하며 국민의 신뢰에 부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법원행정처는 이날 오후 2시부터 대법원 청사에서 전국 법원장 회의를 연다. 더불어민주당 국민중심 사법개혁 특별위원회(사개특위)가 추진하는 사법개혁 5대 의제를 안건으로 전국 판사들 의견을 수렴한 뒤, 이른 시일 내 정리된 입장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오랜 사법 역사가 대한민국의 초석

조 대법원장은 광복 80주년을 맞은 올해 법원의 날의 의미를 되새기며 우리나라 사법의 유구한 전통을 강조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홍익인간의 인본주의 정신에 바탕을 두고, 고조선의 8조 금법을 시작으로 이후 계속하여 율령 반포와 법전 편찬이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특히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것에 대해 "백성들이 억울한 사정을 글로 호소할 수 있게 함으로써 공정한 재판을 받도록 만드신 위대한 사법의 역사"라고 평가하며, "우리의 오랜 사법의 역사 속에서 면면히 이어져 온 인간 존중과 법치의 전통은 오늘의 대한민국을 굳건히 지탱하는 든든한 초석이 되어왔다"고 강조했다.

사법 서비스 혁신과 미래 준비

조 대법원장은 이날 기념사에서 사법부가 추진하고 있는 다양한 개혁 과제들도 소개했다. '차세대 전자소송 시스템'과 '미래등기 시스템'의 개통을 통해 국민들에게 한 차원 높은 사법정보화 서비스를 제공하고, 형사 전자소송을 안정적으로 도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특히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인공지능이 과거 재판받는 백성들의 사법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높여준 한글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사법부 인공지능 위원회'와 함께 장기적인 비전을 세우고 치밀한 계획을 통해 인공지능 인프라 구축 사업을 내실 있게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 대법원장은 고등법원, 가정법원, 회생법원의 추가 개원과 함께 최근 논의되는 '해사국제상사법원'의 성공적 설립을 위한 준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밝혔다.

인사제도 개선 방안으로는 능력과 자질을 갖춘 법관을 법원장으로 보임하고, 다양한 가치관과 폭넓은 경험을 가진 법조인이 법관으로 임용되도록 하며, 법원공무원을 권역별로 선발해 지역 균형 발전도 실현하겠다고 했다. 또한 풍부한 재판 경험을 지닌 원숙한 중견 법관의 중도 사직을 방지하기 위한 여러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