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삼성도 제쳤다" 대서특필…'갓성비' 소문 나더니 [딥인사이트]

대륙의 실수는 잊어라
전세계 뒤흔드는 샤오미 '첨단굴기'
레이 쥔 샤오미 최고경영자가 지난 2월 베이징에서 열린 신제품 발표회에서 전기차 'SU7 울트라'를 소개하고 있다. 샤오미 제공.
중국 ‘테크굴기’의 상징인 샤오미의 한국 침공이 시작됐다. 오는 28일 서울 여의도 IFC몰에 애플스토어를 빼닮은 첫 스마트폰 및 소형가전 직영매장 ‘미(米) 스토어’를 열고, 내년에는 냉장고, 세탁기 등 대형가전도 출시한다. 저렴한 가격으로 승부하는 다른 중국 브랜드와 달리 삼성전자, LG전자에 버금가는 프리미엄 제품으로 한국시장에 도전장을 내민다는 계획이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샤오미는 스마트폰과 태블릿 등 IT기기를 시작으로 주력 생산제품을 순차적으로 한국에 출시하기로 했다. 2011년 6000원짜리 ‘가성비’ 보조배터리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샤오미는 올 1분기에 삼성전자, 애플에 이어 전세계 스마트폰 시장 3위(점유율 14%)이자 스마트워치 시장 1위(19%)에 오른 글로벌 IT기업이 됐다.

스마트폰 운영체계(OS)는 물론 거대언어모델(LLM) 등 인공지능(AI) 시스템도 모두 자체적으로 구축했다. 스마트폰의 두뇌인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도 직접 설계하고, 1억원이 넘는 프리미엄 전기차와 고성능 휴머노이드도 생산한다. 작년부터 사업 리스트에 프리미엄 대형가전이 추가됐다. 방대한 사업 영역에서 성과를 거둔 덕분에 샤오미는 올 1분기 21조원 매출에 2조원이 넘는 순이익을 냈다. 1년 전보다 각각 47%와 65% 늘었다.

업계에선 샤오미를 시작으로 저렴한 가격이 아닌 높은 기술력과 디자인으로 승부하는 ‘레드테크’의 침공이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샤오미의 프리미엄 스마트폰 가격은 169만원(샤오미 울트라5)이며, 냉장고 등 가전제품도 200만원대에 내놓을 것으로 알려졌다. 샤오미는 프리미엄 서비스를 위해 국내에 애프터서비스(AS)센터도 별도 구축키로 했다.

◆스마트폰 이어 프리미엄 가전으로 한국 공략… 삼성, LG와 정면승부

지난달 22일 전세계 IT업계의 눈은 중국 베이징에 쏠렸다. 샤오미가 자체 개발한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쉬안제O1’ 데뷔 무대가 열려서다. “최고 스마트폰을 놓고 아이폰과 경쟁하려면 칩도 애플과 비교할 수 있어야 한다”는 레이 쥔 샤오미 회장의 이날 발표를 접한 글로벌 IT업계는 놀라움과 불안감에 휩싸였다. 최첨단 3나노미터(㎚·1㎚=10억분의 1m) 공정으로 만드는 최고 성능 AP 개발업체 리스트에 애플, 퀄컴, 미디어텍에 이어 샤오미가 네번째로 이름을 올렸기 때문이다.

쉬안제O1이 IT업계에 충격파를 던졌다면, 이날 함께 공개한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YU7’는 글로벌 자동차 업계에 ‘새로운 경쟁자의 출현’을 알렸다. 샤오미는 날렵한 디자인에 한번 충전으로 835㎞까지 달릴 수 있는 이 SUV의 라이벌로 포르쉐와 테슬라를 지목했다. 싸구려 보조배터리나 만들던 중국의 변방기업은 이렇게 설립 15년만에 스마트폰, 가전, 전기차, 반도체, 인공지능(AI), 휴머노이드를 아우르는 프리미엄 시장의 신흥 강자로 부상했다.

○‘갓성비’에서 프리미엄으로 변신

샤오미가 언론에 처음 대서특필된 건 2014년 여름 무렵이었다. 당시 중국 스마트폰 시장을 양분했던 애플과 삼성전자가 그 해 2분기 1위 자리를 설립 4년차 신생기업에 내줬기 때문이다. 아이폰을 빼닮은 디자인에 가격은 3분의 1에 불과한 샤오미의 ‘미1’에 중국인들은 열광했다. 뒤이어 6000원대 보조배터리와 10만원대 무선청소기 등을 내놓으며 샤오미는 가성비 기업의 대명사가 됐다. 누군가는 샤오미에 ‘대륙의 실수’란 별명을 붙였고, 다른 이는 ‘차이슨(차이나+다이슨)’이라고 불렀다.

승승장구하던 샤오미 성벽에 균열이 생긴 건 2016년께였다. 화웨이, 오포, 비보 등 다른 중국 스마트폰 기업들이 치고 올라오면서 샤오미는 중국 4위, 글로벌 5위로 밀려났다. 샤오미의 위기 탈출 해법은 ‘방향 전환’이었다. 다른 업체들과 가격으로 승부하는 대신 해외기업들이 독차지한 프리미엄 시장에 뛰어들기로 한 것.

벤치마크 대상은 보다 강화된 애플이었다. 애플의 iOS 같은 자체 운영체제(OS) 미유아이(MIUI)의 성능을 업그레이드 하고, 애플스토어와 비슷한 오프라인 매장(미 스토어)도 중국 전역에 깔기 시작했다. 자체 AP 개발은 물론 거대언어모델(LLM) 같은 인공지능(AI) 연구에도 나섰다. 지금은 아이폰 못지 않게 커진 샤오미의 생태계가 구축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부터였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스마트폰 성장세는 주춤해졌지만, 프리미엄 수요가 꾸준히 늘어난 덕분에 샤오미의 덩치와 내실은 해가 갈수록 좋아졌다. 2015년 12조7314억원이었던 매출은 지난해 69조4197억원으로 10년동안 5.4배 이상 불었고, 같은 기간 순이익은 571억원 적자에서 4조4898억원 흑자로 전환됐다.

일등공신은 단연 스마트폰이었다. 비싼 가격에도 불티나게 팔려서다. 지난해 샤오미 스마트폰은 전세계에서 1억7000만대 팔려 전년 대비 15% 증가했다. 독일 라이카와 협업한 카메라를 탑재한 ‘샤오미 울트라 15’의 국내 출고가는 169만원에 이른다. 프리미엄 전략이 먹히면서 작년 이맘 때 11달러대였던 주가는 지난 20일 34.19달러로 3배 뛰었다. 올 1분기 샤오미는 화웨이로부터 ‘중국 1위 스마트폰 기업’ 타이틀도 되찾았다. 샤오미의 시가총액은 약 245조원으로 코스피 2위인 SK하이닉스(약 187조원)보다 많다.
한 때 애플 짝퉁 제품을 만든다는 오명을 받았던 샤오미는 프리미엄 스마트폰 사업 전략 확대로 글로벌 시장에서 애플, 삼성전자에 이어 3위사업자로 자리매김했다. 레이 쥔 샤오미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2015년 베이징에서 자사 스마트폰을 소개하고 있다. 검은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을 한 레이쥔 회장은 애플의 스티브잡스를 연상케 한다. 샤오미 제공

○‘샤오미 생태계’에 고객 가둔다

샤오미가 단기간에 수많은 첨단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선 견해가 엇갈린다. 일각에선 중국 정부의 파격적인 지원을 첫 손에 꼽는다. 샤오미가 경쟁업체의기술과 인력을 편법적으로 활용해 기술력을 급속하게 끌어올렸을 것이란 얘기도 있다. 미국의 중국 제재가 화웨이에 집중되면서 반사이익을 얻었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상당수 IT 전문가들은 샤오미가 세운 ‘전략의 승리’로 해석한다. 일찌감치 프리미엄 시장으로 방향을 튼 것, 벌어들인 돈의 상당부분을 연구개발(R&D)에 투입한 것, 스마트폰 하나에 매달리지 않고 AP, AI, 전기차, 휴머노이드 등으로 영역을 넓힌 것 등이다.

자체 생태계 구축도 샤오미가 강해진 핵심 이유 중 하나다. 샤오미의 수많은 제품을 샤오미의 AI와 사물인터넷(Iot)로 엮는 ‘샤오미 월드’에 한 번 발을 들여놓은 고객은 다른 브랜드로 옮길 수 없는 충성고객이 된다는 게 이 전략의 요체다. 스마트폰과 TV, 자동차 등 샤오미가 만드는 200여개 품목을 샤오미 앱(MI 앱) 하나로 제어할 수 있는 만큼 샤오미 스마트폰을 쓰는 고객이라면 청소기를 살 때 샤오미를 1순위로 선택하게 된다는 얘기다. 샤오미가 전기차와 대형 가전 사업에 뛰어든 것도 거대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포석이다.

넉넉한 R&D 투자가 이를 가능케 했다. 샤오미의 R&D 투자는 2017년부터 2023년까지 연평균 35%씩 늘었다. 올해 R&D 투자액은 300억 위안(5조8000억원)이다. OS 고도화, AI, 반도체 등 부품 내재화, 전기차 개발 등에 들어간다. AI 인재 영입에 연봉 20억원을 부르고, 자율주행 스타트업 딥모션을 사들이는 등 미래 경쟁력에 꼭 필요한 사람과 사업모델이라면 돈을 아끼지 않는다.

중국 정부의 지원도 샤오미의 성장에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이다. ‘이구환신’(낡은 제품을 새 것으로 교체 지원) 정책 덕분에 스마트폰 판매가 늘어난 게 대표적이다. 샤오미가 전기차 사업에 뛰어들었던 것도 중국 정부가 전기차 생태계를 번듯하게 만들어준 덕분이었다. 배터리부터 제작, 차량용 소프트웨어에 이르기까지 전기차 제조에 필요한 모든 밸류체인을 값싸고 손쉽게 닿을 수 있게 정부가 설계한 데 힘입어 샤오미는 2021년 전기차 진출 계획을 발표한 지 3년 만에 첫 모델을 내놓았다.
샤오미가 2022년 개발한 휴머노이드 로봇 사이버원. 샤오미 제공

○휴머노이드, LLM으로 업그레이드

샤오미의 관심사가 어디까지 닿을 지는 미지수다. 더 많은 제품을 내놓을수록 ‘샤오미 월드’가 확장된다는 점에서 샤오미가 조만간 또 다른 신시장에 뛰어들 것으로 업계는 예상한다. 샤오미가 미래 사업으로 가장 관심을 쏟는 분야는 AP 등 반도체 설계 분야와 휴머노이드, AI 모델 등이다.

핵심은 반도체 설계 분야다. 앞으로 10년간 반도체에 69억달러(약 9조6200억원)를 투자키로 했다. 쉬안제O1 개발에 든 비용(약 2조6500억원)을 포함하면 12조원이 넘는다. 샤오미는 쉬안제01로 입증한 반도체 설계 기술을 앞세워 각종 제품에 직접 설계한 칩을 넣을 것으로 알려졌다.

로봇 분야에선 2021년 사족 보행 로봇 ‘사이버 독’에 이어 이듬해 휴머노이드 ‘사이버 원’을 선보였다. 키 177㎝, 몸무게 52㎏인 사이버 원에는 자체 개발한 AI가 탑재됐다. 가격은 1억3000만원에 이른다. 대량 생산을 위해 사이버원의 성능 고도화 작업을 할 계획이다.
LLM 성능 고도화도 주요 투자 대상이다. 샤오미는 자체 개발한 AI 모델인 ‘미LM’을 자사 스마트폰에 탑재했고, 지난 4월 공개한 오픈소스 추론모델인 ‘미모’를 자사 제품과 결합해 경쟁력을 높여나갈 방침이다.

○샤오미 혁신 이끈 '레이잡스'

“애플과 삼성전자를 5~10년 내 따라잡겠습니다.”
레이 쥔 샤오미 회장이 2014년 공개 석상에서 이렇게 선언했을 때, 업계의 반응은 싸늘했다. 설립한 지 4년밖에 안된 신생 기업이 기술로 보나, 브랜드 파워로 보나 상대도 안되는 글로벌 기업을 경쟁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그랬다.

10여년이 흐른 2025년, 샤오미는 그 때 레이 회장의 말 그대로 됐다. 샤오미의 올 1분기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은 14%(출하량 기준)로, 삼성(20%) 애플(19%)에 이어 3위에 올랐고, 스마트워치 등 웨어러블밴드 시장에선 19%로 1위를 꿰찼다. 그 사이 애플도 포기한 전기차를 내놨고, 삼성도 빌려쓰는 스마트폰 운영체제(OS)를 스스로 구축했다.

레이 쥔 회장은 이런 ‘샤오미 매직’을 이끈 사령탑이다. 샤오미(小米)의 로고 ‘미(MI)’는 모바일 인터넷(Mobile Internet)을 의미한다. 레이 쥔 회장이 IT기기 제조 너머를 꿈꿨기 때문에 이런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레이 회장은 공공연하게 “하드웨어는 우리의 주요 수입원이 아니다. 소프트웨어를 포함해 전체 스마트폰 생태계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레이 쥔 회장은 소프트웨어 전문가이자 벤처사업가다. 1969년 후베이성 셴타오에서 태어나 우한대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한 그는 대학시절 내내 컴퓨터에 빠져살았다. 졸업 후 백신 소프트웨어 회사인 산써(三色)공사를 창업했지만 얼마 못 가 실패했다. 1992년 소프트웨어 회사 킹소프트(金山)에 입사해 1998년 최고경영자(CEO)가 됐다.

부와 명예를 다 가진 마흔 살 사업가를 다시 창업 전선으로 이끈 건 2007년 나온 애플 아이폰이었다. 세상이 바뀌는 경험에 충격을 받은 그는 자신의 힘으로 아이폰을 만들고 싶었다. 그런 그에게 중국 IT업계는 ‘중국의 스티브 잡스’, ‘레이 잡스’란 별명을 붙여줬다.

레이 쥔 회장은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세를 얻은 ‘슈퍼스타’ 기업인 중 한명이다. 중국 SNS인 웨이보 팔로워만 2400만명에 달한다. 업계에선 그의 인기 비결중 하나로 자신의 SNS를 통해 소비자들과 직접 소통하는 걸 꼽는다. 지난해 3월 첫 전기차 SU7 출시하면서 그가 직접 라이브 스트리밍을 진행했을 때 영상을 시청한 사람이 수천만명에 달했다.

포브스는 레이 쥔 회장의 자산을 353억달러(48조5000억원)로 추정하며, 중국 부자 순위 5위 자리에 올렸다. 샤오미의 주가가 지난 1년간 3배 상승한 덕분이다. 레이 회장은 샤오미 지분 24.2%를 보유하고 있다.

김채연 기자 why2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