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감귤의 눈물…축구장 8000개 넓이 농장 사라졌다

감귤 재배면적 30년 전으로 후퇴

딸기에 밀리고, 키위에 치이고
시큼한 감귤 '대표 겨울과일' 옛말
2000년 2만5천여ha 정점 뒤 내리막
농가들, 수익성 좋은 망고 등 전환

지자체마저 "감귤 농사 접어라"
생산까지 4~5년 걸려 젊은농부 기피
고당도 과일에 밀려 식탁서 사라질 수도
제주도의 밀감 재배면적이 급감하는 가운데 당도를 높인 겨울과일 재배농가는 크게 늘고 있다. 애월읍의 한 농장에서 농민이 국립원예특작과학원이 개발한 국산만감류 ‘윈터프린스’를 수확하고 있다. /뉴스1
오랫동안 국내 대표 겨울과일 자리를 지켜온 제주 감귤의 경작지형이 크게 바뀌고 있다. 박스째 감귤을 사다놓고 시시때때로 까먹는 모습이 흔한 일상 풍경이었지만 고당도 선호 현상과 수익성 악화, 재배 농가의 고령화 등 복합적 요인으로 제주 감귤이 겨울과일 1위 자리를 내주고 퇴조하는 분위기다. 그 틈새를 노린 딸기 키위 등이 겨울과일의 새 주자로 부상하고 있다. 한때 제주 전체 면적(18만5000㏊)의 7분의 1을 차지했던 제주 감귤 재배 규모도 30년 전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감귤 면적 31년 만에 2만㏊ 아래로

24일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감귤 재배면적은 1만9998㏊로 30여 년 만에 2만㏊를 밑돌 전망이다. 감귤 재배면적이 2만㏊ 아래로 떨어진 것은 1만9414㏊를 기록한 1990년 이후 31년 만이다. 최대 면적을 자랑했던 2000년의 2만5796㏊와 비교하면 올해 재배면적이 22.5%나 줄어들었다. 내년 감귤 재배면적은 1만9842㏊로 더 줄어들 전망이다. 농촌경제연구원은 “농가의 폐원과 만감류(晩柑類) 전환 등으로 재배면적이 지속적으로 감소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천혜향 레드향 한라봉 등 오렌지와 밀감의 혼합종인 만감류 면적이 소폭 증가하고 있지만 대표 겨울과일이던 온주(溫州)감귤 감소폭이 이를 뛰어넘고 있어 재배면적 축소 속도가 가파른 상황이다. 온주감귤 재배면적은 올해 1만5959㏊로 1만6000㏊를 밑돌았고 내년엔 1만5791㏊가 될 것으로 관측된다. 올해 온주감귤 생산량은 지난해 51만5800t에서 8.7% 감소한 47만1000t이다. 올겨울 출하량 또한 전년 대비 약 10%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수익성 악화로 대표 겨울과일 1위 자리도 내줘

온주감귤 퇴조 원인은 복합적이다. 우선 과일 소비 트렌드가 바뀌었다. 소비자들이 점점 당도 높은 과일, 보기에 예쁜 과일, 새로운 품종을 원하면서 시고 품종 개량이 더딘 감귤 외면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감귤은 2018년까지 이마트 과일 매출 1위였지만 2019년엔 3위, 지난해와 올해 4위로 밀려났다. 감귤이 밀려난 자리를 딸기가 차지했다. 딸기는 2018년 매출 5위에서 2019년 4위, 지난해 3위, 올해는 2위로 껑충 뛰었다. 올해 이마트에서 딸기 매출이 20.7% 늘어나는 동안 감귤은 2% 감소했다. 딸기는 이마트 전체 상품군 중에서도 지난해 12월~올 1월 매출 2위(1위 라면)에 올라서며 명실상부 대표 겨울과일로 자리매김했다.이마트 관계자는 “딸기는 킹스베리, 만년설 딸기 등 다양한 품종이 계속 출시되며 젊은 층의 인기를 끌고 있지만 감귤은 품종 개량이 더디다”며 “감귤 중에서도 당도가 10브릭스에 그치는 온주감귤은 고당도 과일 선호 현상이 심화되면서 12~13브릭스의 만감류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변화로 수익성이 나빠지자 일선 농가들도 겨울작물을 대체작물로 빠르게 교체하고 있다. 온주감귤(노지재배 기준)의 ㎏당 가격은 약 1500원 선으로 레드향 5000원, 천혜향 4500원, 한라봉 3500원 등에 비해 크게 낮다. 한 대형마트 과일 바이어는 “통계상으론 3배 차이지만 수확 가능한 양 등 실제 수익성을 따지면 만감류 수익성이 거의 10배는 더 높다”고 전했다.

제주산 대표과일 키위·망고·블루베리로 다변화

제주의 대표 과일도 키위 망고 블루베리로 다양화되고 있다. 제주도를 세계 5대 생산기지(뉴질랜드·프랑스·이탈리아·일본·한국) 중 한 곳으로 점찍은 뉴질랜드 제스프리의 키위가 대표적이다. 제스프리는 제주산 키위를 국내뿐 아니라 싱가포르 등으로 수출하며 농가 판로를 확대하고 있다. 제주도 내 생산량은 2016년 1700t에서 올해 2350t으로 증가했고 재배면적도 같은 기간 100만㎡에서 175만㎡로 커졌다.과일업계 관계자는 “수익성이 낮은 감귤에 비해 제스프리는 고가에 전량 매수를 보장한다”며 “농가로서는 안정적으로 생산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2011년 258㏊였던 제주도 내 전체 키위 재배면적은 작년 328㏊로 증가했다. 2015년만 해도 재배되지 않던 망고와 블루베리도 작년엔 재배면적이 각각 38㏊, 52㏊로 늘었다.

상황이 이렇자 제주도에선 아예 온주감귤 농장의 폐원과 작물 전환을 장려하는 분위기다. 수입 과일과 대체 겨울과일이 다양해지며 더 이상 품질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제주도 농업계 관계자는 “도에서도 온주감귤은 생산하면 팔리는 시대가 지났다는 인식이 커 정책적으로 만감류나 대체작물로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며 “온주감귤 농가가 고령화되면서 옛 품종과 재배 농법을 고수한 것도 경쟁력이 떨어진 원인”이라고 지적했다.신규 식재 후 정상적인 과일 생산까지 4~5년이 걸리는 특성도 감귤 퇴장 속도를 빠르게 하고 있다. 젊은 농가가 온주감귤 신규 재배를 꺼리게 된 것이다. 소비 시장에서도 겨울철 제주 감귤 인기 하락은 장기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홈베이킹 등 활용도가 높은 딸기, 영양이 풍부한 키위, 다채로운 수입 과일 등으로 겨울과일이 다변화되고 있다”며 “시큼한 온주감귤의 인기가 반등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고 내다봤다.

박한신 기자 p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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