村奴餉新栗(촌노향신률), 徐居正(서거정) [한시공방(漢詩工房)]
村奴餉新栗(촌노향신률), 徐居正(서거정) [한시공방(漢詩工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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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
村奴餉新栗(촌노향신률)

徐居正(서거정)

栗子秋深顆顆香(율자추심과과향)
剝來肥軟味尤長(박래비연미우장)
兒孫爭覓還相笑(아손쟁멱환상소)
爐火燒黃滿意嘗(노화소황만의상)

[주석]
* 村奴(촌노) : 시골 종. 본가에 사는 노비나 외거노비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 餉(향) : <먹을 것을> 보내주다. / 新栗(신률) : 햇밤.
* 徐居正(서거정) : 조선(朝鮮) 전기의 문신이자 학자로 자는 강중(剛中)이고 호는 사가정(四佳亭)이다. 문집에 『사가정집(四佳亭集)』, 『동인시화(東人詩話)』 등이 있다. 여섯 왕을 섬기며 45년간 대제학(大提學), 대찬성(大贊成) 등의 벼슬을 지냈다.
* 栗子(율자) : 밤. ‘子’는 명사 뒤에 붙는 접미사로 뜻이 없다. / 秋深(추심) : 가을이 깊다. / 顆顆(과과) : 알알이, 낱낱의 알맹이마다. ‘顆’는 둥글고 작은 알갱이를 세는 단위이다. / 香(향) : 향기롭다. 여기서는 밤이 잘 여물어 냄새가 좋은 것을 말한다.
* 剝來(박래) : <껍질을> 벗겨 놓다, <껍질을> 깎다. ‘來’는 동작 뒤에 붙어 결과나 완료를 나타내는 조사로 쓰였다. / 肥軟(비연) : 살찌고 연하다. 알이 굵고 속살이 연한 것을 말한다. / 味尤長(미우장) : 맛이 더욱 좋다.
* 兒孫(아손) : 아이들. 자식과 손자를 아우르는 말로, 집안의 어린 식구들을 가리킨다. / 爭覓(쟁멱) : 다투어 찾다. / 還(환) : 도리어, 다시. / 相笑(상소) : 서로 웃다, <나를 보고> 웃다. ‘相’은 서로라는 뜻 외에 한쪽이 상대에게 행하는 동작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리하여 번역에서는 ‘날 보고 웃더니’로 풀었다.
* 爐火(노화) : 화롯불. / 燒黃(소황) : 노랗게 굽다, 불에 구워 노랗게 익히다. / 滿意(만의) : 마음에 흡족하다, 뜻에 가득 차 하며 좋아하다. / 嘗(상) : 맛보다, 먹다.

[태헌의 번역]
시골 종이 햇밤을 보내주다

밤톨이 가을 깊어 알알이 향기로운데
깎아 놓자 살찌고 연해 맛이 더욱 좋구나
아이들이 다투어 찾고 다시 날 보고 웃더니
화롯불에 노랗게 구워 좋아라며 먹는구나

[번역노트]
햇밤의 노란 온기와 글자의 무게

가을이 깊어지면 마음보다 먼저 손끝이 서늘해지고, 그 서늘함 끝에서 문득 그리워지는 풍경들이 있다. 붉게 익은 감나무 아래나 푹 익은 알밤이 탁 소리를 내며 껍질을 버리는 가을 산자락의 정취 같은 것 말이다. 조선 전기의 대문장가이자 대시인인 사가정(四佳亭) 서거정(徐居正) 선생의 시를 읽다가 문득 따스한 화롯불의 온기가 느껴져 새삼 손을 얹어보게 된다.

밤은 본래 그 자체가 향을 내뿜는 과일은 아니다. 더구나 딱딱한 겉껍질을 까기 전의 밤을 두고 ‘향기’를 이야기하는 것은 엄밀히 말해 어불성설에 가깝다. 그렇다면 시인이 이 사실을 모르고 밤이 향기롭다고 했던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맛을 얘기하기에 앞서 향기를 먼저 끌어옴으로써 먹음직스럽다는 사실을 시각과 감각으로 미리 형상화시킨 것으로 이해된다.

흔히 코가 막히면 음식 맛을 모른다고 한다. 이른바 ‘향미(香味)’라는 말은 단순히 ‘향기와 맛’이라는 평렬적(平列的) 결합이라기보다, ‘향기로운 맛’ 그 자체를 의미한다. 무엇인가가 맛있다고 느낄 때 그 맛이 향기롭게 여겨지는 것은, 실제로 무슨 대단한 향기가 나서가 아니라 그 음식에 담긴 풍미와 정성이 마음에 감돌기 때문이다. 물론 시인이 제1구에 ‘香(향)’ 자를 사용한 것은 운율을 맞추기 위한 압운(押韻) 문제와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이어지는 구절에서 시인은 껍질을 벗겨낸 생밤의 과육이 많고 육질이 부드러움을 말하였다. 사실 밤 가운데는 햇밤임에도 불구하고 이빨이 잘 안 들어갈 정도로 딱딱한 밤도 있다. 육질이 부드럽고 과육이 탄탄한 밤이 달콤한 맛까지 겸하고 있다면, 늦가을 간식거리로서는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아마 없지 않을까 싶다.

그런 생률(生栗)의 맛을 이미 익히 잘 알고 있었을 아이들이 다투어 밤을 찾는 것은 결코 놀라운 광경이 아니다. 필자 역시 어린 시절에 화롯가나 툇마루에서 밤을 다투어 집어 들고 까서 먹었던 경험이 있기에, 그 아이들의 심리를 모를 리가 없다.

아이들이 할아버지인 시인에게 내보인 천진한 웃음은 “밤을 더 주세요.”라는 말과 동의어이다. 세상의 그 어떤 엄숙함도 아이들의 무구한 웃음 앞에서는 무너지기 마련이다. 임금님의 존엄조차 아이의 웃음 앞에서는 무력해지거늘, 할아버지의 근엄함 정도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더 나아가 화롯불에 ‘밤’을 굽도록 한 것은 당연히 시인이 아이들을 위해 배려한 따뜻한 조치였을 것이다. 톡톡 소리를 내며 노랗게 터진 구운 밤을, 아이들이 그 작은 손에 올려두고 호호 불어가며 맛있게 먹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 — 시인에게 이보다 더 흐뭇한 풍경이 어디에 있겠는가! 송(宋)나라 구양수(歐陽修)가 「취옹정기(醉翁亭記)」에서 언급했던, “그들이 즐거워하는 것을 <보고 내가> 즐거워한다.”는 ‘락기락(樂其樂)’의 경지가 바로 이 정겨운 화롯가의 풍경에 그대로 녹아 있다.

그러나 이처럼 정감 어린 시상(詩想)을 감상하다가도, 시의 제목에 시선을 머물려 두면 묘한 아쉬움과 함께 마음 한구석이 묵직해진다.

시인은 이 시의 제목을 ‘村奴餉新栗(촌노향신률)’, 곧 ‘시골 종이 햇밤을 보내주다’로 적었다. 밤을 누가 보내왔는지 그 객관적 사실을 밝히기 위함이었다 하더라도, 이는 시의 격을 높이는 데는 오히려 감점 요인으로 작용하고 말았다. 왜 그럴까?

첫째로, 시 본문 4구 어디에도 ‘村奴’에 관한 언급이나 감회가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이는 시제(詩題:시의 제목)와 시 본문의 긴밀한 유대(紐帶)을 강조하는, 이른바 ‘절제(切題)’라는 것을 중시하는 작시 전통에 비추어 볼 때 상당히 심각한 과오로 여겨진다.

‘절제’란 시제의 취지에 잘 들어맞게 시 혹은 시구를 구성하는 것을 일컫는다. 시인이 시제에서 본의(本意)를 표명하고 시의 편장(篇章)을 제목에 의거하여 엮어가며, 자구(字句) 또한 시제에 유의하여 적어낸다면, 전체 시는 물론 개별 시구도 제목에 자연스럽게 부합하게 되는 것이 자명한 이치이다.

둘째로, 정서적인 측면에서의 불협화음이다. 만약 제목에서 노출시킨 것이 ‘村奴’가 아니라 ‘鄕友(향우)’였다면 어땠을까? 시골 친구가 보내온 그 따뜻한 마음씨와 밤의 달콤한 맛이 상승작용을 일으켜, 마침내 읽는 이의 마음을 한없이 부럽고 따스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村奴’라는 표현을 명시함으로써, 제법 따가웠을 가을 햇살 아래에서 밤을 수확하여 한양(漢陽)의 상전에게 올린 시골 종의 고단함과 그 노역(勞役)이, 밤의 달달한 맛이나 화롯가의 정겨운 풍경과 묘하게 대비가 되게 하였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역자는 시를 읽는 내내 마음이 편하지 못하였다. 물론 시인이 의도적으로 그런 대비를 만든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후대의 독자들에게는 은연중에 신분제의 씁쓸한 그림자로 읽힐 수도 있을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시의 제목을 어떻게 붙였어야 했을까? 역자라면 평범하면서도 여운을 남기는 ‘新栗見餉(신률견향)’, 곧 ‘햇밤을 받고’ 정도로 했을 듯하다. 밤을 보내준 사람의 신분이나 존재를 굳이 드러내지 않고 숨김으로써 시의 언어를 낭비할 필요도 없고, 독자에게는 “누가 이 맛있는 햇밤을 보내왔을까?”라는 궁금증을 유발하게 하여, 시의 여운을 훨씬 더 길고 깊게 끌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문학에서는 때로 ‘말하지 않음’이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법이다.

시론(詩論)에서는 흔히 “한 글자가 시의 눈[詩眼]이 되기도 하고, 한 글자가 시 전체의 격조를 떨어뜨리기도 한다.”고 한다. 한 글자나 한 단어가 시의 격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결코 모르지 않았을 사가정 같은 대가(大家) 또한 이런 아쉬운 실수를 범했을진대, 그렇고 그런 소가(小家)들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소가 가운데 소가일 뿐인 역자가 무단히 대가의 사소한 티끌을 억지로 불어 찾아낸 듯하여 부끄럽고 두려운 마음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화롯불 속에서 노랗게 익어가는 햇밤을 아이들에게 꺼내주며 허허 웃고 있었을 한 늙은 시인의 눈빛만은 5백 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따스하게 다가온다. 시의 작은 허물마저 녹여내는 것은, 결국 그 시 속에 흐르는 인간을 향한 원초적인 애정과 따뜻한 시선이 아닐까 한다. 오늘 밤, 가을이 깊어가는 길목에서 노랗게 익은 밤 한 알을 베어 물며 시인의 그 따스했을 화롯가를 가만히 추억해 본다.

오늘 소개한 서거정 선생의 시 「촌노향신률」은 칠언절구로 압운자는 ‘香(향)’, ‘長(장)’, ‘嘗(상)’이다.

2026. 10. 27.

<한경닷컴 The Lifeist> 강성위(hansh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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