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도서관 [권지예의 이심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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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A23
시니어 위한 비대면 도서 배송10년 전 청송 객주문학관에 머무르고 있을 때, 청송교도소를 탐방할 기회가 있었다. 모니터에 뜬 중죄인의 독방이 이상하게 인상적이었다. 감시 시스템만 없다면 그곳은 좁고 밀폐돼 오로지 한 가지 일, 글쓰기에만 몰두할 수 있는 곳. 우습게도 내가 가장 글을 잘 쓸 수 있는 공간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집안에 조용한 서재와 집필실이 있어도, 역시나 생활 공간의 연장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글이 잘 안 써졌다. 집은 익숙함을 매개로 한 나태함이라는 내성이 이미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장마철 책으로의 여행 어떨까
권지예 소설가
핑계 같지만 작가들은 내적 긴장과 자발적 집중을 내 안에서 끌어올려줄 장소를 찾는다. 나는 고립된 진공상태를 좋아해 최근에는 스터디카페라는 공간을 가끔 이용했다. 조명이 잘 된 칸막이 안에서 무음 키보드와 자판을 이용하니 쾌적하고 의외로 몰입이 잘 됐다. 다만 실내를 관리하는 여자 사장님이 언제부터인가 내게 호기심을 보였다. “신춘문예 준비하시나 봐요. 나이 드셔도 이렇게 열심히 도전하는 모습이 저희 학생들에게 귀감이 되니 감사합니다.” 그래서 나는 네네,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 이후로 왠지 글이 더 써지지 않았다.
그러다 참으로 몇 년 만에 집 근처 구립도서관을 가보게 됐다. 예전에 집필실이 없던 젊은 시절엔 도서관에 노트북을 들고 가 글을 많이 썼다는 생각이 났다. 그러나 거기도 공부하는 젊은 사람으로 가득하고 어린이책 열람실에는 자녀와 함께 온 어머니가 제법 보였다. 나이 지긋한 사람은 보이지 않아 좀 머쓱했다.
인도 문헌정보학자 랑가나단의 도서관학 5법칙 중에 ‘도서관은 성장하는 유기체다’라는 법칙이 있다. 인간에게 생로병사가 있듯이 도서관도 급변하는 시대의 수요와 필요에 따라 성장하고 변화한다. 요즘 도서관의 다양한 변신은 참으로 놀랍다. 미술관 옆 도서관이 아니라 미술관을 품은 도서관 식이다.
남녀노소 즐기는 도서관이지만, 활동력이 약한 시니어도 책이라는 지적 재산을 이렇게 비대면으로 편리하게 잘 이용할 서비스가 있으니 대접받는 기분이다. 사실 글쓰기와 달리 책이 가장 잘 읽히는 도서관은 나의 경우 마이홈 도서관이다. 집에서 소파나 침대에서 뒹굴거나 누워서 읽는 독서의 맛이 최고다. 한때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을 찾아 여행하고픈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외관은 아름답겠지만, 분위기에 압도된 나 자신은 박물관 조각상처럼 얼어 있을 것 같다.
곧 어김없이 장마철로 접어드는 우기의 계절이다. 가을이 독서의 계절이라지만 가을은 여행의 계절이다. 오히려 장마철이야말로 무료로 책을 배송해주는 북나름 서비스를 만끽하며 무한한 책 속의 여행을 떠나는 계절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