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숙제
공학수학은 2019년 서울대에 부임해 처음 맡은 과목이다. 포부가 컸다. 배우는 만큼 스스로 풀어 봐야 한다고 믿었고, 그래서 숙제를 많이 냈다. 학기 말 강의평가에는 “과제가 많아요”가 여러 번 적혀 있었다. 이듬해에는 숙제를 아예 없앴다. 그해 강의평가에는 “숙제 좀 내주세요”라는 말이 나왔다. 내줄 때는 많다고 하고 거두니 없다고 하는 셈이었다.

2021년부터는 숙제 대신 수업 중간에 퀴즈 두 문제를 냈다. 하나는 지난 시간에 배운 것에서, 다른 하나는 그날 배운 것에서 골랐다. 지난 시간 문제는 복습하고 왔는지를, 그날 문제는 수업에 집중했는지를 보자는 것이었다. 그해 강의평가에는 “퀴즈 형식으로 수업 내용을 복습할 수 있어서 좋았다”는 말이 있었다. 세 해를 그렇게 했다. 그사이 수업 시간을 알뜰하게 써서 다루는 범위도 넓혔다. 잘 굴러간다고 생각했다.

2024년에는 생성형 인공지능이 널리 퍼지면서 수업 중 퀴즈의 답을 기계에서 받아 적는 듯한 정황이 나타났다. 퀴즈로는 더 갈 수 없다고 보고 남은 학기는 퀴즈를 접고 숙제 없이 마쳤다. 대신 게시판을 열어 질문을 받기 시작했다.

연구년을 보내고 올해 다시 강단에 서면서 그 게시판을 아예 과제로 삼았다. 학생들은 매주 강의에서 생긴 질문이나 생각을 올리고, 인공지능과 함께 푼 풀이에 스스로의 검산을 붙여 올리거나, 급우의 글에 답을 단다. 일요일 밤이 마감이다. 첫 주에 서른아홉 편이 올라왔고, 다 다루려다 그날 강의가 한참 밀렸다. 그 뒤로는 수요일마다 두세 편을 골라 함께 보며 토론을 유도한다. 중간고사를 채점한 뒤 게시판 글과 견줘봤다. 글에서 수학을 맞게 쓴 학생이 시험도 잘 봤고, 글을 많이 올린 것은 점수와 상관이 없었다.

돌아보면 한 과목을 네 가지 방식으로 가르친 것이다. 학생들은 해마다 다른 말을 했고, 그 때마다 방식을 고쳤다. 그 뒤에는 과제의 양과 형식보다 앞선 물음이 생겼다. 기계가 답을 적어 주는 시대에 과제는 무엇을 위해 있는가. 답을 받아 적는 일이라면 그것은 이미 공부가 아니다. 이제 사람에게 남는 것은 관심과 하고자 하는 의지, 그리고 이해다.

무엇을 물을지는 관심에서 나오고, 매주 자기 글을 올리는 데는 의지가 들며, 받은 답을 믿어도 되는지 따지는 데는 이해가 필요하다. 게시판은 그 셋을 올리는 자리다. 성적의 대부분은 시험으로 가리고, 게시판에서는 학생이 묻고 따진 자취를 본다. 배우는 만큼 스스로 풀어봐야 한다는 첫해의 생각은 그대로다. 바뀐 것은 직접 하는 그 일이다. 숙제장에 답을 적는 대신에 지금은 물음을 적고, 받은 답을 의심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