廢비닐·플라스틱 마구 태우는 농촌…단속 '유명무실'
입력
수정
지면A26
경찰팀 리포트 - 쓰레기 불법소각 농촌 가보니
종량제 24년, '사각지대' 방치…비닐하우스 주변 곳곳 소각로
배추 등 음식쓰레기 널려 있고, 타다 남은 페트병·비닐 즐비
적발 늘지만 대부분 계도 그쳐
다이옥신 등 유독물질 배출, 인체 치명적…환경오염 심각
쓰레기 수거시스템 정비 시급…수거 차량 논밭까지 오지 않아
노인들 "어떻게 쓰레기 옮기나"…현실적으로 분리수거에 한계
대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청정지역으로 여겨져 왔던 농어촌에서 여전히 폐비닐·플라스틱 소각이 횡행하는 등 환경오염 감시의 사각지대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마구잡이로 태워지는 폐비닐·플라스틱
이곳에서 불과 15분 거리에서 발견한 또 다른 불법 소각로는 큰길에서도 눈에 띌 만큼 규모가 컸다. 마찬가지로 내부엔 타고 남은 재가 가득했고 옆에는 빈 페트병, 폐비닐, 종이 등이 흩어져 있었다. 큰 소각로 곁에 있던 원통형 소형 소각로에도 하얀 재와 함께 까맣게 변색된 알루미늄 캔, 폐플라스틱 등이 한데 뒹굴었다. 근처 비닐하우스에서 일한다는 외국인 노동자 A씨는 “쓰레기가 나오면 다 여기(소각로)에 넣는다”고 털어놨다. 분리수거를 하지 않느냐는 질문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입을 닫았다.
조영민 경희대 환경학 및 환경공학과 교수는 “과거에도 농촌에서 쓰레기를 그냥 태우는 사례가 있긴 했지만 최근 비닐 플라스틱 등 일회용기 급증으로 불법 소각에 따른 오염 피해가 훨씬 심각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납 수은 다이옥신 등은 미세먼지에 붙어 그대로 호흡기에 들어가기 때문에 인체에 치명적”이라며 “(불법 소각이) 대부분 음성적으로 이뤄져 환경오염에 미치는 영향을 정확하게 추정하기 어렵지만 국내 오염원의 8%가 불법 소각에서 발생한다고 보는 학자도 있다”고 설명했다.
“주택 아닌 농지는 분리수거 대상 아냐”
이 같은 불법 소각은 농어촌 지방자치단체의 열악한 쓰레기 분리수거 시스템이 한몫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자체들이 대부분 주택가에서만 재활용 쓰레기를 수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닐하우스 등 논밭에는 아예 쓰레기 수거차량이 들어오지 않는다. 소득이 낮고 고령인 농민들이 집으로 쓰레기를 되가져와 분리수거까지 하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상추 농사를 짓는 이모씨(73)는 “비닐하우스를 운영하다 보면 각종 쓰레기가 엄청나게 나오는데 쓰레기 수거차량이 가까운 큰길에조차 들어오지도 않는다”며 “노인들이 무슨 수로 직접 다 쓰레기를 집까지 옮겨서 분리수거할 수 있겠느냐”고 불만을 털어놨다.
그나마 농약과 폐비닐은 농산물 집하장에서 일부 수거하고 있지만 역시 농민들이 직접 그곳까지 운반해야 하는 데다 다른 플라스틱 및 알루미늄 캔 등 재활용 쓰레기는 아예 수거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천시 관계자는 “농촌도 도시와 똑같은 주기로 생활쓰레기를 수거하고 있지만 주택이 아닌 농지는 해당사항이 없다”고 말했다.
불법 소각 단속해도 ‘솜방망이 처벌’만
사정이 이렇다 보니 불법 소각 단속의 실효성도 높지 않다. 환경부는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해 2017년 하반기부터 산림청과 함께 불법 소각에 대한 전방위적인 단속을 펼치고 있다. 과거 지자체에만 맡겨져 있던 것과 달리 중앙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단속 건수 자체는 2017년 하반기 4223건에서 지난해 하반기 8998건으로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이천=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