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버스까지" 잘 나가던 닥터X, 난데없는 정치 논란에 시끌
SBS 금토드라마 '닥터X: 하얀 마피아의 시대'(이하 '닥터X')가 5·18 민주화운동을 극중에 다룬 뒤 거센 찬반 논란에 휩싸였다. 일부 시청자가 국회에 방영 중단을 요구하는 청원까지 올렸지만, 시청률은 오히려 자체 최고치를 경신했다.

지난 24일 방송된 '닥터X' 6회에서는 5·18 민주화운동 당시 총상을 입은 환자의 이야기가 그려졌다.

이날 계수정(김지원)은 머리에 총알이 박힌 채 살아온 오상범(하성광)의 수술을 맡게 됐다. 오상범은 12세 나이에 형을 잃고 머리에 총알이 박힌 채 평생 통증과 환각에 시달리는 인물로,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시신조차 찾지 못한 형을 그리워하며 죄책감 속에 살아왔다.

극 중에서는 당시 시민들이 겪은 참상과 헬기 사격을 둘러싼 이야기가 등장했다. 오상범의 회상 장면을 통해 당시의 비극을 보여주는 한편, 피해자들이 겪은 고통과 트라우마도 비중 있게 다뤘다. 계엄군의 헬기 사격은 2018년 국방부 5·18 특별조사위원회 조사에서 사실로 확인된 바 있다.

극 중 단체 '목련회'는 오상범의 머리에 남아 있는 총알이 당시 군인들의 헬기 사격을 입증할 결정적 증거가 될 수 있다며 수술을 요청했다. 극은 이들의 접근에 정치적 계산도 얽혀 있다고 묘사했다. 그러나 수술은 실패 시 사망이나 식물인간 위험이 따르는 고난도 수술이었고, 병원 내부의 이해관계까지 얽히면서 계수정은 어려운 선택을 해야 했다.

극 후반부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을 연상시키는 가상의 인물 지두석 전 대통령이 의식불명 상태로 헬기를 통해 병원에 이송됐고, 피해자 오상범과 가해자로 묘사된 지두석이 한 공간에서 마주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회차에는 1980년 광주를 배경으로 한 회상 장면, 시민들의 일상에 최루탄이 터지는 장면, 극 중 인물이 5·18 다큐멘터리를 시청하는 장면 등이 담겼다. 등장인물이 518번 버스를 타고 국립5·18민주묘지로 향하는 장면도 나왔다.

이 버스 번호를 두고 일부 시청자는 의도적인 상징 장치라고 비판했지만, 518번은 실제 광주에서 운행 중인 시내버스 노선이다. 국가보훈부 국립5·18민주묘지 안내 페이지는 찾아오는 길로 시내버스 518번 이용을 안내하고 있으며, 광주시는 올해 5월에도 참배객이 몰리는 18일 국립5·18민주묘지행 518번 시내버스를 기존 10대에서 12대로 증차했다. 온라인에서는 버스 번호를 근거로 작가의 출신 지역을 추측하는 등 지역 비하성 발언이 나왔다.
출처 = 스레드 캡처
출처 = 스레드 캡처
방송 당일 국회전자청원 국민동의청원 게시판에는 'SBS 닥터X 드라마 방영중단에 관한 청원'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6회에 극 내용과 무관한 5·18 관련 내용이 나와 시청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며, 아픈 역사라는 점은 알지만 정치적 논쟁이 있는 사안을 의사 드라마에 활용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청원인은 원작 일본 드라마가 의사 개인의 능력에 초점을 맞춘 것과 달리 한국판에 관련 내용이 들어간 것은 특정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기 위한 끼워 맞추기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제작진을 국회 증인으로 채택해 기획 과정을 검증하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등 심의 기관의 철저한 조치를 요구했다.

해당 청원은 하루 만에 공개 전 찬성 요건인 100명을 채워 공개 여부 검토 단계에 들어갔으며, 현재 동의 절차는 일시 제한된 상태로 검토에는 최대 7일이 걸릴 전망이다.

온라인 반응도 갈렸다. SBS 공식 유튜브 채널의 관련 영상에는 비판 댓글이 이어졌는데, "갑자기 5·18?"이라는 짧은 댓글에 230여 명이 공감했고, 5·18을 다루고 싶다면 별도의 5·18 드라마를 만들면 된다는 의견도 나왔다.

반면 청원은 지나치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재미없고 개연성이 없으면 하차하면 되지 방영 중단 청원까지 하느냐는 반응이 대표적이다. 청원이 5·18을 '정치적 논쟁이 있는 사안'으로 규정한 데 대해서도 반발이 나왔고, 문제는 개연성이지 5·18 자체는 이미 옳고 그름이 결론 난 사건이라는 댓글도 달렸다.

호평도 이어졌다. 역사적 비극이 개인의 삶에 남긴 트라우마를 치유하려는 의사의 사명감과 휴머니즘을 깊이 있게 담아냈다는 찬사가 나왔다. 일부 누리꾼은 최근 영화와 드라마를 둘러싼 이념 논란을 거론하며 일부 시청자의 정치적 잣대를 비꼬았다.

방송 직후 책임 프로듀서(CP)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문구도 관심을 끌었다. '닥터X'를 제작한 이옥규 스튜디오S CP는 지난 24일 드라마 포스터와 함께 "no fear(두려움 없다)"라는 글을 게시했다. 다만 이 CP는 문구의 구체적인 의미를 밝히지 않았다.

이 CP는 스튜디오S 소속으로, 앞서 '모범택시', '악귀', '재벌X형사', '지옥에서 온 판사' 등 사회문제를 소재로 한 장르물을 제작했다.

논란 속에서도 '닥터X'는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했다.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닥터X' 6회는 전국 가구 기준 19.5%, 수도권 기준 19.2%를 기록했다. 5회 17.5%에서 2.0%포인트 뛰어오른 수치로, 분당 최고 시청률은 21.3%까지 치솟았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