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하루키가 3년 만에 내놓은 장편소설 <가호>는 소개팅 자리에서 상대방이 던진 모욕적인 말로 시작한다. “솔직히 그쪽처럼 못생긴 상대는 처음이군요”.

스물여섯 살 여성 그림책 작가인 가호는 화를 내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기보다, 그가 대체 무슨 뜻으로 이런 말을 하는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자기 외모의 미추(美醜)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본 적 없었던 가호는 낯선 평가에 당혹스럽다. 더군다나 그 남자는 어쩔 줄 몰라 하는 자신의 속마음까지 꿰뚫어 보고 있다.

모든 기이한 일들이 벌어진 것은 그와 만난 다음부터였다. 갑자기 개미핥기가 찾아와 도시 외곽의 무사시사카이로 이사 가야 한다고 말하고, 재규어와 흰개미 여왕이 어머니를 포함한 주변 사람의 몸에 깃들어 삶을 통째로 뒤흔들어 놓는다.

이번 소설에서 처음으로 여성을 단독 주인공으로 삼은 하루키는 모녀 사이의 복잡한 감정을 그려낸다. 가호가 겪는 모든 일의 중심에는 그와 어머니의 관계가 놓여 있다.

가호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와 ‘미묘하게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살아왔다. 대놓고 대립한 적은 없지만 깊은 속마음을 나누는 사이도 아니었다. 가호가 느끼기에 어머니에게 그는 ‘의사가 되지 못한 신통찮은 딸’일 뿐이었다.

그런데 흰개미 여왕이 어머니의 몸을 가로채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가호는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조금 불편한 어머니지만 그렇다고 잃고 싶지는 않은 심정이다. 그를 구하려는 과정에서 가호는 어머니를 향한 자신의 복잡한 감정을 서서히 마주한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하루키는 인물들의 입을 빌려 가호에게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거부할 것인지 거듭 묻는다.

기이한 존재가 왜 자신을 노리는 거냐는 질문에 우군인 개미핥기 부인은 “이건 당신 자신의 세계 속 이야기이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그는 “당신은 밀려드는 그것들 가운데서 어떤 것은 기꺼이 받아들이고 어떤 것은 단호히 제거해야만 한다”며 “판별해서 좋은 이야기를 만드는 것, 그게 당신의 역할”이라고 충고했다.

작품을 관통하는 것은 여기서 개미핥기가, 그리고 가호의 삼촌과 소개팅 남성이 직간접적으로 꺼내는 독일 철학자 발터 벤야민의 철학이다. “진정한 이야기란 눈에 보이는 형태로든 감춰진 형태로든 반드시 어떤 유용성을 포함한다.”

소설은 의도적으로 가호가 겪는 일과 그가 쓰는 그림책 이야기를 번갈아 보여준다. 그가 이어가야 하는 그림책 줄거리 속 주인공 소녀 미소라는 가족에게 버림받은 채 깊은 숲에 남겨져 있다.

가호는 자기 일로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이 아이를 잊지 않는다. 자신이 만든 인물이 돌아갈 길을 찾아줘야 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그쪽처럼 못생긴 상대는 처음" 하루키의 신작 <가호>
이는 자기 삶이라는 이야기 속 그에게도 해당하는 말이다. 자기 삶의 문제를 풀어야 하는 사람과 등장인물의 앞날을 고민하는 작가의 모습이 포개진다.

작품에는 개미핥기, 재규어 등 환상적 설정으로 가득하다. 작품 중반부에서 비현실적인 존재들의 잇따른 등장에 혼란스러워하는 가호에게 개미핥기 부인은 이렇게 말했다.

“이건 꿈 같은 게 아닙니다. 진짜 현실입니다. 당신은 그것을 선택했고, 실제로 몸소 살아내고 있어요.”

결말부에서 가호는 어머니에게 닥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의 작품에도 등장하는 고양이 ‘스칼릿 조핸슨’의 말을 따른다.

문제를 부지불식간에 처리했던 앞선 사건에서와는 달리 여기선 흰개미 여왕이 아닌 자기가 만들어낸 고양이의 말을 스스로 선택하고 결단을 내리는 모습을 보인다.

다만 가호가 어머니의 불륜 가능성에 집착하는 대목에서는 여성을 바라보는 남성적 시각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아쉬움도 남는다.

최한종 기자 onebe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