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10%의 '혹시나' 때문에 60%의 혁신이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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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적인 UCLA학파 경제학1960년대 초 의약품 역사상 비극적인 사건 중 하나로 꼽히는 탈리도마이드 사건이 있었다. 입덧에 효능이 뛰어난 이 약을 먹은 산모들 아기의 팔다리가 짧거나 없이 태어난 사건이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이 사건을 계기로 1962년 식품·의약품·화장품에 대한 초강력 규제를 도입했다. 10여 년 뒤인 1970년대 초 샘 펠츠먼 캘리포니아주립대(UCLA) 교수는 이 규제가 신약 개발에 미친 영향을 연구했다.
데이비드 R. 헨더슨 외 지음
황수연 옮김 / 리버티
173쪽|1만2000원
연구 결과 규제 도입 전후 FDA가 승인한 약품 수가 60%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펠츠먼은 “10%의 잠재적 부작용을 막기 위해 60%의 잠재적 혁신이 제거된 산탄총 규제”라고 비판했다. 1970년대 펠츠먼 교수를 비롯해 아르먼 앨치언, 해럴드 뎀세츠, 벤저민 클라인, 로버트 클라워 등 자유시장을 연구한 학자들을 일컬어 ‘UCLA학파’라고 한다. 최근 출간된 <본질적인 UCLA학파 경제학>은 20세기 경제학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으나 잘 알려지지 않은 이들을 소개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몇몇은 이를 익살스럽게 ‘로스앤젤레스 소재 시카고대’라고 부르기도 했다. 경제학 연구 성과와 영향력 측면에서 시카고학파만큼 강력했기 때문이다.UCLA학파는 광고 규제를 둘러싼 논쟁에도 중요한 공헌을 했다. 광고가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느냐, 소비 열망만 불러일으키냐는 논쟁이었다. 클라인 교수는 이와 관련해 “광고하면서 높은 가격에 제품을 판매하는 기업들은 상표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고자 믿을 만한 제품을 제공하는 데 힘쓰는 경향이 있다”고 결론지었다.
UCLA학파는 맹렬한 자유시장 옹호자이지만 자유시장이 완전하게 작동하고 항상 교과서적인 효율을 달성한다고 주장하지는 않았다. 단 자유시장 거래의 불완전 요소들이 정부의 개입을 통해 마법처럼 사라지지도 않는다고 강조했다. 탈리도마이드 사건을 계기로 도입된 FDA 규제와 같이 규제와 반독점 정책 등 정부 개입이 더욱 비효율적인 결과를 초래한다는 사실을 경험적이고 구체적인 사례 연구를 통해 입증해냈다.
전설리 논설위원 sl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