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교향악단과 도쿄필…언어와 국경을 초월한 2시간을 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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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 기념
KBS교향악단×도쿄필하모닉 공연
그렇다면 도쿄에서 활동하는 수많은 오케스트라 중에 왜 도쿄필하모닉이 선택되었을까? 정명훈과의 인연 때문이다. 정명훈은 오랜 시간 도쿄필하모닉의 명예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다. 예술이라는 매개로 맺어진 이 관계는 어느 관계보다 특별하다. 특히 도쿄필하모닉과는 최근까지도 한국에서는 잘 시도하지 않았던 다양한 레퍼토리들을 함께 하며, 음악적 비전을 공유해왔다.
이날 합동공연의 1부는 모차르트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이었다. 두 피아니스트는 특별한 개성을 드러내기보다 모차르트 작품 곳곳에 불을 비추며 작품을 조망했다. 서로의 소리를 듣는 과정도 즐거웠지만, 오케스트라 각 악기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합을 맞추는 일 자체가 즐거워 보였다. 앙코르는 두 피아니스트가 나란히 앉아 연주하는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5번을 선택했다.
이어진 2부 말러 교향곡 1번에선 악장뿐만 아니라 주요 악기의 수석들도 대부분 도쿄필하모닉의 단원들이 맡았다. 도쿄필하모닉이 어떤 오케스트라보다도 정명훈의 음악을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은 정명훈이 원하는 음악이라면 한 몸 던져 헌신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덕분에 지난 2월 KBS교향악단이 말러를 연주할 때 보다 저음현이 강화되었고, 목관악기가 존재감을 드러냈다. 매순간 예쁘게 다듬어진 소리가 흘러 나온건 아니지만, 다른 악기들 사이에서도 자신의 존재를 뚜렷하게 알려주는 건강한 소리였다. 이들은 KBS교향악단과 함께 멋지게 음악을 만들었다.
물론 공연에 의문이 들 수도 있다. KBS교향악단 56명, 도쿄필하모닉 55명, 이렇게 숫자를 기계적으로 맞춘다는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단일 오케스트라의 연주보다 과연 더 나은 연주를 담보할까? 아니면 더 대단한 예술적 성취가 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두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하는 2시간 동안은 두 국가가 한가지의 목표를 가지고 언어와 국경을 초월했다. 음악 안에선 한국과 일본이 더이상 경쟁할 필요가 없었다. 그 자체만으로도 특별한 시간이었다.
이번 공연은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롯데그룹 후원으로 마련됐다. 이날 리셉션 행사에 참석한 지휘자 정명훈은 "두 나라가 음악이 주는 메시지를 생각하며 더 가까워지길 바란다"며 "의미 있는 공연을 후원해 준 기업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고 말했다.
허명현 음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