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좌절하고 있다면, 주 샤오메이의 바흐를 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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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김수미의 최애의 최애한 사람의 예술은 그 자신의 삶과 상호작용 한다고 믿는다. 내가 사랑하는 예술가들은 의외로 허술한 면도 있고 대부분 흠집투성이다. 상처가 많다고 덮어놓고 무작정 추앙하지는 않는다. 나무가 갑작스러운 변화나 스트레스로 인해 생긴 균열을 불그스름한 표피로 멋스럽게 변모시키듯, 자기 결함과 상처를 끝내 고유한 예술로 승화한 이들을 동경한다. 생의 풍파에 깎이고 도려내어진 자국을 지닌 이들의 예술에는 감상자의 은밀한 내적 상처와 공명할 저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피아니스트 주 샤오메이
문화대혁명으로 음악 인생 단절
바흐 연주하며
연주가로서의 삶 되찾아
요즘은 주 샤오메이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음반을 즐겨 듣는다. 바흐의 다성음악을 피아노 연주로 듣고 있으면 한 사람이 동시에 여러 개의 돌림노래를 능숙하게 저글링하는 경지에 혀를 내두르게 되는데 그의 연주는 유독 그랬다. 선율들이 각자의 선로를 공고히 지키니 애써 집중하지 않아도 모든 노랫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와 긴장이 스르르 풀렸다. 숱한 곡절 끝에 자신을 거뜬히 조율하게 된 사람의 내면이 이러하려나? 외부의 말과 글 때문에 속에서 무언가가 자꾸 충돌하고, 부정적인 감정에 잠식될 것 같은 날이면 그의 가지런한 푸가 연주를 찾게 됐다.
그러나 그는 끝내 자신을 되찾았다. 수용소 생활이 끝난 뒤 정부에서 준 무용학교 반주자 자리에 만족하지 않고 늦은 나이에 음악 공부를 위해 미국과 프랑스로 떠났다. 지인들의 집을 전전하며 피아노를 빌려 쳤고, 이방인으로 부유하는 10여년간 가정부와 청소부로 일하며 학비를 마련하고 생계를 유지했다. 46세에 유럽 무대에 데뷔하고, 50세에 첫 음반을 발매했다. 광기 어린 시대에 희생된 이들의 명예 회복을 바라며 자신의 상처와 어두웠던 날들까지 고스란히 담아 책으로 썼다. 현재는 파리에서 조용히 음악을 가르친다는 근황이 내가 아는 전부다. 체제에 의해 본성이 훼손된 청년과 한 시대의 파도를 빠져나와 성찰하는 구도적인 피아니스트. 그 넓은 간극의 중심에 바흐가 있다.
바흐의 음악이 주 샤오메이의 삶을 강하게 끌어당긴 이유는, 그들의 고난과 결핍에 닮은 부분이 있기 때문 아닐까? 바흐는 일찍부터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을 경험했다. 열 살 무렵엔 양친을 모두 여읜 상태였고, 첫 번째 부인이 갑작스럽게 사망했으며, 자녀 중 몇몇 또한 어린 나이에 죽거나 방탕하게 살다가 삶을 마감했다. 아른슈타트, 바이마르, 쾨텐, 라이프치히로 일터를 옮기는 동안 부당하다고 느끼는 일은 참지 않는 바람에 소동이 끊이지 않았다. 바이마르에서는 사직을 고집하다 한 달 동안 감옥에 갇혔으며, 마르틴 게크에 따르면 바흐 생애 마지막 몇 년은 ‘스스로 정한 준퇴임 상태’였을 만큼 좀처럼 직장에 대한 만족을 느끼지 못했다. 바흐가 받들었던 종교음악은 낡은 유물 취급을 받았다. 어딘가에 온전히 포용 되는 느낌,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다는 일상의 안정감은 바흐의 삶에도 드물었을 것이다.
주 샤오메이는 타국에서 별다른 경력을 쌓지 못하던 긴 시간 동안, 피아노 앞에 앉아 음표 하나하나가 자신이 원하는 소리가 될 때까지 연습을 거듭했다. 최고를 추구했던 작곡가의 음악이 연주자에게도 같은 자세를 이끌어낸 것은 아닐까? 주 샤오메이는 최상의 울림을 찾는 ‘피아노 명상’을 통해 현실적 고민이나 조급함에서 벗어나 음악과의 온전한 일체감을 경험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그는 바흐의 음악과 노자의 사상 사이에서 연결고리를 발견하며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관을 확립했다.
삶의 불안정성은 때로 더 많은 동력을 일으킨다. 바흐와 주샤오메이는 그 에너지를 현실과 타협하거나 자신을 당장 드러내기 위해 쓰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음악적 결과물이 최선이 되는 길에만 매진했다. 바흐에게는 작곡이, 주 샤오메이에게는 피아노가 자기 존재의 본질이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한물간 음악을 만든다는 취급을 받았던 바흐는 시간은 좀 걸렸지만 모든 음악의 발원지로서 제 위상을 되찾았고, 바흐 음악을 매개로 주 샤오메이 또한 연주자로서 자신의 길을 단단히 다질 수 있었다.
바흐 스페셜리스트로 자리매김한 주 샤오메이는 어느 토크쇼에서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어떤 말을 해주길 바라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이에 대한 그의 답변을, 눈앞이 막막하고 혼란스러운 속에서도 치열하게 자신의 알맹이를 붙들고 분투하는 이들과 나누고 싶다. “넌 용기를 잃지 않고 열심히 살았지. 이리와, 내 너에게 바흐를 소개해 주마.”
(2014년 바흐 페스티벌에서 주샤오메이 <골드베르크 변주곡> 연주 실황. 연주가 이뤄진 라이프치히 성 토마스 교회는 바흐가 마지막으로 일했던 곳으로 바흐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김수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