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REUTERS·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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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반도체 수출 통제에도 중국 빅테크들의 엔비디아 제품 주문이 이어지고 있다. 최첨단 인공지능(AI) 반도체를 구하기 어려워지자 성능이 낮아도 수출 규제를 충족하는 그래픽카드를 찾는 주문이 몰렸다. 중국 기업들이 겪는 '반도체 조달난'은 스마트폰용 D램으로도 번진 상황이다.

로이터통신은 20일(현지시간) 소식통들을 인용해 바이트댄스·알리바바·텐센트가 엔비디아 신형 'RTX PRO 5500' 그래픽카드를 300만장 넘게 주문했다고 전했다. 장당 가격은 약 1만1400달러. 표시가격 기준 전체 주문 규모는 350억달러를 웃돈다.

이 제품은 대규모 데이터센터보다 고성능 전문가용 컴퓨터에 쓰도록 설계된 워크스테이션용 칩이다. 다만 중국 고객이 구매할 수 있는 엔비디아 제품 중에서는 성능이 높은 편이다. 블랙웰 기반 데이터센터용 B300은 대중국 판매가 금지됐고 호퍼 기반 H200 수출은 개별 심사·허가 조건을 적용받는다.

중국 기업들은 주로 AI 추론에 활용하려는 것으로 전해졌다. 추론은 학습을 마친 모델이 챗봇 답변 등을 생성하는 과정으로 대규모 데이터를 학습할 때보다 연산 능력이 덜 요구된다. 여기에 고성능 칩 수출 허용에 대한 기대가 약해지고 연산 자원이 계속해서 부족하자 대체 제품의 매력이 커졌다는 설명이다.

엔비디아가 당장 이 같은 주문을 모두 소화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중국 고객들의 전체 주문은 600만장을 넘어섰지만 엔비디아가 제시한 내년 전 세계 생산 가능 물량은 최대 300만장. 한 소식통은 일부 협력사가 요청 물량 중 5~10%만 받을 수도 있다는 안내를 받았다고 전했다. 초기 샘플은 오는 12월, 상업용 공급은 내년 1분기 시작될 예정이다. 성능이 비슷한 RTX 6000D는 단종됐고 중국 시장 가격은 두 배로 올랐다.

엔비디아는 내년부터 대만 TSMC에서 확보한 생산능력 가운데 상당 부분을 차세대 대규모 데이터센터 플랫폼인 루빈에 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제품 수요뿐 아니라 생산 우선순위도 공급 제약의 배경으로 꼽힌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미국 규제로 중국 AI 데이터센터용 칩 시장 점유율이 사실상 독점 수준에 이르다가 최근 거의 사라졌다고 설명했다. 다만 규제를 충족하는 제품을 찾는 수요는 여전히 높다.

중국은 자국산 칩 사용을 장려하고 있다. 화웨이가 자국 시장에서 점유율을 확대한 것이 대표적이다.

엔비디아 대변인은 중국 워크스테이션용 칩·카드 생산업체들이 "2022년 이후 전례 없는 성장"을 경험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미국 기업들은 거의 5년 전에 출시된 게임용 제품까지 포함하는 낡은 미국 수출 통제와 중국 자체의 미국산 제품 수입 제한이 결합된 제약을 계속 받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중국 칩 업체들은 첨단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해외 장비 접근 제한 등의 영향으로 미국 선두 업체 제품을 따라잡는 데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국 기업들의 반도체 조달난은 그래픽카드에 그치지 않는다. 이날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이 보급형 모델에 재활용 D램을 채택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글로벌 메모리 업체들의 생산능력이 AI 서버용 고대역폭메모리(HBM)와 서버 D램에 집중되면서 범용 모바일 D램 공급이 빠듯해진 영향이다.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은 메모리 가격 급등과 공급 불확실성으로 올 2분기 이후 사업 목표치를 대폭 낮췄으나 3분기 말부터 생산 목표를 다시 높이고 있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공급업체들은 여전히 서버용 제품 비중을 우선시하고 있고 스마트폰 업체들의 LPDDR 공급 부족은 내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봤다. 생산 목표 상향은 메모리 공급이 개선됐기 때문이 아니라 재활용 D램 채택이 늘어난 데 따른 변화란 설명이다.

재활용 D램은 기존 스마트폰·PC·서버에서 떼어낸 칩을 기본 검사 후 새 제품에 다시 납땜해 조립한 메모리다. 미국 대형 데이터센터가 폐기한 DDR4 모듈도 재활용 공급망에 유입될 수 있다. 이미 5~6년 사용한 칩을 추가로 5~6년 쓰는 경우도 있다. 노후화로 데이터 보존 특성이 나빠져 오류 위험이 커지는데도 일부 업체는 재활용 D램만 넣은 보급형 모델 출시를 검토하는 중이다.

김대영 한경닷컴 기자 kd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