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 서비스에 평전 출판까지…풍월당의 이유있는 변신

문화살롱 풍·월·당

백건우·임선혜·사무엘 윤 등
클래식 거장들이 찾는
대한민국 대표 문화살롱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있는 풍월당을 찾은 손님들이 클래식 음반을 고르고 있다. 풍월당은 음반을 비롯해 최근 예술가 평전, 무크지 등 서적도 판매하기 시작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18세기 프랑스에선 예술가 문인 등 지성인들이 응접실인 ‘살롱’으로 모여들었다.
그곳에서 예술을 향유하고 각자의 지성을 나눴다. 한국에선 의미가 달라졌다.
지하로 들어가더니 유흥업소를 통칭하는 단어로 변했다.
하지만 국내에도 정통 살롱문화를 이어가는 곳이 있다. 서울 압구정 로데오거리 한복판에 터를 잡은 ‘풍월당’이다.
2003년 작은 음반판매점에서 시작한 풍월당은 지금 한국 대표 문화 살롱으로 자리잡았다.
첫해부터 내로라하는 클래식 거장들이 모여들었다. 피아니스트 백건우를 비롯해 바리톤 드미트리 흐보로스토프스키 등 세계적인 음악인들이 찾았다.

세월이 가도 풍월당을 향한 예술가들의 애정은 한결같았다. 올해 백건우를 비롯해 소프라노 임선혜, 바리톤 사무엘 윤이 공연에 앞서 풍월당에서 대담회를 열었다.

예술계 거장들이 모이자 클래식·오페라 애호가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그렇게 17년을 버텼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창궐한 올해는 상황이 달라졌다. 최성은 풍월당 실장은 “운영시간을 두 시간 줄였지만 작년에 비해 올해 음반·서적 매출이 30%나 늘었다”며 “공연을 보지 못해 답답한 애호가들이 풍월당을 찾아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강의였다. 2007년부터 시작한 예술 강의는 멈춘 적이 없었다. 매년 대학처럼 학기를 나눠 열리는 풍월당 아카데미는 박종호 대표를 비롯해 황장원, 최은규 등 음악평론가 등 각계 전문가 7명이 강사진이다.코로나19로 대면 강의가 어려워지자 박 대표는 강의 영상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기존에 해오던 두 시간 길이 예술 강의를 녹화해 DVD, USB에 담았다. 박 대표가 손수 쓴 편지, 예술 강의록 등 소책자도 함께 포장해 수강생들에게 매주 한 번 보내줬다.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강의가 아닌데도 기업경영자(CEO) 등 고정팬이 많다. 박 대표가 강의를 도맡는 ‘CEO아카데미’ 수강생 50여 명이 빠짐없이 재등록했다.

하루 한 시간도 아까운 경영자들이 예술강의를 찾는 이유는 뭘까. 박 대표는 “경영자들에게는 지식이 아니라 ‘지성’이 경쟁력이다. 예술강의는 이들을 위한 R&D(연구개발)센터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 번은 경영자들에게 일본 하이쿠(단시) 강의를 했다. 강의를 들은 수강생이 일본 업체 대표와 만났는데 현지에서도 절판된 하이쿠가 대화 주제로 올랐다”며 “하이쿠 덕분에 구매 협상이 원활하게 풀렸다고 들었다”고 했다.
단골들을 위한 ‘구독 서비스’도 선보였다. 지난달 1일부터 ‘바람의 선물’이란 이름을 달고 예술 관련 무크지(비정기 단행본)인 ‘풍월한담’과 예술가 평전, 굿즈 등을 매달 보내준다. 구독료가 3개월에 16만원이지만 시작한 지 한 달도 안 돼 구독자 1000명을 넘었다.

예술 향유층이 넓어지자 새로운 고민거리가 나타났다. 손님들 눈높이가 높아져 풍월당이 제공하는 콘텐츠 수준도 높아져야 한다는 것. 클래식과 오페라 해설에 머무르지 않고 예술가 비평에 나선 이유다. 2017년부터 《브람스 평전》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출간한 책이 스무 권에 달한다. 지난달 《아바도 평전》에 이어 이달에는 《슈만 평전》을 출간했다.풍월당을 가꿔온 원동력은 ‘유산’을 남기고 싶은 욕망이다. 박 대표는 “언제, 어디서든 예술은 우리 곁에 늘 있어야 한다”며 “풍월당이 널리 알려지는 건 관심 없다. 제대로 예술을 탐닉할 수 있는 곳이 한국에 한 곳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강조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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