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따라잡자" 한국의 필사적 노력…'세계 최고' 기술 만들다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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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블록버스터 특별전
'새 나라 새 미술'
조선은 그다음에야 나오는 이름입니다. 득표율은 10% 미만. 별로 인기가 없다는 얘깁니다. 이순신 장군이나 세종대왕처럼 가장 많은 존경을 받는 위인들이 모두 조선시대 인물이고, 왕의 계보(태정태세문단세, 예성연중인명선…)를 줄줄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조선에 대해 많은 정보가 알려져 있는데도 말이지요.
아마도 이런 결과는 조선 말기의 부패와 혼란 때문일 겁니다. 조금은 억울한 것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느 나라든 망할 때 엉망인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고려말이나 신라말과 달리 조선 말기는 불과 100여년 전에 있었던 훨씬 가까운 과거. 그만큼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 있고, 일제강점기와 남북 분단 등 지금까지 그 여파가 이어지는 현대사의 비극들과도 연결돼 있습니다. 더군다나 같은 시기 세계를 쥐락펴락하던 서양의 강대국들과 비교하면 조선은 더욱더 뒤떨어지는 국가로 느껴지곤 합니다.
하지만 조선을 그렇게 초라한 모습으로만 기억할 필요는 없습니다. 신분제의 폐해와 극도의 보수성,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우리가 아는 조선의 좋지 않은 모습은 대부분 중기(中期) 이후에 본격화된 것들입니다. 하지만 국가의 기틀을 잡고,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한반도의 영토를 완성했으며, 기술을 발달시켰던 조선 전기(前期)의 모습은 분명 강렬하고도 세련된 혁신의 빛을 뿜고 있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최근 개막한 전시 ‘새 나라 새 미술’은 조선 전기의 이런 진면목을 보여주는 전시입니다. 오늘은 전시 1부 ‘백(白)’에서 만날 수 있는 백자들을 통해, 당시 조선의 모습을 비춰 보겠습니다.
고려 말 ‘막장’을 끝내다
조선 이전 왕조, 고려에 대한 대중의 인상은 썩 나쁘지 않습니다. 코리아(Korea)라는 이름의 기원이기도 하고, 개방적인 분위기와 외국과의 교류, 고려청자와 불교미술로 대표되는 화려한 문화 등의 이미지가 있기 때문인 듯합니다. 하지만 멸망 무렵의 고려 상황은 정말이지 엉망진창이었습니다. 국가 시스템과 기강은 형편없이 무너지고 있었고, 지도층은 정신을 못 차린 채 백성의 호주머니를 털어 자기 이권을 챙기는 데만 골몰하고 있었습니다. 안 그래도 자연재해 때문에 먹고 살기 어려웠던 일반 백성의 삶은 괴롭기 짝이 없었습니다.더 큰 문제는 외적의 침입이었습니다. 중국 쪽에서는 홍건적이 수도인 개경(개성)을 함락시킨 뒤 궁궐을 불태웠고, 일본에서는 왜구가 해안가뿐 아니라 한반도 전역에서 활개를 치는 등 사실상 전 국토가 짓밟히고 있었습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중국이 서울시청에 불을 지르고, 일본이 세금 수송 차량을 털어가는 ‘막장’ 상황. 하지만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나라가 잘 싸울 리 없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조선 전기는 지금 ‘한국’의 정신적 뿌리를 만든 시기이자 한민족의 문화적 전성기로 꼽힙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설명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 ①영토. 세종대왕 시기 한반도 전체가 조선의 지배 밑으로 들어왔습니다. 이는 지금 대한민국 헌법이 규정하는 영토 범위와도 일치합니다. ②한민족의 자주성과 정체성. 고려는 원나라의 영향력이 매우 강했던 시기입니다. 반면 조선은 북방(함경도)에서 온 왕실과 남쪽의 사대부들이 만나 형성한 한민족의 나라였습니다. ③문화. 훈민정음을 비롯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주요 ‘전통문화’가 조선 전기의 것입니다.
흰빛을 향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흰 도자기인데, 대체 뭐가 대단하다는 건가’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이야 도자기가 흔해빠진 시대이니 그럴 만도 합니다. 하지만 옛날 동아시아에서 도자기의 수준은, 기술력과 시스템 등 그 사회의 현재 모습을 보여주는 하나의 성적표 역할을 했습니다.하지만 조선 건국 50~60년 이후 조선백자의 수준은 전통적인 도자기 선진국이었던 중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으로 발전했습니다. 흰 색의 단단한 도자기를 뜻하는 경질(硬質) 백자는 당시 전 세계에서 중국(명나라)과 한국(조선) 두 나라만 만들 수 있는 최고의 선진 기술품. 이해하기 쉽게 현대에 비유하자면, 미국과 일본이 1990년대까지 주름잡던 반도체 업계에서 후발 주자인 한국이 강국으로 올라선 것과 같은 놀라운 발전이었습니다.
장인 한두 명이 열심히 잘한다고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백자 제조에는 고도로 정비된 사회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구하기 어려운 원료인 백토(白土)를 찾아야 하고, 초고온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대량의 땔감을 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엉망이었던 도자기가 점점 완성도를 높여가고 결국 눈부신 순백을 띠게 되는 과정은, 조선이라는 나라가 과거의 혼란을 극복하고 문화를 꽃피우는 과정 그 자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왕의 그릇
다시 조선이 세워질 당시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나라를 운영하려면 돈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국가의 근본은 세금과 재정 운용에 있습니다. 세금을 잘 걷어서 필요한 곳에 잘 쓰려면 나라 구석구석의 상황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조선은 전국 각지를 빠짐없이 조사해 지리지를 펴냈습니다.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물이 전시에 나온 세종실록지리지입니다. 여기엔 여러 인문·경제 관련 지리 내용과 함께 도자기의 생산과 관련된 정보도 적혀 있지요.새로운 왕조의 수도 한양(서울)은 전국의 물자를 빨아들이는 도시였습니다. 왕족과 관료, 사대부 가문이 사는 이곳은 생산자보다 소비자가 훨씬 많은 곳이었지요. 궁궐과 관청을 유지하고 생활을 영위하려면 여러 물건, 특히 질 좋은 물건을 많이 들여와야 했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게 생필품인 그릇이었습니다. 밥을 먹을 때 쓰는 그릇, 물병, 술병, 장을 담을 항아리, 제사에 필요한 그릇 등은 늘 필요하니까요. 이제 한양 사람들은 전국 각지에서 생산한 도자기를 받아서 쓸 수 있게 됐습니다.
그래서 조선은 도자기의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전국 각지의 도자기 생산지를 점검하고, 각 생산지에서 납품하는 그릇의 질을 상·중·하(上·中·下)로 매겼습니다. 중이나 하 단계를 받은 생산지에는 도지사·군수 등을 동원해 “똑바로 만들라”고 닦달했습니다. 대충 만드는 사람은 색출해 처벌하기 위해 밑바닥에 만든 사람 이름을 쓰도록 하기도 했습니다. 한편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는 생산지에는 견본품을 보내서 “이대로만 똑같이 만들라”고 지시했습니다. 나중으로 가면 도자기 생산 기법을 아예 바꾸도록 합니다. 장인의 재능에 따라 도자기에 무늬 그리는 솜씨에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으니, 아예 중앙에서 만든 도장을 찍어 무늬를 넣는 방식(인화기법)을 도입한 겁니다.
흰빛이 품은 순수한 이상
이 모든 게 단순히 좋은 그릇에 밥 먹고 술 마시려고 벌인 일은 아니었습니다. 백자의 대량 생산은 국가 정체성과 국민을 형성하는 과정(네이션 빌딩)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거든요.하지만 고품질 백자의 대량생산 덕분에 조선이 추구하는 질서와 정체성은 좀 더 손에 잡을 수 있는 형태로 널리 퍼질 수 있었습니다. 조선의 이념은 유교와 성리학이고, 그 의식인 제사를 지낼 때 쓰는 제기(第器)가 바로 백자. 왕실에서 지방의 향교까지 전국 모든 곳에서 똑같은 크기와 모양의 백자로 제사를 지낼 수 있게 되면서 사람들은 새로운 질서인 유교 아래 하나가 된다는 감정을 느끼게 됐습니다. 그 질서는 백자처럼 이전의 것보다 더 아름답고 순수하면서 튼튼한 것으로 느껴졌겠지요.
1491년 성종이 백자로 된 술잔을 하사하며 남긴 말은 백자의 이런 위상을 잘 보여줍니다. “이 술잔은 정결하고 흠이 없어 술을 부으면 찌꺼기가 다 보인다. 사람에 비교하면 대공지정(大公至正·아주 공평하여 지극히 바르다)해 한점의 사사로움도 없는 것과 같다.” 백자는 단순히 실용적이고 아름다운 그릇을 넘어 이상적인 사람을 말하는, 조선의 이상을 상징하는 물건이었던 것입니다.
그 앞에서 우리는 여러 생각을 떠올리게 됩니다. 새로운 세상을 꿈꿨던 조선 초기의 패기와 이상, 여러 격변 속에 빛을 잃어갔던 조선의 기구한 운명, 그런데도 여전히 전시장에서 순백의 빛으로 빛나는 백자의 존재까지…. 그 좋았던 조선의 ‘첫 페이지’를 이보다 더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은 또 없을 겁니다.
전시 폐막(8월 31일) 전 직접 만나보시길 권합니다. 오는 15일까지는 개막을 기념해 무료 개방합니다.
**이번 기사는 국립중앙박물관 전시도록 <새 나라 새 미술 : 조선 전기 미술 대전> 등을 참조해 작성했습니다.
<그때 그 사람들>은 미술 담당 기자가 미술사의 거장들과 고고학, 역사 등을 심도 있게 조명하는 국내 문화 분야 구독자 1위 연재물입니다. 매주 토요일 새로운 이야기로 찾아옵니다. 네이버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시면 미술 소식과 지금 열리는 전시에 대한 심층 분석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 구독 중인 7만여명의 독자와 함께 아름다운 작품과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앞서 다뤘던 화가들의 이야기와 아름다운 그림들은 두 권의 책 <명화의 탄생, 그때 그 사람>과 <명화의 발견, 그때 그 사람>으로 곁에 두고 즐길 수도 있습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