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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보라 기자
    김보라 기자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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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술은 생각을 바꾸고, 글은 세상을 바꿉니다.

  • 당신은 역사가인가, 영화감독인가, 사회고발자인가, 미술가인가…모두가 나다

    ‘혼돈의 시대에 질서를 만드는 예술가.’영국의 영화감독이자 예술가 존 아캄프라(66)에 대해 세계 미술계가 보내는 찬사다. 그는 20대였던 1982년 런던에서 이민자 예술가 단체 ‘블랙 오디오 필름 콜렉티브(BLFC)’를 설립해 지금까지 흑인 영상 예술을 개척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와 뉴욕대, 프린스턴대 등에서 강단에 섰고 문화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지난해 영국 왕실의 기사 작위를 받았다.그는 올해 제60회 베네치아 비엔날레 영국관 공식 작가로 선정돼 ‘밤새 빗소리를 듣다(Listening All Night to the Rain)’라는 제목으로 회고전 형식의 대규모 전시를 열고 있다. 이번 전시가 특별한 건 두 가지 측면에서다. 그동안 흑인 이민자들의 정체성과 제국주의, 영국 내 인종 문제, 환경과 노예제도 등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작업해온 그를 1990년 후반부터 이미 베를린과 칸 등 세계적인 영화제에서 주목했다. 정작 영국 미술계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번 전시엔 영국을 대표하는 최대 미술 투자사인 아트펀드와 버버리, 포드재단, 블룸버그자선재단, 프리즈 아트페어 등이 후원사로 나섰다. 영국 정부가 반세기 만에 그를 ‘국가대표 예술가’로 인정한 것이니 평생 영국의 이방인으로 살았던 그에게는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역대 가장 많은 스크린이 이번 전시에 등장한다. LG전자는 그의 예술세계를 압축한 이번 전시에 공식 후원사로 참여해 최고 사양의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스크린 60여 대를 작가에게 제공, 그의 과거 어떤 전시보다 뛰어난 화질로 구현할 수 있게 도왔다.1958년 가나에서 태어난 그는 포스트 식민주의 시대의 풍파를 그대로 맞았다. 1966년부터 다섯 차

    2024.05.02 19:37
  • 시대·국경 넘은 인연…K컬처의 두번째 고향

    1992년.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현대미술제 뉴욕 휘트니비엔날레는 창립한 지 60년 만에 처음으로 미국 밖으로 나가기로 결심했다. 실험미술과 신진 작가들을 꾸준히 지원해온 이 미술관은 ‘경계선(Boaderline)’이라는 주제로 이듬해 일본에서 전시회를 열기로 했다. 그때 고(故) 백남준이 나섰다.“이번 주제에 가장 어울리는 나라는 한국이요, 서울이다.”휘트니비엔날레는 이듬해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열렸다. 지금까지 이 비엔날레가 뉴욕 밖에서 열린 것은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베네치아, 카셀도큐멘타와 함께 세계 3대 비엔날레로 꼽히는 휘트니비엔날레는 올해 30년 전 한국과의 인연을 또 한 번 이어가고 있다. 현대자동차가 10년간 장기 파트너십을 맺은 첫 결과물인 휘트니비엔날레가 뉴욕 한복판에서 오는 8월 11일까지 열린다. 미국 내 가장 첨예한 문제를 다루는 동시에 인류의 미래에 대한 고민을 공유하는 예술가들을,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이 공식 후원사로 나선 의미 있는 현장이다.지난 열흘간(4월 25일~5월 2일) 이탈리아 북동부 알프스산맥 끝의 우디네에서는 한국 영화인들의 축제가 열렸다. 벌써 26회째 아시아 영화에 대한 극진한 사랑을 드러내고 있는 ‘우디네극동영화제’에 이명세, 허진호, 김성수, 최동훈, 장재현 감독 등은 물론 배우 정우성까지 한국 영화계 주축들이 총출동했다. 최신 한국 영화가 상영되는 것은 기본이요, 한국영상자료원(원장 김홍준)이 디지털 복원한 1950년대 한국 영화 7편이 상영됐다. 전쟁 중에도 촬영된, 우리조차 잊었던 한국의 고전들이 이탈리아 산맥에서 상영된 순간이었다. 뉴욕 휘트니비엔날레는 현장에서 활동하는

    2024.05.02 19:27
  • 뒤집어진 성조기, 침몰하는 백악관…뉴욕 한복판서 "미국은 망했다"

    거꾸로 매달린 성조기. 백악관의 입구가 침몰한다. 검은 흙으로 지어진 파사드(건물 앞 면)는 그 자체만으로도 위태로운데, 심지어 기울어져 있다.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은 모습. 트랜스젠더 활동가인 마샤 존슨의 조각상은 침몰하는 백악관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다. ‘미국이 망한다(망하고 있다)’는 간단한 명제가 마치 허드슨 강바람에 흔들리는 깃발이 내는 ‘소리 없는 아우성’처럼 퍼진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가, 아니면 정말 모르는가”라고. ‘실제보다 더 나은 것(Even Better Than the Real Thing)’은 과연 진짜 나은 것일까, 아니면 더 악랄한 거짓말일까. 제81회 휘트니비엔날레가 던진 물음이다.올해 휘트니비엔날레는 미술관 큐레이터인 크리시 일스와 멕 온리가 디렉터를 맡았다. 주제인 ‘실제보다 더 나은’은 ‘현존’이라는 개념을 고민한다. 일상을 파고든 인공지능, 낙태 문제로 대표되는 개인과 사회의 신체 주도권 다툼, 늘 반쯤 온라인에 접속된 상황에서 발생하는 유동적 정체성, 21세기에도 이어지는 영토 전쟁과 환경 문제까지 ‘변곡점’에 달한 우리의 현재를 예술가 71명이 돌아보는 기획이다.71명의 예술가가 바라본 현재, 그 불안한 자화상이번 비엔날레의 준비 기간이었던 지난 2년간 미국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첫 손에 꼽히는 건 낙태권 이슈다. 1973년 미국 대법원에서 여성의 신체 주도권을 인정하는 ‘로 대 웨이드’(Roe vs Wade) 판결이 뒤집힌 것. 낙태권 보장이 사생활 권리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게 골자다. 세대별로, 주별로 찬반 양론이 불붙은 가운데 일부 주에서는 낙태를 인정하지 않아 생명이 위험한 상황에 처해

    2024.05.02 19:25
  • 가나 탈출한 흑인 소년, 혼돈의 시대에 질서를 만드는 영화 거장으로

    '혼돈의 시대에 질서를 만드는 예술가.'   영국의 영화감독이자 예술가 존 아캄프라(66)에 대해 세계 미술계가 보내는 찬사다. 그는 20대였던 1982년 런던에서 이민자 예술가 단체 '블랙 오디오 필름 콜렉티브(BLFC)'를 설립해 지금까지 흑인 영상 예술을 개척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와 뉴욕대, 프린스턴대 등에서 강단에 섰고 문화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지난해 영국 왕실의 기사 작위를 받았다. 그는 올해 제 60회 베네치아 비엔날레 영국관 공식 작가로 선정돼 ‘밤새 빗소리를 듣다(Listening All Night to the Rain)’라는 제목으로 회고전 형식의 대규모 전시를 열고 있다. 그가 베네치아 비엔날레에 참여한 건 처음이 아니다. 2015년과 2019년 등 두 차례 작품을 내놨다. 당시 각각 소속 갤러리와 가나 국가관 전시에 출품된 바 있다.  이번 전시가 특별한 건 두 가지 측면에서다. 그 동안 흑인 이민자들의 정체성과 제국주의, 영국 내 인종 문제, 환경과 노예제도 등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작업해온 그를 1990년 후반부터 이미 베를린과 칸느 등 세계적인 영화제에서 주목했다. 정작 영국 미술계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번 전시엔 영국을 대표하는 최대 미술투자사인 아트펀드와 버버리, 포드재단, 블룸버그자선재단, 프리즈 아트페어 등이 후원사로 나섰다. 영국 정부가 반 세기만에 그를 '국가대표 예술가'로 인정한 셈이니 평생 영국의 이방인으로 살았던 그에게는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역대 가장 많은 스크린이 이번 전시에 등장한다. LG전자는 그의 예술세계를 압축한 이번 전시에 공식 후원사로 참여해 최고 사양의 OLED TV 60여 대를 작가

    2024.05.02 14:17
  • 아르떼 매거진 '소장하고 싶은 글' 위해…10여명 새 필진 합류

    아르떼는 지난 1년간 문화예술 분야 100명의 이야기꾼과 함께해왔다. 출범 1주년을 맞아 창간하는 아르떼 매거진은 콘텐츠에 깊이를 더해 ‘천천히 읽고 소장하고 싶은 글’로 재구성한다. 이를 위해 최근 10여 명의 새 필진이 아르떼에 합류했다.클래식 분야에선 30여 년간 음악 칼럼니스트로 활약해온 박제성의 ‘서울 밖 클래식 여행’이 신설됐다. 서울에서 접하기 힘든 지역 콘서트 현장과 해외 클래식 콘서트홀을 누빈 경험을 살려 최신 클래식 트렌드를 쉽게 알려준다. 음악잡지 편집장 등을 지낸 류태형 음악 칼럼니스트는 ‘K클래식 인물열전’을 통해 한국 클래식 영웅들의 피와 땀, 눈물을 감동적인 서사로 전할 예정이다.뉴욕 맨해튼에서 젊은 다국적 연주자들로 구성된 전문 연주단체 뉴욕클래시컬 플레이어스를 이끄는 김동민 지휘자(음악감독)는 ‘뉴욕의 동네 음악가’ 코너에 칼럼을 연재하며 아르떼 객원기자로 활약 중이다. 임윤찬의 카네기홀 데뷔 무대, 클라우스 메켈레와 시카고심포니의 첫 연주 등 미국 곳곳에서 열리는 화제의 공연 현장을 깊이 있고 빠른 리뷰로 아르떼 독자들에게 전한다. KBS 클래식FM 최장수 남성 진행자이자 36년간 KBS 아나운서를 지낸 강성곤 음악 칼럼니스트는 오페라의 꽃인 아리아를 누구보다 쉽고 재미있게 해설하는 ‘아리아 아모레’ 코너로 매달 두 차례 아르떼 회원을 만나고 있다.미술 분야에선 건축을 전공한 음식 평론가이자 <맛있는 소설> <냉면의 품격> <식탁에서 듣는 음악> 저자인 이용재 씨가 ‘맛있는 미술관’으로 찾아온다. 아름다운 색채와 질감, 구도로 입맛을 돋우는 그림 속 음식들에서 비밀

    2024.05.01 18:55
  • 美 인물화 거장의 붓질을 바꾼 건…'두 번의 로마의 휴일'이었다 [제60회 베네치아 비엔날레]

    ‘미술계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이자 미국 추상표현주의 거장.’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태어나 20대 초반 미국에 정착한 빌럼 드 쿠닝의 이야기(1904~1997)다. 수식어는 또 있다. 현재 미술시장에서 가장 비싼 그림 2위(약 4474억원) 기록을 갖고 있는 20세기 최고가 기록의 화가라는 사실. 추상화로서는 드물게 피카소, 모네, 고갱 등의 그림보다 가격이 높게 형성돼 있다.그의 그림은 힘차고 강렬하다. 어두운 색감으로 표현한 여인 그림들로 먼저 유명해졌다. 어린 시절 뉴욕 불법 이민자로 건축 현장의 페인트공으로 시작해 뉴욕 아방가르드 작가들과 친해지며 전업 작가가 된 드 쿠닝. 1940년대까지 주로 인물화를 그리던 그는 이후 여러 차례 스스로를 깨고 나왔다. 자연에서 받은 영감을 끌어들이는 한편 전통적인 화풍에서 벗어난 추상적 형태, 작가의 감정이 깃든 붓질로 ‘추상표현주의’ ‘액션 페인팅’ 장르를 열었다. 이후엔 간결한 선과 밝은 색채의 대형 추상들로 잘 알려져 있다.‘네덜란드 이주자 출신 미국인 작가’로만 알려진 그의 전성기 시절을 뒤흔들었던 이탈리아의 영향을 집중 조명하는 최초의 전시가 이탈리아 베네치아 아카데미아 미술관에서 지난 17일 개막했다. 제60회 베네치아 비엔날레에 맞춰 ‘빌럼 드 쿠닝과 이탈리아’라는 제목으로 문을 연 이 전시는 첫날부터 전 세계 미술관 관계자와 관람객들이 몰려들며 단숨에 최고 화제의 전시로 떠올랐다. 드 쿠닝은 1959년과 1969년, 10년 간격으로 이탈리아를 두 차례 방문했다. 이 여행은 그의 드로잉과 조각 영역에 강렬한 영감을 불어넣었다. 첫 이탈리아 체류는 1959년 9월. 베네치아에서 며칠과 로마에서 몇

    2024.04.25 18:53
  • 베네치아 장인들 '대항해시대 조선소'에서 연극 같은 전시

    르네상스 시대 베네치아를 드나드는 모든 배를 만들던 붉은 조선소 아르세날레. 베네치아 비엔날레의 공식 전시장으로 쓰이는 아르세날레 북쪽의 ‘테세 92번’으로 불리는 거대한 창고 안은 지난 20~21일 이틀간 망치질 소리와 나무 조각하는 소리, 바느질 소리로 가득했다.이탈리아 명품 가죽 브랜드 토즈(TOD’S)가 제60회 베네치아 비엔날레를 기념해 기획한 ‘아트 오브 크래프트맨십-베네치안 마스터스’ 프로젝트가 일반에 공개되면서다. 무라노섬에서 숨을 불어넣는 유리 공예 장인 로베르토 벨트라미, 금세공 장인 마리노 메네가조를 포함해 램프 세공 장인 루시아 부바코, 마스크 장인 지오 볼드린 등 11명의 장인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토즈 브랜드의 상징적 유산인 스터드 모카신 ‘고미노’(바닥에 점을 찍듯 신발 밑창을 만든 방식)에서 영감을 받아 각자의 작품을 현장에서 직접 제작하고 설명했다.디에고 델라 발 토즈 회장은 18일 열린 VIP 오프닝에서 만나 “‘메이드 인 이탈리아’라는 환상적인 우산 아래 우리 세대가 살고 있는 것”이라며 “이탈리아에서 전통적인 수작업을 이어오는 장인들과 그들의 유산을 새로운 방향으로 해석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라고 말했다. 베네치아의 정수! 장인 11명의 ‘살아있는 전시’토즈의 이번 전시는 장인들의 작업 현장을 전시장에 그대로 두고, 관람객이 ‘살아있는 전시’를 볼 수 있게 했다는 점이다. 로베르토 벨트라미 유리 공예가는 꿀빛 유리 고미노를 손으로 만들어 낸 뒤 “유리를 예쁜 모양의 고미노로 만들어 유리 장식을 추가하는 것은

    2024.04.25 18:14
  • '베니스의 장인들' 르네상스 조선소에 쿵쿵쿵 망치질! 클래스가 달랐던 토즈 전시 [2024 베네치아 비엔날레]

    르네상스 시대 베네치아를 드나들던 모든 배를 만들던 붉은 조선소 아르세날레. 베네치아 비엔날레의 공식 전시장으로 쓰이는 아르세날레 북쪽의 '테라 92번' 거대한 창고 안은 지난 주말 이틀 간 망치질 소리와 나무 조각하는 소리, 바느질 소리로 가득했다.  이탈리아 명품 가죽 브랜드 토즈(TOD'S)가 제 60회 베네치아 비엔날레를 기념해 기획한 '아트 오브 크래프트맨십-베네치안 마스터스' 프로젝트가 일반 공개되면서다. 무라노 섬에서 숨을 불어넣는 유리 공예 장인 로베르토 벨트라미, 금세공 장인 마리노 메네가조를 포함해 램프 세공 장인(루시아 부바코), 마스크 장인(지오 볼드린) 등 11명의 장인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토즈 브랜드의 상징적인 유산인 스터드 모카신 '고미노(바닥에 점을 찍듯 신발 밑창을 만든 방식)'에서 영감을 받아 각자의 작품을 현장에서 직접 제작하고 설명했다. 디에고 델라 발 토즈 회장은 전날 열린 VIP 오프닝에서 만나 "'메이드 인 이태리'라는 환상적인 우산 아래 우리 세대가 살고 있는 것"이라며 "이탈리아에서 전통적인 수작업을 이어오는 장인들과 그들의 유산을 새로운 방향으로 해석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고 말했다.  베네치아의 정수! 장인 11명의 '살아있는 전시'  토즈의 이번 전시는 장인들의 작업 현장을 전시장에 그대로 두고, 관람객들이 '살아있는 전시'를 볼 수 있게 했다는 점이다. 로베르토 벨트라미 유리 공예가는 꿀빛 유리 고미노를 손으로 만들어 낸 뒤 "유리를 예쁜 모양에 고미노로 만들어 유리 장식을 추가하는 것은 기술적

    2024.04.23 21:26
  • 10년 우정 中쩡판즈와 日안도 타다오, 베네치아의 성스러운 조우 [2024 베네치아 비엔날레]

    현대 중국을 대표하는 작가 쩡판즈(60). 중국의 현실과 체제를 미묘하게 풍자한 '최후의 만찬' 그림으로 아시아 현대미술 작가 중 가장 높은 경매 가격(약 250억원)을 기록한 남자. 제 60회 베네치아 비엔날레 공식 개막을 이틀 앞둔 18일 오후 4시. 그가 수백 년 된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한 건물에 나타났다. 거대하고 신비로운 대작들을 들고. 그것도 일본 건축 거장 안도 다다오와 함께.    올해 베네치아 비엔날레 기간 중 곳곳에서 열리는 수십 개의 전시 중 '꼭 봐야할 톱3'로 꼽히는 전시 중엔 쩡판즈의 'Near and Far/ Now and Then(가깝고 먼/지금과 그때)'가 있다. 16세기 베네치아에서 가장 오래된 수녀원으로 쓰이던 '스쿠올라 그란데 델라 미제리코디아'가 거대한 전시장으로 탈바꿈했다. 들어서자마자 웅장한 기둥과 어두운 조명들 사이로 빛나는 그의 작품들이 마주하고 있다. 멀리서 보면 직물을 짜낸 '태피스트리'처럼 보이기도 한다. 눈을 의심하며 가까이 다가가면 물결치는듯 덧바르고 채색한 그만의 독창적인 기법이 눈을 사로 잡는다.  이번 전시엔 구상적 표현을 반복해 추상을 재정의하려는 쩡판즈의 야심작들이 집약돼 있다. 그의 새로운 기법은 인상파 화가를 떠올리게 한다. 동양과 서양의 익숙한 도상들을 그만의 해석으로 만들어냈다. 모나리자, 인상파의 빛, 해골 도상 등이 그렇다. 기독교와 불교, 도교의 도상 이미지도 넘나든다. 하나의 색이나 이미지를 표현하는 데에만 30가지 이상의 밝은 안료가 쓰였다. 습식 기법을 적극 활용해 전통적인 회화의 아름다움과 공예의 멋까지 동시에 구현했다. 1층에 걸린 두 점의 대작을 지나 2층으로

    2024.04.23 21:09
  • 美추상 거장 빌렘 드 쿠닝, 파괴적 혁신은 이태리 여행에서 시작됐다 [2024 베네치아 비엔날레]

    '미술계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이자 미국 추상표현주의 거장.'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태어나 20대 초반 미국에 정착한 빌렘 드 쿠닝의 이야기(1904~1997)다. 그의 이름에 따라붙는 수석어는 또 있다. 현재 미술 시장에서 가장 비싼 그림 2위 (약 4474억원) 기록을 갖고 있는 20세기 최고가 기록의 화가라는 사실. 추상화로서는 드물게 피카소, 모네, 고갱 등의 그림보다 가격이 높게 형성돼 있다.  그의 그림은 힘차고 강렬하다. 어두운 색감으로 표현한 여인 그림들로 먼저 유명해졌다. 어린 시절 뉴욕 불법 이민자로 건축 현장의 페인트공으로 시작해 뉴욕 아방가르드 작가들과 친해지며 전업작가가 된 드 쿠닝. 1940년대까지 주로 인물화를 주로 그리던 그는 이후 여러 차례 스스로를 깨고 나왔다. 자연에서 받은 영감을 끌어들이는 한편 전통적인 화풍에서 벗어난 추상적 형태, 작가의 감정이 깃든 붓질로 '추상표현주의', '액션 페인팅' 장르를 열었다. 이후엔 간결한 선과 밝은 색채의 대형 추상들로 잘 알려져 있다.   '네덜란드 이주자 출신 미국인 작가'로만 알려졌던 그의 전성기 시절을 뒤흔들었던 이탈리아의 영향을 집중 조명하는 최초의 전시가 이탈리아 베네치아 아카데미아 미술관에서 지난 17일 개막했다. 제 60회 베네치아 비엔날레에 맞춰 '빌렘 드 쿠닝과 이탈리아(Willem de Kuning E'Ltalia)'라는 제목으로 문연 이 전시는 첫날부터 전 세계 미술관 관계자와 관람객들이 몰려들며 단숨에 최고 화제의 전시로 떠올랐다.  드 쿠닝은 1959년과 1969년, 10년 간격으로 이탈리아를 두 차례 방문했다. 이 여행은 그의 드로잉과 조각 영역에 강렬한 영

    2024.04.23 21:08
  • 나만 알고 싶은 또 다른 너의 모습, 치앙마이

    치앙마이. 여행을 꽤 즐기는 사람들에게도 몇 년 전까지 치앙마이는 그저 낯선 네 글자였다.나라 이름인지, 도시 이름인지조차 잠시 생각하게 하는 태국 북쪽의 어떤 도시. 치앙마이는 ‘한 달 살기’라는 수식어를 달고 우리에게 왔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때. 낮은 생활비로 불편함 없이 느긋하게, 진정한 ‘슬로 라이프’를 즐길 수 있는 로맨틱한 장소로 말이다. 그때 결심했다. 언젠가 지칠 대로 지쳐 도무지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는 그런 때가 오면 꼭 한번 떠나보리라고. ‘그때’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하필이면 아무도 추천하지 않는 3월의 마지막 주, 별 계획도 없이 치앙마이로 떠났다. 낮 기온 최고 39도, 공기 질조차 최악이라는 그 시즌에 말이다. 태국의 수도 방콕에서 북쪽으로 700㎞. 치앙마이로 떠나기 전 잠시 검색해본 결과는 이랬다. 방콕에 이은 태국 제2의 도시, 원시와 문명이 공존하는 도시, 태국 북방의 장미, 황금의 삼각지대, 부처의 진신사리가 모셔진 산 위의 사원 도이수텝, 겨울 골프의 성지….10일간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여행 비수기에 찾은 덕(?)에 덥고 번잡한 도심을 벗어나 자연으로 향했다. 태국에서 가장 높은 산 도이 인타논에서의 트레킹, 치앙마이 북부 실란나 국립공원에서의 정글 바이크는 치앙마이의 옛 왕국 이름 ‘란나(Lanna)’가 왜 ‘백만 개의 논’이라는 뜻을 지녔는지를 실감하게 했다. 기계와 문명의 힘을 빌리지 않고 과거의 것들을 그저 과거 방식으로 이어가는 그들의 삶을 잠시나마 들여다보며 소란한 세상에서 삶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2024.04.11 19:24
  • 일기 쓰는 것처럼 우주를 기록…강원도에 착륙한 '불과 돌의 사나이'

    다섯 빛깔 유리 시계가 콘크리트 건물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초침과 분침이 사라진 둥근 원판 위로 색색의 햇살이 지난다. 같은 자리에 서서 바라본 보라색 시계는 그림자를 따라 12시30분을, 청록색 시계는 2시40분을 가리킨다. 몇 걸음 옮기면 그 시간은 과거가 됐다가 미래가 된다. 일본 건축 거장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강원 원주시 뮤지엄산은 그렇게 투명한 빛과 물의 공간에서 우주의 빛으로 뒤덮인 찬란한 공간으로 변신했다.무채색 건축물에 색을 입힌 사람은 ‘불과 돌의 사나이’로 불리는 우고 론디노네(60·사진). 현대미술계를 대표하는 그가 국내 최대 규모 개인전 ‘번 투 샤인(Burn to Shine)’을 들고 한국을 찾았다. 8일 뮤지엄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나는 마치 일기를 쓰듯 살아있는 우주를 기록한다”며 “안도 다다오라는 건축가가 만든 강건한 건축물 안에 또 다른 건축을 하는 과정은 즐거운 도전이었다”고 했다. 이번 전시에는 영상과 조각, 회화와 설치 등 그의 대표작은 물론 1000여 명의 원주지역 어린이와 협업해 탄생한 2000여 장의 드로잉 등이 전시됐다.○“빛나기 위해 타오르라”‘번 투 샤인’은 그가 2022년 아트바젤 파리 개막 전야제에서 처음 선보인 영상 작품이다. ‘빛나기 위해 타오르라’는 뜻의 이 작품은 세상을 떠난 그의 연인 존 지오르노의 시에서 영감을 얻었다. 삶과 죽음의 공존에 대한 불교의 격언이자 더 오랜 역사를 지닌 그리스신화의 불사조를 연상시킨다.무지개빛 햇살로 시작한 이번 전시는 말 조각 시리즈와 회화 시리즈인 ‘매티턱’으로 이어진다. 푸른 말 조각 11점엔 각각 에게해, 켈트

    2024.04.08 19:00
  • 살아있는 우주를 일기로 쓰는 돌의 사나이, 강원도에 온 우고 론디노네

    다섯 빛깔의 유리 시계가 콘크리트 건물 천정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초침과 분침이 사라진 둥근 원판 위로 색색의 햇살이 지난다. 같은 자리에 서서 바라본 보라색 시계는 그림자를 따라 12시 30분을, 청록색 시계는  2시 40분을 가리킨다. 몇 걸음을 옮기면 그 시간은 과거가 됐다가, 미래가 된다. 일본 건축 거장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강원도 원주 뮤지엄산은 그렇게 투명한 빛과 물의 공간에서 우주의 빛으로 뒤덮인 찬란한 공간으로 변신했다. 무채색의 건축물에 색을 입힌 사람은 '불과 돌의 사나이'로 불리는 우고 론디노네(60). 현대미술계를 대표하는 그가 국내 최대 규모 개인전 '번 투 샤인(Burn to Shine)'을 들고 한국을 찾았다. 8일 뮤지엄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나는 마치 일기를 쓰듯 살아있는 우주를 기록한다"며 "안도 다다오라는 건축가가 만든 강건한 건축물 안에 또 다른 건축을 하는 과정은 즐거운 도전이었다"고 했다. 이번 전시에는 영상과 조각, 회화와 설치 등 그의 대표작은 물론 1000여 명의 원주 지역 어린이들과 협업해 탄생한 2000여 장의 드로잉 등이 함께 전시됐다.   "빛나기 위해 타오르라"  '번 투 샤인'은 그가 2022년 아트바젤 파리 개막 전야제에서 처음 선보인 영상 작품이다. '빛나기 위해 타오르라'는 뜻의 이 작품은 그의 연인이었다 세상을 떠난 존 지오르노의 시에서 영감을 얻었다. 삶과 죽음의 공존에 대한 불교의 격언이자, 더 오랜 역사를 지닌 그리스 신화의 불사조를 연상시킨다. 매번 새롭게 재탠생하는 불멸의 새는 태양과 연계되고, 전생의 재로부터 다시 태어나 새 생명을 얻는다. 코로

    2024.04.08 16:47
  • 이방인처럼 널브러진 에르메스 바닥의 레몬들

    잘 익은 노란색 레몬이 바닥에 잔뜩 흩뿌려져 있다. 흙이 묻고 군데군데 깨진 흔적이 남아 긴 세월을 버텼을 거라 짐작되는 여러 문양의 타일. 빗물이 빠지는 도로의 배수로까지 재현된 이곳은 유럽의 여느 도시가 아니다. 서울 청담동 아뜰리에에르메스 전시장이다.누군가의 발에 차일 것처럼 질서 없이 뒹구는 레몬은 시칠리아 팔레르모에 흔하디 흔한 과일. 타일은 그리스, 로마, 이슬람과 게르만 문화가 녹아 있는 팔레르모의 도로를 촬영해 실제 사이즈로 출력한 사진이다. 레몬은 경제적으로 열악한 유럽 남부의 상징이자 여기저기 발에 차이며 어디에나 존재하는 이민자를 의미한다. 전시를 보러 온 사람들의 동선을 방해하는 훼방꾼처럼 보이지만, 실은 공간 전체에 신선한 에너지와 리듬을 부여하는 장치다.이 작품들은 우리 시대 가장 논쟁적인 작가 중 하나인 ‘클레어 퐁텐’이 창작했다. 클레어 퐁텐은 올해 60회를 맞이하는 베네치아 비엔날레의 주제 ‘외국인은 어디에나’로 전 세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예술가 집단. 이들이 2004년부터 해온 시리즈의 이름이 ‘외국인은 어디에나 있다(Foreigners Everywhere)’다.‘아름다움은 레디메이드’라는 제목으로 열리는 이번 전시는 클레어 퐁텐의 아시아 첫 개인전으로, 올해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 출시할 작품을 포함해 총 10점이 나왔다. 클레어 퐁텐은 누구인가? 영국 미술가 제임스 손힐, 이탈리아 이론가 풀비아 카르네발레 부부가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하다가 2004년 설립한 그룹의 이름이다.프랑스의 대중적 문구 브랜드이기도 한 클레어 퐁텐은 남성용 소변기를 뒤집어 놓고 ‘샘(Fountaine·1917)’이라고 이름 붙인

    2024.04.01 18:39
  • 청담 에르메스 바닥에 널브러진 레몬과 깨진 스크린 한가득, 왜?

    잘 익은 노란색 레몬이 바닥에 잔뜩 흩뿌려져 있다. 흙이 묻고 군데 군데 깨진 흔적이 남아 긴 세월을 버텼을 거라 짐작되는 여러 문양의 타일들. 빗물이 빠지는 도로의 배수로까지 재연된 이곳은 유럽의 여느 도시가 아니다. 21일 오후에 찾아간 서울 청담동 아뜰리에 에르메스 전시장이다. 누군가의 발에 채일 것처럼 질서 없이 뒹구는 레몬은 시칠리아 팔레르모에 흔하디 흔한 과일. 타일은 그리스, 로마, 이슬람과 게르만 문화가 녹아있는 팔레르모의 도로를 촬영해 실제 사이즈로 출력한 사진이다. 레몬은 경제적으로 열악한 유럽 남부의 상징이자, 여기저기 발에 채이며 어디에나 존재하는 이민자들을 의미한다. 전시를 보러 온 사람들의 동선을 방해하는 훼방꾼처럼 보이지만, 실은 공간 전체에 신선한 에너지와 리듬을 부여하는 장치다.  이 작품들은 우리 시대 가장 논쟁적인 작가 중 하나인 '클레어 퐁텐'이 창작했다. 클레어 퐁텐은 올해 60회를 맞이하는 베네치아 비엔날레의 주제 '외국인은 어디에나'로 전 세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예술가 집단. 이들이 2004년부터 해온 시리즈의 이름이 '외국인은 어디에나 있다(Foreigners Everywhere)'다. '아름다움은 레디메이드'라는 제목으로 열리는 이번 전시는 클레어 퐁텐의 아시아 첫 개인전으로, 올해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 선보일 작품을 포함해 총 10점이 나왔다.  클레어 퐁텐은 누구인가?  클레어 퐁텐은 한 사람이 아니다. 창작 집단이다. 영국 미술가 제임스 손힐, 이탈리아 이론가 풀비아 카르네발레 부부가 파리에서 활동하다 2004년 설립한 그룹의 이름이다. 이름만 잘 해석해도 이들의 예술세계를 짐작할

    2024.03.22 09:48
  • 50년 모래와 씨름한 벽돌화가 "난 벽돌 그리지 않는다. 그림자를 그릴 뿐"

    사각의 벽돌들이 캔버스 위에 나란히 정렬한다. 수백 개의 벽돌은 어딘가는 튀어나오고 어딘가는 들어가고, 각각의 운율로 노래한다. “저 무거운 벽돌들을 다 어떻게 다 잘라 붙였을까? 벽엔 또 어떻게 걸었을까?” 궁금해 하며 가까이 다가가면 눈을 의심한다. 사실은 평면이어서다. 정교하게 그어진 선, 자연의 빛과 그림자를 평면 위에 거침없이 표현해 환영을 만들어내는 대형 작품들은 50년 넘게 모래와 싸워온 김강용 화백(74)의 작품들이다. 1970년대 극사실회화로 시작해 평면 위에 벽돌을 채워낸 작가는 이제 모래 전문가가 됐다. ‘벽돌화가’라는 수식어를 가졌지만 “난 벽돌을 그리는 게 아니라, 모래 위에 그림자를 그리는 것”이라며 웃었다.결과물도 놀랍지만 과정은 더 그렇다. 그는 체에 걸러낸 고운 모래들을 캔버스 위에 펴바르고, 스케치 없이 그려낸다. ‘오후 2시의 빛과 그림자’를 상상하며 그림자를 그리는 셈이다. 지난 8일 서울 청담동 장디자인아트에서 개막해 다음 달 13일까지 열리는 개인전 ‘무한육면각체’ 현장에서 김 화백을 만났다.  왜 벽돌만을 그리는가의 대한 답은 50년 전으로 거슬러&

    2024.03.21 13:34
  • 리움 '필립 파레노' 당최 어렵다고? 이 작가가 지단 축구영화도 만들었대

    서울 한남동 리움미술관이 개관 20주년을 맞아 준비한 필립 파레노의 국내 첫 전시 '보이스(VOICE)'. “갇힌 세계인 미술관에 틈을 내고 싶다”고 말하는 파레노의 발칙한 상상은 관람객들을 혼란에 빠뜨린다. 현대미술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로 꼽히지만 "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지, 뭘 말하려는 건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이 상당수.그의 전작과 그 동안의 행보를 알면 실마리를 조금은 찾을 수 있다. 어떤 관람객이 어떤 행위를 하느냐에 따라 전시 내용도 달라진다니, 한번쯤 작가에 대해 알고 관람하는 건 어떨까.  필립 파레노는 누구인가 파레노는 지금 미술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 중 한 명이다. 파리 부르스드코메르스와 퐁피두센터, 뉴욕현대미술관(MoMA), 런던 테이트모던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베니스 비엔날레, 리옹 비엔날레, 맨체스터 국제 페스티벌 등에 참여했다. 퐁피두센터, 루마아를, 가나자와21세기미술관, 파리근현대미술관, 구겐하임미술관, MoMA, 테이트모던, 아이리쉬미술관, 반아베미술관, 와타리현대미술관, 워커아트센터 등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파레노는 알제리 오랑에서 태어났다. 원래 수학도였다. 이후 1983년부터 그르노블의 에콜 데 보자르에서, 1988년부터 2년 간 파리 팔레 드 도쿄 인스티튜트 데 오뜨 에뛰드 앤 아트 플라스티크에서 공부했다.&n

    2024.03.21 10:58
  • 사라지는 비누도, 쓸모없는 먼지도, 잊혀졌던 백자도…그의 셔터 아래선 아름다움을 고백한다

    11만 명.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지난 10일 막을 내린 ‘구본창의 항해(Voyage)’ 전시를 본 관람객 수다. 지난해 12월 14일 개막해 약 3개월간 열렸으니, 매일 1400명가량이 다녀간 셈이다. 1988년 미술관 개관 이후 생존작가 전시로는 하루평균 최다 관람객 수 기록이다. 관람 시간은 보통 3~4시간, 한 번에 도저히 다 못 봤다거나 또 보고 싶다는 사람이 많아 마지막 날까지 ‘N차 관람 열풍’도 불었다. 하루 한 번 현장 모집으로 열리는 전시 해설 프로그램엔 50명씩 몰렸다. 수집품 600점, 작품 500점 등 1100점이 전시됐으니 어쩌면 예고된 흥행이었는지도 모르겠다.‘구본창의 항해’ 전시가 우리에게 남긴 건 이렇듯 곧 휘발해버릴 숫자만이 아니다. 한 사람이 40년 넘게 일생을 던져 수집한 예술적 성취, 오직 카메라를 들었기에 넘나들 수 있었던 장르의 경계, 무엇보다 쓸모를 다하거나 잊혔던 것들에 다시 숨을 불어넣은 사진가의 연민이 그곳에 있었다. “구본창의 사물 사진은-아름다움을 고백한다”(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평론의 문장처럼, 작가의 항해에 승선한 사람들은 모처럼 배웠다. 사소한 풍경과 평범한 사물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고 기억하는 방식을, 이미지가 넘쳐나는 시대에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무엇인지를. 파격과 실험 -사진이 아닌 사진들이번 전시는 구본창 작가의 국내 첫 공립미술관 개인전이었다. 71세의 사진가, 일찌감치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린 그가 여태 공공 미술관에서 개인전 한 번 연 적 없었다는 사실은 그동안 미술계가 사진이라는 장르를 어떻게 바라봤는지를 시사하는 다소 씁쓸한 대목이기도 하다.구본창 작가는 ‘달항아리 사진’으

    2024.03.14 19:08
  • 11만 명 승선한 구본창의 '항해'…500점의 사진이 우리에게 남긴 것

    11만 명.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지난 10일 막을 내린 ‘구본창의 항해(Voyage)’ 전시를 본 관람객 수다. 지난해 12월 14일 개막해 약 3개월 간 열렸으니, 매일 약 1400명이 다녀간 셈이다. 1988년 미술관 개관 이래 생존작가 전시로는 일평균 최다 관람객 수 기록이다. 관람시간은 보통 3~4시간, 한 번에 도저히 다 못 봤다거나 또 보고 싶다는 사람들이 많아 마지막날까지 'N차 관람 열풍'도 불었다. 하루 한 번 현장 모집으로 열리는 전시 해설 프로그램엔 50명씩 몰렸다. 수집품 600점, 작품 500점 등 1100점이 전시됐으니 어쩌면 예고된 흥행이었는 지도 모르겠다.   ‘구본창의 항해’ 전시가 우리에게 남긴 건 이렇듯 곧 휘발해버릴 숫자만이 아니다. 한 사람이 40년 넘게 일생을 던져 수집한 예술적 성취, 오직 카메라를 들었기에 넘나들 수 있었던 장르의 경계, 무엇보다 쓸모를 다하거나 잊혀졌던 것들에 다시 숨을 불어넣은 사진가의 연민이 그곳에 있었다. “구본창의 사물 사진은-아름다움을 고백한다”(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평론의 문장처럼, 작가의 항해에 승선한 사람들은 

    2024.03.14 17:04
  • 순간과 영원, 그 사이에서 시간을 수집하는 구본창

    ‘어차피 창작자에게 고독이란 벗어날 수 없는 굴레이자 함께 가야 할 동반자이다. 모든 창작의 순간은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사진가 구본창(71)이 자신의 에세이 <공명의 시간을 담다>에 썼던 말이다. 스스로를 지극히 내향적인 사람이라 정의하는 그는, 아마도 인터뷰하기 가장 어려웠던 인물 중 하나로 남을 것 같다. 말수가 적거나 수줍음을 타서가 아니다. 그의 대규모 회고전 ‘구본창의 항해’ 폐막을 나흘 앞둔 지난 6일 오후 서울시립미술관. 작가를 알아본 전시 관람객들이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사인을 받거나 함께 사진을 찍자며 줄을 늘어서서다. 고독을 평생 친구로 여기며 살았다는 구 작가는 한 사람 한 사람 정성껏 이름을 묻고 기꺼이 응답했다. 흰머리가 성성한 작가의 믿기 어려운 수준의 ‘아이돌 스타급 인기’를 실감하며, 예정보다 20여분이 지나서야 겨우 인터뷰 장소에서 마주 앉을 수 있었다. ▶▶ 11만명 승선한 <구본창의 항해>가 우리에게 남긴 것- 전문 읽기 ▷팬덤이 있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였습니까. -얼떨떨 합니다. 45년을 카메라와 살았는데 이런 적은

    2024.03.14 16:41
  • 마음의 흔적들이 만나 탄생한 '감정의 기하학'

    살아가며 느끼는 그 수많은 감정에도 모양이 있을까. 스치듯 지나간 감정의 조각들이 결국 나라면, 그것은 대체 어디서 시작돼 지금의 모양에 이르렀을까.주가희(KAI, JU·47)는 그런 감정을 탐구하고 표현하는 작가(사진)다. 지난 6일부터 서울 인사동 마루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첫 개인전 ‘From Scratch-감정의 기하학’엔 그가 지난 5개월을 집 안에서 한 발짝도 나오지 않은 채 작업한, 30여 점의 마음 조각이 한 데 모였다. 마루아트센터는 그룹전을 주로 해온 KAI, JU 작가의 신작들로 기획 초대전을 열었다. 판화 기법으로 주로 작업거친 표면 위에 자리 잡은, 반듯한 선들은 육각형을 이룬다. 그 육각형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교하게 긋고 지나간 선, 무심히 긁힌 흔적, 흩뿌려진 점들이 기하학적 모양으로 한 화면 속에 존재한다. 검정에서 출발한 도형들은 하도 벗겨져 흰색에 가까운 옅은 회색으로, 아직 짙은 회색으로, 먹색으로도 존재한다. 이들은 대부분 중첩되고, 연결되며 그렇게 화면 위를 가로지른다. 멀리서 보면 규칙적이고 매끈한 선들이, 가까이서 보면 흠집과 상처로 가득하다. 누군가의 깊은 마음속에 들어온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보이지 않는 감정을 들여다볼 수 있는 이 작업엔 여러 도구로 누르고 찍고 또 긁어내는, 여러 단계를 거친 판화 기법이 주로 쓰였다. 그 바탕은 작가가 홈메이드로 만든 5㎜ 두께의 두툼한 닥종이. 우둘투둘한 캔버스의 표면은 작가가 한지의 재료인 닥 섬유를 구입해 집 욕조에 물을 받아 일일이 풀어헤친 뒤 나무 틀에 올려 말리는 수십 번의 작업 끝에 완성됐다. 살아남은 종이 위에 잉크를 찍어내고, 그 위를 깎아내는 음각 기법, 일부는 볼

    2024.03.12 18:53
  • 긁히고 찍힌 마음의 흔적들…그것이 만나 탄생한 '감정의 기하학'

    살아가며 느끼는 그 수 많은 감정들에도 모양이 있을까. 스치듯 지나간 감정의 조각들이 결국 나라면, 그것은 대체 어디서 시작돼 지금의 모양에 이르렀을까. 주가희(KAI, JU· 47)는 그런 감정을 탐구하고 표현하는 작가다. 지난 6일부터 서울 인사동 마루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첫 개인전 'From Scratch -감정의 기하학'엔 그가 지난 5개월을 집 안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은 채 작업한, 30여 점의 마음 조각들이 한 데 모였다. 마루아트센터는 그룹전을 주로 해온 KAI, JU 작가의 신작들로 기획 초대전을 열었다.  거친 표면 위에 자리 잡은, 반듯한 선들은 육각형을 이룬다. 그 육각형 안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정교하게 긋고 지나간 선, 무심히 긁힌 흔적, 흩뿌려진 점들이 기하학적 모양으로 한 화면 속에 존재한다. 검정에서 출발한 도형들은 하도 벗겨져 흰색에 가까운 옅은 회색으로, 아직 짙은 회색으로, 먹색으로도 존재한다. 이들은 대부분 중첩되고, 연결되며 그렇게 화면 위를 가로지른다. 멀리서 보면 규칙적이고 매끈한 선들이, 가까이서 보면 흠집과 상처로 가득하다. 누군가의 깊은 마음 속에 들어온 것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보이지 않는 감정을 들여볼 수 있는 이 작업엔 여러 도구로 누르고 찍고 또 긁어내는, 여러 단계를 거친 판화 기법이 주로 쓰였다. 그 바탕은 작가가 홈메이드로 만든 5㎜두께의 두툼한 닥종이. 우둘투둘한 캔버스의 표면은 작가가 한지의 재료인 닥 섬유를 구입해 집 욕조에 물을 받아 일일이 풀어헤친 뒤 나무 틀에 올려 말리는 수십 번의 작업 끝에 완성됐다. 절반 이상의 종이는 버려진다. 살아남은 종이 위에 잉크를 찍어내고, 그 위

    2024.03.11 22:14
  • '오펜하이머의 날'… 한방에 오스카 정복한 킬리언 머피, 삼수 성공한 로다주!

    킬리언 머피가 영화 ‘오펜하이머’로 생애 첫 아카데미(오스카) 남우주연상을 차지했다.  머피는 10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돌비 극장에서 열린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 수상자로 호명됐다. 머피는 ‘오펜하이머’에 대해 “가장 창의적이고 가장 만족스러운 영화”라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영화 오펜하이머 리뷰] https://www.arte.co.kr/stage/review/article/2425 1996년 데뷔 이래 처음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그는 단번에 수상까지 하는 영광을 안았다. 머피가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받을 것이라는 예측은 지난해 ‘오펜하이머’가 개봉한 이후부터 줄곧 이어져 왔다. 그는 올해 초 영국 아카데미, 골든글로브, 미국배우조합상 등에서 잇따라 남우주연상을 차지하며 이런 예상에 무게를 실었다. 머피를 제치고 크리틱스초이스 시상식 등에서 남우주연상을 가져간 ‘바튼 아카데미’의 폴 지오메티가 대항마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지만 오펜하이머의 무게감을 이기지 못했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이 연출한 ‘오펜하이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원자폭탄 개발 프로젝트를 주도한 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주인공 오펜하이머 역을 소화한 머피는 세상을 구하기 위해선 세상을 완전히 파괴할 수도 있는 무기를 개발해야 하는 과학자로서의 고뇌를 사실적으로 소화했다는 평을 들었다.1976년 아일랜드의 교육계 집안에서 태어난 머피는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음악과 연극에 더 관심이 많았던 그는 연극 무대와 단편영화, TV 시리즈 등에 출연하며 배우 경력을 쌓았

    2024.03.11 12:59
  • '란티모스의 뮤즈' 엠마 스톤, 라라랜드 후 8년 만에 또 오스카 퀸!

    배우 엠마 스톤이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가여운 것들'로 생애 두 번째 아카데미(오스카)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스톤은 10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 극장에서 열린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 수상자로 호명됐다. 무대에 오른 그는 수상 소감에서 감정에 벅찬 듯 요르고스 감독을 향해 "벨라(엠마가 연기한 주인공)로 살게 해줘 고맙다"고 소감을 밝혔다. 스톤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것은 2016년 '라라랜드'로 첫 수상한 이후 8년 만이다. 그는 '라라랜드'와 '가여운 것들'로 두 번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라 모두 수상하는 기록도 남겼다. 스톤은 올해 초부터 '가여운 것들'로 영국 아카데미, 골든글로브, 크리틱스초이스 등 굵직한 시상식에서 잇따라 수상하며 아카데미에서도 여우주연상을 받을 수 있을지 관심을 모았다. 그는 '플라워 킬링 문'의 릴리 글래드스톤과 각축을 벌였지만, 결국 트로피의 주인공이 됐다.'가여운 것들'은 스톤이 란티모스 감독과 네 번째로 호흡을 맞춘 작품이다. 스톤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가 천재 외과 의사에 의해 되살아난 '여자 프랑켄슈타인' 벨라 역을 맡았다. 성인 여성의 몸으로 유아기부터 지적인 인간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실감 나게 연기해 관객과 평단의 박수를 받았다.할리우드 톱스타인 그가 파격적인 베드신과 노출신에 도전했다는 점도 높은 평가를 얻었다. 1988년 미국 애리조나주에서 태어난 스톤은 어린 시절부터 배우의 꿈을 꾸며 아역으로 활동했다. 2007년 코미디 영화 '슈퍼배드'로 이름을 알린 그는 흥행작 '좀비랜드'(2009)를

    2024.03.11 12:26
  • '좀비' 그리던 화가, 꽃을 든 남자로 변신…프리즈 LA가 열광하다

    전 세계 갤러리들이 컬렉터들을 매혹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이는 아트페어. 지난달 29일부터 나흘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산타모니카공항에서 열린 ‘프리즈 LA’에선 30대의 국내 작가 한 명이 이변을 일으켰다. ‘꽃 정물’ 20여 점을 아트페어 시작 2시간 만에 모두 매진시킨 것. 주요 작품 3점은 2분도 안 돼 팔려나갔다. 이 그림의 주인공은 10년간 꽃에 빠져 지낸 김성윤 작가(39·사진)다.프리뷰 때부터 사람들은 웅성거렸다. 창립 54년 된 갤러리현대가 30대 젊은 작가에게 단독 부스를 내준 것도 최초였고, 그의 그림을 멀리서 보면 마치 17세기 플랑드르 화가들의 정물화를 모사한 듯 보였기 때문이다. 미국 전역에서 몰려든 컬렉터들은 이렇게 평가했다. “익숙한 꽃 정물인데, 가까이서 보면 완전히 새로운 해석이다. 화병은 동양적이면서도 모던한 분위기가 매혹적이다.” 다르게, 치열하게 바라보기그의 꽃 정물 시리즈인 ‘Arrangement(꽃꽂이)’는 2015년께 시작됐다. 이전까지 그는 인물화를 중심으로 작업해왔다. 그의 그림은 두 가지 면에서 시선을 사로잡는다. 우선 화병에 꽂힌 꽃이 다르다. 어떤 꽃봉오리는 뭉개져 있고, 어떤 꽃잎은 막 떨어지는 중이다. 꽃 대신 풍선이 자리하거나 폭삭 시든 상태인 것도 있다.이보다 더 눈길을 끄는 건 화병. 누구나 아는 세계적인 통조림의 상표 또는 유리병 브랜드가 화병을 대신하거나 한국의 도예가 유의정 작가의 작품들이 그대로 반영되기도 한다.“꽃에는 아름답다, 예쁘다는 수식어가 습관처럼 붙지만 오히려 꽃을 아름답게 하는 건 그걸 담고 있는 화기라고 생각했어요. 물을 담을 수 있는 모든 것이 화기가 될 수 있는데, 무

    2024.03.07 17:34
  • 10년째 꽃에 빠진 화가 김성윤, 프리즈LA 2시간 만에 완판 기록

    전 세계 갤러리들이 컬렉터들을 매혹하기 위해 한 자리에 모이는 아트페어. 지난 달 29일부터 나흘 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산타모니카 공항에서 열린 '프리즈LA'에선 30대의 국내 작가 한 명이 이변을 일으켰다. '꽃 정물' 20여 점을 아트페어 시작 2시간 만에 모두 매진시킨 것. 주요 작품 3점은 2분도 안돼 팔려나갔다. 이 그림의 주인공은 10년 간 꽃에 빠져 지낸 김성윤(39) 작가다.  프리뷰 때부터 사람들은 웅성거렸다. 창립한 지 54년된 갤러리현대가 30대 젊은 작가에게 단독부스를 내준 것도 최초였고, 그의 그림을 멀리서 보면 마치 17세기 플랑드르 화가들의 정물화를 모사한듯 보였기 때문이다. 미국 전역에서 몰려든 컬렉터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평가했다.   "익숙하고 화사한 꽃 정물인데, 가까이서 보면 완전히 새로운 해석이다. 꽃을 꽂아둔 화병은 동양적이면서도 모던한 분위기가 매혹적이다."  다르게, 치열하게 바라보기  그의 꽃 정물 시리즈인 'Arrangement(꽃꽂이)'는 2015년께 시작됐다. 이전까지 그는 인물화를 중심으로 작업을 해왔다. 그의 그림은 두 가지 면에서 시선을 사로 잡는다. 우선 화병에 꽂힌 꽃이 다르다. 어떤 꽃봉오리는 뭉개져있고, 어떤 꽃잎은 막 떨어지는 중이다. 꽃 대신 풍선이 자리하거나 폭삭 시든 상태인 것도 있다. 이보다 더 눈길을 끄는 건 화병. 누구나 아는 세계적인 통조림의 상표, 또는 유리병 브랜드가 화병을 대신하거나 한국의 도예가 유의정 작가의 작품들이 그대로 반영되기도 한다. "꽃에는 아름답다, 예쁘다는 수식어가 습관처럼 붙지만 오히려 꽃을 아름답게 하는 건 그걸 담고 있는 화기라

    2024.03.07 15:57
  • 베를린의 남자 홍상수, 벌써 5번째 은곰상 수상

    홍상수 감독이 신작 '여행자의 필요(A Traveler's Needs)'로 제 74회 베를린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  베를린영화제 경쟁 부문 심사위원단은 24일(현지시간) 오후 베를리날레 팔라스트에서 홍상수 감독의 '여행자의 필요'를 은곰상 심사위원대상 수상작으로 발표했다. 홍 감독이 은곰상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건 지난 2022년 이후 두번째. 2022년 당시 홍 감독은 '소설가의 영화'로 은곰상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다. 은곰상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한국 감독은 홍상수 감독이 유일하다. 베를린영화제에서 은곰상 심사위원대상(Silver Bear Grand Jury Prize)은 최고의 영화 작품에게 주는 황금곰상 다음으로 높은 상이다. 이번 수상으로 홍 감독은 2회의 은곰상 심사위원대상을 포함, 베를린영화제 경쟁 부문에 7차례 진출해 부문별 작품상인 은곰상만 모두 5번 수상하는 기록을 세웠다. 홍 감독은 2021년 '인트로덕션'으로 은곰상 각본상, 2020년 '도망친 여자'로 은곰상 감독상, 2017년 '밤의 해변에서 혼자'로 김민희가 은곰상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그는 이날 시상대에 올라 "심사위원단에 감사하다"며 "내 영화에서 뭘 봤는지 모르겠다. 궁금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여행자의 필요'는 홍 감독의 31번째 장편이다. 프랑스에서 한국으로 온 이리스가 두 명의 한국 여성에게 불어를 가르치고, 막걸리를 마시면서 고된 삶 속에서도 평온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두 차례 받은 프랑스 배우 이자벨 위페르가 이리스를 연기했다. 이자벨 위페르가 홍 감독과 호흡을 맞춘 건 2012년 '다른 나라에서', 2018년 '클레어의 카메라'

    2024.02.25 22:38
  • "예술이 범죄도시를 명품도시로…마이애미는 살아있는 캔버스였다"

    북미와 남미의 통로인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1990년대 마약과 총격이 빈번하던 범죄도시가 지금은 전 세계 부호의 초호화 별장지이자 글로벌 기업 본사가 몰려드는 명품과 예술의 도시로 탈바꿈했다. 지난 20년간 마이애미의 얼굴을 바꾼 수많은 조력자의 중심은 크레이그 로빈스 다크라 회장(61·사진)이다.마이애미 노스이스트 42번가는 1920년대 파인애플 농장 지대였고, 2000년대 초까지 쇠락의 길을 걸었다. 마이애미의 대표적 낙후 지역이던 이곳은 부동산 개발사 다크라가 2010년부터 ‘디자인 디스트릭트’로 개발하면서 명품 숍과 디자인 가구 쇼룸, 고급 레스토랑, 130여 개 미술관과 갤러리가 한데 모인 명품 지구가 됐다. 건축물과 간판에도 디자인 요소를 입혀 길을 걷는 누구나 예술적 감성을 느낄 수 있는 공공예술의 명소가 된 것.앞서 1999년 그가 추진한 앨리스 섬 재개발은 민간 주거 커뮤니티에 초대형 벽화를 내거는 등 디자인과 건축에 이르는 공공 예술 프로젝트로 화제를 모았다. 지금도 도시 재생의 롤모델로 꼽힌다.살바도르 달리 등의 그림 7000여 점을 보유한 컬렉터이자 현대미술 작가들의 후원가로, 아트바젤 마이애미 기간에 ‘디자인 마이애미’라는 아트페어를 기획해 파리로 수출한 그를 인터뷰했다.▷부동산 개발에 어떻게 예술 접목했나.“1982년 스페인 바르셀로나대에서 잠시 유학했다. 그때 고야, 피카소 등의 매혹적인 작품을 접하며 예술에 빠져들었다.경이로운 건축물들 자체로 도시 전체가 최고의 예술 작품이었다. 예술과 디자인, 문화적 경험이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깨닫고, 모든 기준이 바뀌었다. 부동산 개발의 접근법

    2024.02.25 19:57
  • 게티·구겐하임·페레즈…美부자는 죽어서 예술을 남긴다

    미국에서 가장 큰 미술관이자 뉴욕의 상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고대 이집트부터 유럽과 미국, 아시아에서 모인 300만 점 이상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어 흔히 영국 대영박물관, 프랑스 루브르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미술관으로 꼽힌다.대영박물관과 루브르박물관이 왕실 보관품이나 제국주의 시대 다른 나라에서 가져온 예술품들을 토대로 국가 차원에서 건립했다면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은 철저하게 민간의 기증으로 세워졌다. 1866년 파리에 살던 미국인들이 미국 독립기념일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자리에서 “미국에도 이제 명품 미술관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뜻을 모은 게 계기였다. 1870년 그 뜻에 동참한 변호사, 사업가, 예술가들은 십시일반으로 기금과 기증품을 모아 뉴욕에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을 개관했다.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 등장은 미국의 국격을 높이는 분기점이 됐다. 20세기 초 산업화 시기 막대한 부를 거머쥔 미국인들을 (유럽에 대한) 문화적 열등의식에서 벗어나게 했고, 부를 가진 자들이 더 많은 미술관을 짓게 했다. ‘메트로폴리탄미술관 효과’는 뉴욕을 세계 문화의 중심지로 만드는 데 큰 몫을 했고, 쇼 비즈니스와 상업 예술의 메카였던 도시를 ‘영원불멸의 명화 한 점을 보러 찾아오는’ 명품 도시로 만들었다. 서부엔 게티, 동부엔 구겐하임미국 최대 석유 재벌이던 J. 폴 게티(1892~1976)는 다른 영역에선 소문난 구두쇠였지만 미술품은 광적으로 수집했다. 20대 초 이미 막대한 부를 거머쥔 그는 로스앤젤레스(LA)에 게티빌라와 게티센터라는 두 개의 보석 같은 미술관을 남겼다. 당시 건축비만 13억달러 이상(약 1조7000억원)을 투입해 규모 7.5 지진에

    2024.02.25 18:44
  • 22세기 중동의 유전은 '문화예술'…매년 수십조 쏟아붓는다

    “사우디아라비아를 세계 최대의 ‘벽 없는 갤러리’로.”지난해 11월 30일 건조한 바람이 휘몰아치는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에는 화려한 빛을 뿜어내는 예술 작품 120여 점이 들어섰다. 고층 빌딩과 모래사막 곳곳에 세계 35개국 100명의 현대미술가가 펼쳐놓은 대형 작품들. 리야드 시내는 물론 금융지구, 공원 등 도심을 둘러싼 5개 주요 장소가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빛의 축제 ‘누어 리야드’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이 축제에는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프랑스계 스위스 예술가 줄리안 사리에르의 ‘현기증’, 코펜하겐에 기반을 둔 예술집단 슈퍼플렉스의 ‘수직이동’ 등이 출품돼 17일간 ‘빛으로 물든 사막 도시’가 연출됐다. 총감독은 파리를 대표하는 현대미술관 ‘팔레 드 도쿄’를 만든 제롬 상스.사막과 석유, 마천루의 이미지가 전부였던 중동은 지금 세계 문화예술의 중심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중동 각국은 문화예술 산업을 마르지 않는 ‘22세기 유전’으로 보고 2030년까지 수천억달러의 예산을 투입할 계획이다. 미술관 하나 잘 지어 해당 지역의 국내총생산(GDP)만큼 수익을 벌어들이는 ‘제2의 빌바오 효과’를 노리는 것도 있지만, 문화 인프라 발전 정도가 그 나라의 국격을 높이고 국민 삶의 질을 끌어올리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평가받고 있는 게 그 배경이다. 아부다비 간 루브르, 연 100만명 찾는다중동의 문화예술 투자는 일회성 축제에 그치지 않는다. 유럽과 미국, 아시아의 예술가나 기관, 단체와 적극적으로 손을 잡는 한편 자신들의 전통 문화와 자연유산, 현지 예술가들과 융합시키는 영리한 전략으로 승부한다. 사우디,

    2024.02.25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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