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간 '한국영화 사랑'…伊우디네가 말하는 위기와 돌파구

[인터뷰] 이탈리아 우디네 극동영화제 공동위원장
사브리나 바라체티 & 토마스 베르타체

코로나 이후, 믿음 잃은 한국 영화산업 위기
극장은 비었고, 넷플릭스만 남았다...
아마도 한국영화와 가장 긴, 그리고 끈끈한 우정과 연대를 지속해 오고 있는 유럽 영화제, 영화인(들)은 우디네 극동영화제(Udine Far East Film Festival)의 두 공동 위원장, 사브리나 바라체티와 토마스 베르타체가 아닐까 생각된다. 토마스와 사브리나는 1999년에 열린 제4회 부산국제영화제의 방문 이후로 25여년이 넘는 기간 동안 꾸준히 부산국제영화제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찾아 한국의 영화인들을 만나고 작품들을 선정하고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부천국제영화제를 찾은 사브리나와 토마스 위원장을 만나 그들의 영화제 이야기, 그리고 그들이 진단하는 현재의 한국영화에 대한 가감 없는 소견을 들을 수 있었다.
사브리나, 토마스 이탈리아 우디네극동영화제 위원장이 9일 광화문 모처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 사진=최혁 기자

▷ 97년에 만들어진 우디네 극동영화제가 올해로 28회를 맞았다. 정말로 오랜 기간이다. 두 위원장이 늘 함께했는데, 둘은 어떻게 처음 만났고 초반에는 어떤 일들을 함께했나?
사브리나 바라체티: “90년대 초반이었는데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는 영화를 중심으로 하는 컬쳐 인스티튜트, 혹은 문화 센터 같은 곳에서 자원봉사를 했다. 이 단체에서는 아트하우스 영화들을 상영하거나 회고전을 여는 일을 했다. 내가 일한 지 몇 달 후에 토마스가 나타났다 (웃음).”

토마스 베르타체: “1994년부터 같은 단체에서 영화제 형태의 이벤트를 하기 시작했다. 30년대 소비에트 영화 상영회를 진행하기도 했고, 아프리카 영화에 집중하는 영화제를 개최하기도 했다. 물론 이태리 영화, 특히 50년대 이태리 영화를 상영하는 행사도 했는데 돌이켜 보면 모두 ’발굴‘에 의미를 두는 행사, 영화제들이었다. 그때 많은 관객을 모았다.”

▷ 우디네 극동영화제를 기획한 것은 이 당시인가?
토마스: “그렇다. 함께 일하던 이 중 홍콩 영화를 추천하던 멤버가 있었는데 90년대의 홍콩영화는 굉장하지 않았는가. 당시 홍콩 영화의 대표작들을 보며 아시아 영화에 대해서 더 알게 되었고, 그때 우디네 극동영화제의 초안이 잡힌 것 같다.”

▷ 한국 영화와의 ‘첫 조우’는 언제였나?
사브리나: “1992년에 페자로 영화제(The Pesaro International Film Festival)에서 개최한 한국영화 특별상영을 관람하게 되었다. 당시 한국의 컨템포러리, 그리고 고전영화를 함께 상영했던 큰 행사였는데 상영 편수만 해도 20편이 넘었던 것 같다 (모두 놀람). 당시 선정된 그 영화들의 기괴함에 완전히 놀라고 매료당했던 것 같다. 92년이라 하면 한국영화가 2000년대 초반과 같은 국제적인 관심을 받기 전, 그리고 엄청나게 영화적인 발전이 있었다고 말하긴 어려운 시기였는데도 영화들이 주는 이상한 에너지의 놀랐다. 특별히 좋다 나쁘다를 떠나 너무 이상하고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집에 돌아와서도 계속 생각이 나는 영화들이었고, 이때부터 한국영화에 대한 탐험을 시작했다.”

토마스: “영화제로 따진다면 부산국제영화제의 방문이 나의 첫 한국의 영화제 방문이었다. 부산국제영화제의 4회, 그러니까 1999년에 나 혼자 방문했다. 당시 메인 사이트는 남포동이었는데 그 당시 영화제 기간 동안 열렸던 길거리 파티, 포장마차 파티 같은 것들이 기억이 난다. 정말로 놀라운 광경이자 감동이었다 (모두 웃음). 또 놀라운 것은 이것이 부산영화제의 초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많은 외국 영화인들과 평론가들이 초청되어 와있다는 것이었다. 남포동과 해운대를 연신 이동하면서 많이들 친해졌다. 그 방문에서 처음으로 김동호 위원장을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 우정을 나누며 지냈다.”
사브리나, 토마스 이탈리아 우디네극동영화제 위원장이 9일 광화문 모처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 사진=최혁 기자
▷ 사브리나는 이후에 부산국제영화제에 간 것으로 안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는지?
사브리나: “일단 부산 관객 반응에 매우 놀랐다. 첫째로 놀란 건 모든 자리가 하나도 비지 않고 채워져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두 번째는 그들의 열정적인 반응이었다. 그전까지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한 명도 나가지 않는 상영을 거의 보지 못한 것 같다. Q&A에도 끝까지 참여해서 질문을 던지고 하는 모습들에 매우 감동을 했다.”

토마스: “그때 내가 기억에 남는 것은 당시 부산에서는 티켓을 구하기가 정말 힘들었다. 하루에 세 장, 그것도 아침 7시에나 가야 매진이 안 된 영화 티켓을 구할 수 있었는데, 표를 간신히 구해놓고 중간에 김밥과 라면을 먹고 2분을 늦은 적이 있다. 티켓을 들고 상영관에 갔는데 자원봉사자가 죽어도 안 들여보내 주더라 (모두 웃음). 정말 2분밖에 안 늦었다. 우리가 이 영화를 보려고 유럽에서 왔다고 거의 빌었는데도 결국 들여보내 주지 않았다 (모두 웃음).”

▷ 내가 두 위원장에게 가장 인상적이었고 지금도 존경스러운 것은 두 분이 가지고 있는 한국 내에 엄청난 네트워크다. 한국의 웬만한 거물 영화인보다도 더 넓은 네트워크를, 그리고 더 애틋한 관계를 가지고 있지 않나. 도대체 어떻게 이런 것들이 가능한 것인가.
사브리나: “영화제를 했던 초반에는 영어를 잘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한국에 우디네 영화제의 브로슈어를 가지고 가서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브로슈어를 나누어주며 영화제에 대해서 홍보하는 등 정말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다가가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열심히 한 결과, 한국에 있는 영화인들이 조금씩 우리 영화제에 와주기 시작한 것이다. 김동호 위원장이 도움을 많이 주었다. 영화제의 초창기에 방문했는데 돌아가서 우리 영화제에 대한 좋은 이야기들을 여기저기 해주셨더라. 그리고 우리가 한국을 대표하는 많은 감독들을 만날 수 있게 직접 소개를 해주기도 했다. 김동호 위원장은 우리에게 여러모로 좋은 모델이 되었다.”

토마스: “영화제 초반에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들이 많이 와주었다. 박찬욱 감독이 <공동경비구역 JSA>으로, 김지운 감독이 <반칙왕>으로. 이런 방문들이 초석이 되어 입소문이 나게 하고 우리를 더 알리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우리 역시 이 작은 영화제를 찾아주는 고마운 게스트들에게 최선을 다했다.
[좌] 박찬욱 감독의 영화 &lt;공동경비구역 JSA&gt; 포스터 [우] 김지운 감독의 영화 &lt;반칙왕&gt; 포스터 /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 우디네 극동영화제의 시그니처인 5코스 디너(영화제에 참가하는 스페셜 게스트에게 제공되는 저녁 코스요리)는 그때부터 시작한 것인가? (모두 웃음)”

사브리나: “그렇다(웃음).”

▷ 우디네 극동영화제는 한국영화가 부상하기 시작한 90년대 말에 시작해 현재까지 오고 있다. 자연스럽게 이 영화제가 한국영화제의 국제적인 반응을 샘플링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텐데 당시 영화제 초기 관객들이 가진 한국영화에 대한 반응은 어땠으며 현재는 어떤가.
사브리나: “영화제 초반에도 관객들이 매우 좋은 인상을 받았던 것 같다. 솔직히 그때만 해도 이태리에 한국영화가 많이 알려지기 전이라 우리가 상영을 할 때만 해도 사람들이 큰 기대 없이 영화를 봤다. 그럼에도 영화를 보고 나서는 영화의 완성도나 스케일이 생각보다 높은 것에 다들 놀란 분위기였다. 그들의 집중력에 나 역시 놀랐다. 현재도 사람들은 한국영화를 좋아한다. 우디네의 특성상 아트하우스 영화보다는 대중적인 한국영화를 선정하는데, 아직까지도 한국영화의 상업성을 믿고 있는 듯하다.”

토마스: “당시 우리가 초반에 주력하고 있던 홍콩영화, 그리고 홍콩영화 산업이 하락하는 추세였다. 뭔가 대체제가 필요했는데 한국영화로 시선을 돌린 것이다. 물론 우리도 초반에는 한국영화에 완전한 신뢰 (관객이 한국영화를 좋아할 것이라는)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아시안 시네마로서 홍콩영화를 가장 많이 소비하던 관객들이 한국영화를 보면 분명 실망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우리가 박찬욱, 김지운 감독의 영화를 상영했을 때부터, 그러니까 2000년대 초반부터 이태리 관객들이 완전히 한국영화의 소비자로 굳건해진 듯한 인상을 받았다. 그때가 한국영화의 터닝 포인트가 분명했다.”
[좌] 박찬욱 영화 감독 [우] 김지운 영화 감독 / 사진=한경DB
▷ 지금껏 우리가 나눈 한국영화의 영광스러운 순간들에 이어 다음의 이야기를 하자니 씁쓸한 생각이 든다. 영화제, 특히 아시아 영화를 중심으로 한, 그중에서도 한국영화를 가장 많이 상영했던 영화제의 위원장으로서 현재의 한국영화 산업을 어떻게 진단하고 있는가.
사브리나: “아시아 국가 중 COVID-19 이후로 한국만큼 산업이나 극장에 있어서 회복을 못한 나라는 없을 것이다. 하락률로 따지면 (한국이 그 전에 워낙 높았기 때문에) 가장 컸고, 가장 회복률이 낮다. 한국 관객들은 더 이상 극장에 가고 있지 않지 않은가. 문제는 이러한 것은 영화산업이 걱정을 하면서도 역설적으로 영화산업 자체에 대한 믿음을 잃은 것 같고, 더 이상 가지려고 하지 않는 것 같다. 현재는 영화를 향한 믿음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투자와 연결될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극장을 살리는 데에도 일조할 것이다.”

토마스: “한국영화에는 놀랍도록 재능을 가진 감독이나 영화인들이 많다. 강조하지만 정말로 많다. 그래서 <기생충> 같은 놀라운 영화를 만들어내고 이후에도 몇 년간 엄청나게 큰 세계적인 성공을 이끌어 온 것이다. 그러한 영광이 그토록 빨리 사라진 이유는 영화에 대한 믿음을 너무 빨리 잃고 (조금 힘들다고 해서) 모두 넷플리스와 드라마로 떠나버렸기 때문이다. 현재 영화산업에 누가 남아있는가. 인재가 없지 않은가. 인재들은 모두 드라마 산업으로 떠나버렸는데 거기 또한 이제 어려운 상황이고. 베팅을 너무 섣불리 했달까. 정말 아쉬운 상황이다.”

▷ 아시아 영화를 누구보다 가까이 지켜본 전문가로서 한국을 포함한 앞으로의 아시아 영화를 어떻게 예상하는지.
토마스: “영화제를 치르는 27년 동안 많은 변화를 지켜봤다. 중국영화의 바닥을 봤다고 생각했지만, 현재로서는 가장 훌륭한 영화들을 만들어내고 있고, 한국영화의 성공이 오래갈 것 같았지만 순식간에 추락하는 것을 보고 있으며, 예상치 못했던 베트남 영화와 인도네시아 영화의 상승을 목격하고 있다. 다시 말해 영화산업은 정말 예측 불가하다. 그런 이유 중 하나는 영화에는 늘 새로운 인재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 인재들이 센세이셔널한 작품으로, 그리고 새로운 경향으로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 낸다. 한국에도 같은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늘 새로운 인재들을 환영해야 하고 투자해야 한다. 현재 한국영화에 부재한 것은 새로운 얼굴과 새로운 영화다. 새로운 물결, 새로운 영화산업에 믿음을 가져야 한다.”
사브리나, 토마스 이탈리아 우디네극동영화제 위원장이 9일 광화문 모처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 사진=최혁 기자
이번 사브리나와 토마스 위원장과의 인터뷰에는 그들이 우디네 극동영화제로 성취한 적지 않은 업적들에 대한 회고뿐만 아니라 현재의 한국영화에 대한 뼈 아픈 평가까지 예상했던 것 보다도 훨씬 귀하고 가치 있는 코멘트들이 가득했다. 확실한 것은 이들의 관찰과 평가가 한국영화, 그리고 아시아 영화를 향한 무한한 애정과 헌신을 기반으로 한다는 것이다.

유럽의 관객들이 한국이라는 나라의 위치조차 정확히 짚어 내지 못할 정도로 생소하게 느꼈던 시간부터 우디네 극동영화제는 정말 공격적이고도 꾸준하게 한국영화에 대한 사랑을 전파해왔다. 그리고 지금 그들이 가진 우려와 염려는 우리만큼이나, 혹은 우리보다 더 진심 어린 것인지도 모른다. 내년, 그리고 그 이후로도 계속, 우디네 극동영화제에서 활약할 한국영화를 우리도, 유럽의 관객들도 기다린다는 것은 그럼에도 고무적인 일이다. 토마스 위원장이 언급했듯, 지금은 한국영화인의 재능을, 그리고 한국영화의 저력에 완전한 믿음과 지지를 주어야 할 시기다.

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