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구타와 전기고문보다 무서운 '쥐'

공포와 광기에 관한 사전

케이트 서머스케일 지음
김민수 옮김 / 한겨레출판
356쪽│1만8000원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의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는 여자친구 줄리아와 함께 반체제 운동을 하다가 붙잡혀 모진 고문을 당한다. 가혹한 구타와 전기 고문에도 여자친구를 배신하지 않던 그는 공포증에 무너진다. 스미스가 ‘쥐 공포증’이 있다는 걸 안 고문관들이 굶주린 쥐 두 마리를 눈앞에 들이민 것. 윈스턴은 한순간에 긍지와 존엄을 모두 잃고 공포에 질려 소리친다. “줄리아를 고문하세요! 나 말고! 제발!”

육체와 정신이 아무리 강인한 사람이라도 별 것 아닌 사물이나 현상을 뼈저리게 두려워할 때가 있다. 세상에 두려울 게 없을 것처럼 완벽해 보이는 배우 소지섭도 예외는 아니다. 그는 2017년 한 방송에서 “풍선만 보면 뱃속이 펑 하고 터질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영국의 언론인 출신 작가 케이트 서머스케일이 쓴 <공포와 광기에 관한 사전>에 따르면 이런 두려움은 ‘풍선 공포증’으로 정의된다. 미국의 스타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도 이 공포증을 앓고 있다.이처럼 저자는 책을 통해 인간이 갖고 있는 공포증들의 종류와 증상을 소개해 나간다. 조류공포증, 발표공포증, 불결공포증 같은 공포증과 웃음광, 방화광, 허언증 같은 광기 총 99종을 생물에 대한 공포증(1부), 인형부터 팝콘까지 물건에 대한 공포증(3부) 등으로 묶어 나열하는 식으로 정리했다.

공포증과 광기 중 상당수는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유전자에 본능으로 새겨진 것들이다. 예컨대 자연 상황에서 뱀공포증을 가진 사람은 뱀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보다 생존에 유리하다. 뱀에 물릴 우려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반면 어떤 공포증은 결함이나 비정상이 아니라 경험과 개성의 산물이기도 하다. 평생 거미공포증에 시달리다 치료 프로그램을 통해 이를 극복한 한 사람의 소감을 보면 알 수 있다. “나는 생전 느껴보지 못했던 묘한 상실감을 느낀다. 거미를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이라니, (…) 내가 알던 나는 사라지고 없다.” 제목만 보면 공포증과 광기를 단순히 흥미 위주로 소개한 책 같지만, 읽다 보면 인간의 정신과 내면의 구조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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