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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 많아도 소용없다"…중국 통제에 배터리 '비용 폭등' 우려
29일 배터리업계 안팎에 따르면 전날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국민경제자문회의-서울대학교 국가미래전략원 공동세미나’에서 정은혜 서울대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는 “배터리 핵심 광물 공급망의 최대 병목은 광산 채굴이 아니라 가공과 정련 단계”라며 “중국의 기술·원료 통제와 중동발 원자재 가격 충격이 결합해 K배터리를 옥죄고 있다”고 진단했다. 업계의 발등에 떨어진 불은 중국 상무부의 수출통제 유예 시한이다.
중국은 지난해 10월 고성능 셀(에너지밀도 300Wh/kg 이상), 삼원계(NCM) 전구체, 인조흑연 음극재, 리튬인산철(LFP) 양극재 및 관련 제조장비 6종과 공정 기술을 대거 수출허가 목록에 올렸다. 당시 미·중 정상 간 합의로 1년간 시행을 멈춰뒀던 유예 조치는 다음 달 10일 만료를 앞두고 있다. 최근 미·중 고위급 협의를 통해 무역휴전을 내년 1월 10일까지 두 달 연장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중국 상무부의 공식 법적 연장 공고는 아직 나오지 않아 통제 부활에 대한 불안감이 극에 달한 상태다.
통제가 재발동되면 국내 배터리 생태계는 직격탄을 맞는다. 배터리는 광석을 정련해 뼈대를 만드는 ‘전구체’, 여기에 리튬을 결합해 배터리 용량을 결정하는 ‘양극재’, 리튬이온을 저장·방출하는 ‘음극재’, 그리고 이들을 조립한 ‘셀’과 완제품 ‘팩’ 단계를 거쳐 완성된다. 문제는 핵심 중간재의 중국 의존도가 압도적이라는 점이다.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한국의 인조흑연 음극재 수입 중 중국산 비중은 98.8%, 삼원계 전구체는 94.1%에 달한다. 고성능 전기차와 에너지저장장치(ESS) 배터리 생산에 중국산 원료가 필수적인 구조다. 중국이 허가제를 무기화해 심사를 지연시키거나 통제하면 국내 공장은 사실상 가동을 멈춰야 한다.
한국배터리산업협회 관계자는 "중국 정부의 공식 행정 공고가 늦어지며 유예 조치 만료 시한(11월 10일)은 다가오고, 연장된다 해도 두 달짜리 유예에 불과해 단기 대응과 근본적 대책이 동시에 시급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도 "배터리 산업은 소재의 안정적인 공급이 중요한 만큼 수출통제 적용 여부와 일정의 불확실성은 기업의 중장기 조달 및 생산계획 수립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중동 정세 불안은 배터리 정련 원가를 끌어올리는 뇌관이 됐다. 정 교수는 "세계 최대 황 수출 지역인 걸프 지역의 공급망이 묶이면서 정련 공정에 필수적인 황산 가격이 치솟고 있다"고 짚었다. 배터리용 니켈과 리튬을 광석에서 화학적으로 녹여내는 고압산침출(HPAL) 및 습식 제련 공정은 막대한 양의 황산을 소비한다. 중동 분쟁이 원유·가스 가격뿐 아니라 광물 정련 비용을 수직 상승시키는 연쇄 파급을 낳고 있는 셈이다.
정 교수는 "해외 광산 지분을 사 모으는 1차원적 자원 확보 전략에서 벗어나, 국내에 독자적인 ‘정련·순환 생태계(방파제)’를 시급히 구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원광석을 아무리 들여와도 국내에 가공할 정련 설비가 없으면 중국을 다시 거쳐야 해 공급망 리스크를 해소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해법으로는 정부 비축 체계의 전면 개편을 제시했다.
그는 “정부 비축 대상을 제련되지 않은 원광석에서 즉시 산업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수산화리튬 등 ‘배터리급 화합물’로 전환해야 한다”며 “다 쓴 배터리에서 나오는 분말 형태 원료인 블랙매스(Black mass)를 폐기물 규제에서 제외해 ‘순환자원’으로 지정하고 국내 재자원화를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황산과 화학약품을 대량으로 쓰는 기존 정련 대신 직접리튬추출(DLE)이나 전기화학 분리 등 전기를 활용한 차세대 친환경 정련 기술을 조기 상용화해야 한다”며 “국내에 정련·전구체 특화 거점을 지정하고 전력망 접속 우선권과 산업용 전기요금 특례를 패키지로 지원해 기업들의 가공 설비 투자를 유도해야 한다”고 했다.
김리안/정상원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