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셜 네트워크’ 초반에는 메타 창업자인 마크 저커버그가 하버드대 기숙사에서 밤새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는 장면이 나온다. 며칠간의 코딩 끝에 탄생한 사이트가 페이스북의 원형으로 불리는 ‘페이스매시(Facemash)’다. 기숙사 여학생들의 사진을 모아 두 장씩 화면에 띄우고 누가 더 매력적인지 투표하도록 한 사이트다. 이때 개발에 쓰인 프로그래밍 언어가 PHP다. 영화 속 저커버그가 코드를 미친 듯이 입력하는 화면에는 실제 PHP 소스코드가 등장한다.
PHP의 최대 강점은 간편성이다. 머릿속 아이디어를 빠르게 웹사이트로 구현할 수 있고, C++나 자바보다 문법이 직관적이어서 웹 개발 입문자에게 인기가 높다. 로그인과 회원 프로필, 친구 추가 같은 기능도 비교적 쉽게 만들 수 있다. 세계적으로 널리 쓰이는 웹사이트 제작 도구인 워드프레스와 국내 각종 웹게시판 시스템도 PHP를 기반으로 개발됐다. 세계 웹사이트의 상당 부분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엔진인 셈이다.
그런 PHP에서 치명적인 보안 취약점이 발견됐다고 한다. 그제 PHP 개발진은 PHP에서 해커가 로그인 없이도 외부에서 웹사이트 운영 서버에 악성 명령을 실행할 수 있는 보안 취약점 2건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세계 웹사이트의 약 70%가 PHP를 사용한다는 추산까지 있는 만큼 파장이 작지 않다. 국내에서도 PHP를 사용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서버가 약 11만2000개에 이르는 데다 구형 버전이 적지 않아 우려가 크다. 특히 오래된 쇼핑몰이나 영세 웹사이트는 보안 인력이 부족하고 업데이트도 늦어 취약점에 장기간 노출될 수 있다.
이번 PHP 보안 허점을 찾아내는 데 인공지능(AI)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한다. 수십 년간 잠복해 있던 소프트웨어적 결함을 AI가 찾아낸 것이다. 이제 AI는 사이버 보안의 창과 방패가 됐다. 정교해지는 AI 기반 사이버 공격을 막으려면 방어에도 AI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AI가 찾아낸 빈틈을 AI로 메우지 못한다면 AX(인공지능 전환) 사회도 그저 공허한 구호에 그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