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네바다주 구글 데이터센터.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네바다주 구글 데이터센터. /로이터 연합뉴스
부품사와 빅테크의 장기공급계약(LTA)이 증가한 배경에는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의 특성이 있다. 미국 빅테크가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는 AI 데이터센터는 고사양 부품이 유기적으로 맞물려야 작동한다. AI 데이터센터는 대규모 연산 등을 처리하는 AI의 핵심 인프라로 꼽힌다. 특히 AI가 단순 계산에서 복잡한 연산과 실시간 칩 가동이 필요한 추론 영역으로 넘어가면서 중요성이 더 커졌다. 빅테크가 ‘블루오션’인 이 시장을 차지하기 위해 AI 데이터센터 조기 가동에 열을 내는 이유다. AI 부품난이 심해지면서 빅테크와 공급사 간 LTA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빅테크는 중장기 고대역폭메모리(HBM)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메모리 3사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이미 메모리 3사의 HBM 물량은 내년까지 완판된 상황에 AI 데이터센터 건설에 속도를 내기 위해서다.
"AI 데이터센터 늦으면 도태"…빅테크, 아시아 부품사에 줄섰다
적층세라믹커패시터(MLCC) 등 수동소자와 전력 인프라, 냉각장치의 상황도 비슷하다. AI 데이터센터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의 공급난은 최소 2028년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게 업계 관측이다.

전례 없는 부품난에도 빅테크의 AI 데이터센터 투자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IB) 모건스탠리는 최근 보고서에서 2025~2028년 4년간 빅테크가 데이터센터 건설에 3조달러(약 4013조원)를 투입할 것으로 전망했다. 데이터센터 한 대에 필요한 부품 수가 수만 개에 이르는 것도 AI 부품난을 부추기는 요인 중 하나다. 통상 100메가와트(㎿)급 하이퍼스케일 AI 데이터센터에는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 약 4만 개가 들어간다. 이 GPU를 정상적으로 가동하려면 HBM 약 33만 개가 필요하다. GPU 로직 칩과 다량의 HBM을 함께 작동할 수 있도록 받쳐주는 고성능 패키징 기판인 플립칩볼그리드어레이(FC-BGA)도 약 17만 개가 쓰인다. 서버와 전력 장치 주변에서 전력을 조절하는 MLCC는 약 3억3000만 개가 들어간다. 서버 랙의 막대한 열을 식히기 위한 냉각분배장치(CDU)는 약 80대가 쓰인다.

문제는 이 가운데 부품 하나가 부족해도 AI 데이터센터 활성화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조 단위 자금을 들인 고가의 AI 서버도 이를 가동하기 위한 HBM과 FC-BGA, GPU 등이 제때 공급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된다. 막대한 전력을 소모하는 AI 서버의 특성상 안정적인 전력망과 초고효율 냉각 기기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풀가동이 불가능하다. AI 기업이 부품 부족으로 연산 능력을 적시에 확보하지 못하면 차세대 모델 학습과 서비스 확장에 문제가 생긴다.

빅테크의 핵심 고객사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TSMC 등 아시아 AI 부품사의 위상이 달라진다는 관측도 있다. AI 부품 시장이 공급자 우위로 돌아서면서 빅테크가 먼저 선수금을 들고 아시아 부품사를 찾아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얘기다. 업계 관계자는 “AI 데이터센터는 유지, 보수를 위해서도 핵심 부품이 꾸준히 필요하다”며 “LTA 중심의 새로운 시장이 열릴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원종환 기자 won040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