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 지켜야 할 관행, 버려야 할 관행
연산군은 1498년 음력 7월 11일 사관 김일손이 쓴 사초(史草)를 가져오라고 명했다. 선왕 성종의 실록을 편찬하던 중 김일손의 기록이 문제가 됐다는 보고 때문이다. 사초는 왕과 신하의 언행을 적은 실록의 기초 자료다. 왕에게조차 보여주지 않는 것이 오랜 관행이었다. 관리들은 이를 깨서는 안 된다고 반대했다. 연산군 역시 뜻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문제 된 부분’만 올리는 절충안을 찾았다.

제출된 사초에는 김일손의 스승 김종직이 쓴 ‘조의제문’이 있었다. 항우에게 살해된 초나라 의제를 애도하는 내용이었지만 연산군의 증조부인 세조의 왕위 찬탈을 비판한 것으로 해석됐다. 김일손을 비롯한 여러 사람이 극형에 처해졌다. 무오사화다. 교훈은 단순하다. 권력자가 기록을 보고 기록자를 벌한다면 누가 권력의 잘못을 그대로 적겠는가.

이후 사초 열람 금지 관행은 남았지만 신뢰까지 복원되진 못했다. 다음 왕인 중종의 실록에는 사관이 왕의 말을 옮겨 적는 데 그치게 됐다는 구절이 나온다. 원칙에 대한 믿음은 한 번의 예외로 무너질 수 있다.

오래 지켜온 관행에는 이유가 있다. 법이 정하지 못한 빈틈을 관행과 상호 존중이 메운다. 할 수 있어도 하지 않는 절제, 의견이 달라도 상대에게 설명하고 협의하는 태도가 사회를 지탱한다. 관행은 사회적 충돌을 막는 완충장치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모든 관행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취임 이후 국가정보원장의 정례 독대 보고를 없앴다. 정보를 보고받는 편리한 통로였지만, 정보기관이 정치권력과 밀착하는 통로가 될 수도 있었다. 이를 막기 위해 편의를 내려놓고 거리를 둔 것이다. 관행을 깨는 일이 오히려 권력의 절제가 되고,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길이 될 수 있다.

문제는 눈앞의 관행이 ‘안전판’인지 ‘특권’인지 구별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독립성을 지킨다며 고수하는 관행이 실은 책임을 피하는 수단일 수 있다. 반대로 효율을 높인다며 없애려는 관행이 꼭 필요한 견제 장치일 가능성도 있다.

대법관 제청을 둘러싼 갈등도 이런 문제를 드러낸다. 대법원과 대통령 측이 후보를 사전에 조율한 뒤 대법원장이 대통령을 만나 제청하던 관행은 사법부와 행정부의 충돌을 줄이는 장치였다. 이번엔 관행을 깨고 서면 제청이 이뤄졌다는 것이 쟁점이었다. 대법원장의 일방적 통보를 비판할 수 있다. 반대로 대통령 측이 동의할 때까지 제청을 미뤄야 한다면 협의 관행이 사실상 거부권이 된다는 우려도 나온다. 사전 조율이 어디까지 필요하고 언제 각자의 판단에 따라 권한을 행사해야 하는지 그 경계는 분명하지 않다.

국무회의에 참석한 중대범죄수사청장의 사례도 같은 질문을 던진다. 행정부에 속한 기관의 장이 국무회의에 참석해 정부 정책을 논의하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는 권력자들과 정례적으로 마주하는 모습은 독립성에 대한 의심을 낳을 수 있다. 수사기관의 공정성은 실제로 외압을 받지 않는 것뿐 아니라 외압으로부터 자유롭다고 믿을 수 있는 환경과도 관련된다. 절차를 바꿀 권한과 변화를 납득시킬 책임은 별개다.

변화의 영향이 다음 권력까지 이어진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미국 상원에서 소수당의 필리버스터를 끝내려면 과반보다 많은 60표가 필요했다. 2013년 다수당이던 민주당은 기존 규칙의 적용을 다수결로 뒤집는 ‘핵 옵션’을 동원해 연방대법관을 제외한 대통령 지명인사 인준안의 토론 종결 요건을 단순 과반으로 낮췄다. 2017년에는 다수당인 공화당이 같은 방식으로 연방대법관 인준안의 토론 종결에도 단순 과반을 적용했다. 오늘 상대의 방어선을 돌파하기 위해 만든 길은 내일 상대가 걸어올 길이 된다.

관행을 지키는 것이 언제나 신중함은 아니다. 반대로 깨는 것이 언제나 용기도 아니다. 어떤 파괴는 불필요한 특권을 걷어낸다. 어떤 파괴는 신뢰를 지탱하던 기둥을 무너뜨린다. 역사는 훗날 둘을 구분할 것이다. 하지만 결과를 감당하는 것은 현재의 우리다. 관행을 깨는 결단에는 권한을 행사했다는 설명뿐 아니라 그 권한을 어떻게 절제했는지에 대한 설명도 따라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