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30일 세종시 국립세종수목원에서 음악과 미디어아트를 결합한 야외 무대가 열린다. 세종시 야간관광 행사 '2026 라이트 온 세종(Light ON Sejong)'내 특별공연이다. 미디어 아티스트 이진준 KAIST 문화기술대학원 교수가 작곡한 '쓰러진 거인(Fallen Titan)'의 선율이, 만추의 숲을 가득 채울 예정이다.

작품은 빛을 잃은 도시를 위해 별빛을 나눠주고, 마지막에는 스스로 별이 되는 거인의 이야기다. 어린 시절 직접 만든 동화에서 출발했다. 이 교수는 거인에 대해 "기술 시대에 밀려나는 성스러운 자연, 인간이 느끼는 자연에 경외심, 인간이 자연의 일부라는 자각이 담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방콕에 체류중인 그를 서면으로 27일 만났다.
이진준 KAIST 교수. 본인 제공
이진준 KAIST 교수. 본인 제공
이진준 교수는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방문교수 및 KAIST 문화기술대학원 교수이자 아트앤테크놀로지센터(KATEC) 센터장이다. 영국 왕립예술학회 종신석학회원(FRSA), 영국 왕립조각원 정회원(MRSS)으로 예술과 기술의 융합을 탐구해 온 미디어 아티스트이기도 하다.

국립심포니콘서트오케스트라는 이번 공연에서 '쓰러진 거인'의 느린 악장을 6분간 연주한다. 이 교수에 따르면 '쓰러진 거인'은 90분 규모의 교향곡을 구성하는 악장 중 하나로, 거인이 쓰러지는 순간을 그렸다. 주제 선율은 이 교수가 오래전부터 흥얼거리던 멜로디에서 나왔다. 그는 이 선율을 AI 도구로 여러 편성과 화성으로 옮겨 보며 곡의 방향을 가늠했고, 이렇게 얻은 밑그림을 현대음악 작곡가들과 함께 다듬어 관현악 악보로 완성했다. 그에게 AI는 곡을 대신 써 주는 존재가 아니라, 머릿속의 선율을 오케스트라의 언어로 옮겨 보는 번역 도구였던 셈이다. 완성된 악보에는 악기 구성뿐 아니라 영상 전환과 주변 환경음에 관한 지시까지 담겨 있다. 소리와 이미지, 장소를 하나의 시간 구조로 묶는 미디어 심포니의 설계도인 셈이다.

이 교수는 "AI는 인간의 창작을 흉내 내는 생성형 도구가 아니라 인간과 자연, 데이터와 기계 사이의 서로 다른 언어와 신호를 잇는 통역자"라며 "AI가 음악을 손쉽게 만들어내는 시대일수록 예술가는 AI를 활용해 관객을 이끌 세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무대에는 이 교수가 제안해 온 미디어 심포니(Media Symphony) 개념이 적용된다. 음악에 영상과 조명을 더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오케스트라와 AI, 이미지, 빛, 공연 공간의 관계를 하나의 시간적 구조로 구성하는 방식이다.

영상은 가우시안 스플래팅 기술을 바탕으로 제작해 LED 스크린으로 구현한다. 실제 장소를 촬영한 수천 장의 사진을 바탕으로 공간을 재구성했다. 인간의 눈으로 보기 어려운 각도에서 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건 그 덕분. 이 교수는 이번 무대를 통해 "새나 곤충, 기계 등 비인간의 관점에서 자연을 새롭게 경험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유튜브 'JJL Studio Official' 중 연구생들과 AI로 음악을 만들고 있는 이진준 교수. ⓒJJL Studio Official
유튜브 'JJL Studio Official' 중 연구생들과 AI로 음악을 만들고 있는 이진준 교수. ⓒJJL Studio Official
국립심포니콘서트오케스트라의 연주 직후에는 '아뉴스 데이(Agnus Dei·하느님의 어린양)' 합창이 이어진다. 사람의 목소리뿐 아니라 이진준 교수가 구축한 800개의 AI 에이전트 목소리도 사용한다.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다양한 목소리를 가상 공간에 배치해 인간 합창과 어우러지도록 구성했다.

그는 "관현악이 거인의 쓰러짐을 연주했다면 합창은 그 뒤에 남겨진 이들을 위한 기도"라며 "AI가 만든 목소리와 인간의 목소리가 '저희에게 평화를 주소서'를 노래할 때 기계 시대에 성스러움이 어디에 머무는지 함께 생각해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작품은 지난해 9월 19~21일 성남 분당중앙공원 야외공연장에서 열린 '시네 포레스트: 동화(Cine-Forest: Awakening Bloom)'에서 초연됐다. 이 교수는 당시 사흘간 1만 명이 넘는 관객이 함께했다고 했다.

이해원 기자 um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