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배우 열전을 쓰기 전, 이번엔 누구로 할 것이냐 생각 중일 때 아르떼 편집진이 말했다. 비교적 이구동성으로. 너무 더우니 시원한 여배우로 골라주세요. 그때 머릿속에 떠오른 여배우가 바로 이 인물, 제시가 알바다. 왜일까. 시원하다는 느낌은 바다를 떠올리게 되고, 바다는 곧 여인들의 비키니인데, 비키니 하면 제시카 알바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참…음탕한 눈빛의 훔쳐보기 습성을 지녔다는 비난을 사게 될까. 알다시피 남자들 상당수는 여름철에 ‘피핑 톰’이 된다. 너무 뭐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쨌든 지난 2007년 FHM이라는 영국 남성 잡지(우리의 맥심 같은 것)는 제시카 알바를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여성으로 뽑기도 했다. 야후 퍼스널이라는, 역시 다소 ‘쓰잘데기 없는’ 매체에서는 제시카 알바를 미국 독신남들이 뽑은 가장 이상적인 데이트 상대 1위로 뽑기도 했다. 별 조사를 다 하는 세상이다. 응답하는 사람들은 또 뭘까.
섹시한 여배우 이미지로 고정돼 있을수록 당연히 작품성이 있는 영화를 고르려고 애쓰게 된다. 그런 작품이 바로 <킬러 인사이드 미>이다. 짐 톰슨 원작의 『내 안의 살인마』(황금가지 刊)를 영화로 만든 것이다. 짐 톰슨은 누아르 작가이다. 동시에 스탠리 큐브릭 감독 작품의 시나리오 작가 출신이다. 큐브릭의 걸작 <영광의 길>은 톰슨에게 말 그대로 영광의 길을 부여했다. 그 유명한 영화 <도망자>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킬러 인사이드 미>는 역시나 ‘그 유명한’ 영국 마이클 윈터바텀의 할리우드 진출작이기도 하다. <킬러 인사이드 미>에서 제시카 알바는 회사 상부의 지시로 매춘하는 여성, 조이스로 나온다. 이 여자에게 빠지는 인물이 부보안관 루(케이시 에플렉)이다. 근데 이것도 어쩌면 짜놓은 그물망일 수 있다. 관계가 참 복잡한데, 남자 주인공 루에게는 여자가 있다. 약혼녀 에이미(케이트 허드슨)이다. 의사 가문의 유복한 여성이다. 그런데 루는 하층계급의 여자와 사랑에 빠진다. 근데 이 조이스는 또 한편으로는 다른 남자의 내연녀이기도 하다. 아 복잡해. 당연히 살인과 은폐 행위가 벌어진다. 조이스는 팜므파탈이다. 그녀가 루를 이용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킬러 인사이드 미>는 사람들 모두 내면에 가지고 있는 살인 본능…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두운 욕망에 대한 이야기이다. 짐 톰슨은 이런 걸 잘 쓴다. 읽다 보면 내 안에도 그런 어둠이 있다는 걸 알게 되고 깜짝 놀라게 된다. 소설은 좋다. 그러나 윈터바텀의 영화는 그리 주목받지 못했다. 다소 아까운 작품이다.
영화 <킬러 인사이드 미>에서 제시카 알바. / 사진. ⓒ IMDb그래서 다시 제시카 알바는 ‘조금 쉬운’ 영화로 돌아갔다. <미트 페어런츠3>이 그랬고 <마셰티>는 로버트 로드리게스 감독이 의도적으로 저렴하게 보이게 찍은 영화였으며(제시카 알바는 늙고 쭈글쭈글한 이미지의 대명사급 배우인 대니 트레조와 한 침대에 눕는다. 으악) 이상하게도 이 영화는 속편도 나왔는데 <마세타 킬즈>가 그것이다. 알바는 이 속편에도 나온다. <스파이 키드4> 같은 가족영화에 나온 것은 그래도 알바의 필모그래피에서 좋은 위치를 차지한다.
제시카 알바의 대표작은 뭐니 뭐니 해도 <씬 시티>이며 <판타스틱4>이다. 둘 다 2005년 작이다. 20년 전이고 알바가 24살 때이다. <씬 시티>는 제시카 알바를 세계적 스타로 발돋움하게 했으며 이때부터 로버트 로드리게스와의 인연이 생긴 셈이다. <마셰티> 출연의 비밀이 풀린다. <씬 시티>는 독특한 촬영과 편집 기술, 무엇보다 아르헨티나 작가 마누엘 푸익의 소설 작법처럼 내레이션을 통해 각 인물을 이야기의 당사자로 만들어서 역설적으로 영화를 스토리가 아니라 캐릭터로 끌고 가게 한 영화이다. 알바는 늙고 지친, 그러나 여전히 용감하고 희생적인 형사 하티건(브루스 윌리스)을 사랑하는 쇼걸로 나온다. <씬 시티>는 개봉 당시 새로운 영화 작법의 아이콘이 됐던 작품이다. <판타스틱4>의 인기는 말할 필요도 없다. 우주탐사를 나간 4인의 과학자가 우주 폭풍에 피폭돼 뮤턴트가 되는데, 가공할 초능력을 갖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제시카 알바는 방패막과 강풍을 일으킬 수 있는 투명 인간이 된다. 이 말도 안 되는 상상력을 할리우드는 돈으로 만든다. 총 1억 달러의 제작비로 3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제시카 알바는 이 영화에서도 착 달라붙는 우주 슈트 복을 입고 나온다. 몸매가 장난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