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손자회사인 솔리다임의 미국 나스닥시장 상장 추진을 두고 중복상장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도 지난 19일 국정감사에서 “중복상장 규정에 저촉된다”고 발언하면서 금융당국이 솔리다임의 기업공개(IPO) 절차에 개입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시장에선 솔리다임의 나스닥시장 상장이 SK하이닉스 주식 가치를 희석할 것이라는 비판과 해외 자금 조달이 SK그룹의 반도체 사업 확장의 계기가 될 것이라는 반론이 동시에 나온다. 솔리다임은 SK하이닉스가 2021년 인텔의 낸드플래시 및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사업을 인수하며 출범한 회사다.
◇SK하이닉스 지분 가치 하락하나
솔리다임 IPO가 논란이 된 핵심 요인은 SK하이닉스 주주의 지분가치 하락 우려다. 솔리다임이 상장하면 SK하이닉스와의 기업가치 중복 계산으로 기업가치가 떨어지는 ‘더블 카운팅’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존에 SK하이닉스 주주에게 온전히 귀속되던 솔리다임 순이익이 IPO 이후 다른 주주에게도 분배된다는 것 역시 IPO 반대론의 또 다른 논거다.
재무상 수치로 봤을 때도 솔리다임이 SK하이닉스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작지 않다. 한화투자증권에 따르면 SK하이닉스의 전체 기업가치 중 솔리다임이 차지하는 비중은 12.9%다. 솔리다임 모회사 AI컴퍼니의 올 상반기 순이익은 5조8400억원으로 SK하이닉스 전체의 4.3% 수준에 불과하다. 하지만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9.3%로 10%에 육박한다.
다만 증권가에선 솔리다임의 IPO가 신주발행 형태로 이뤄지면 SK하이닉스의 기업가치 상승에 기여할 것이란 반론도 나온다. 신주발행이 ‘자금 조달→생산능력 확대→인공지능(AI) 투자 수요 대응→실적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구주매출에 나선다고 해도 SK그룹의 주주환원 전략 등에 따라 SK하이닉스 주주에게 득이 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박세연 한화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구주매출에 나선다면 매각 대금이 주주환원 재원으로 적절하게 쓰이는지가 관건”이라고 짚었다. 지난해 10월 구주매출로 인도법인을 인도 증시에 상장한 LG전자는 주가가 오히려 올랐다.
◇금융당국·정치권 개입도 변수
금융당국이 솔리다임의 IPO에 얼마나 개입하는지도 변수다. 금융당국이 솔리다임 상장에 관여할 수 있는 방법으론 크게 ‘모회사(SK하이닉스)의 주주 동의 여부’와 ‘솔리다임의 증권신고서 제출’ 등 두 가지가 꼽힌다.
이 중 증권신고서 제출은 가능성이 낮은 시나리오로 거론된다. 시장에선 ‘증권의 발행 및 공시 등에 관한 규정’을 근거로 금융당국이 솔리다임의 증권신고서 제출을 압박할 수 있다는 해석이 제기됐다. 이 규정에 따르면 외국 기업이 해외에서 증권을 발행하더라도 국내 법인·개인의 지분율이 20% 이상이라면 국내 금융당국에 증권신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하지만 솔리다임을 직접 지배하는 회사가 SK하이닉스가 아니라 미국 법인인 AI컴퍼니인 만큼 이 같은 규정을 적용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다. 국내 금융당국이 해외 IPO에 개입한다는 반론도 피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당정이 ‘해외 상장 시 모회사 주주 동의’와 관련해 규제를 강화하는 쪽으로 대응할 가능성에 힘이 실린다. 물적분할 자회사와 달리 솔리다임처럼 모회사가 지분을 취득한 기업의 IPO를 추진할 땐 주주 동의가 의무가 아니라 권고 사항이기 때문이다.
다만 중복상장 규제를 강화하면 글로벌 스탠더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반론도 함께 나온다. 일례로 홍콩거래소는 지난 9월 중복상장 규제를 일부 완화하는 안을 발표했다.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대형 상장사를 대상으로 거래소 사전 승인 요건을 완화하고 모회사 상장 후 분리상장 제한 기간을 3년에서 1년으로 줄이는 것이 골자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홍콩은 중복상장 규제를 제도화한 대표적인 곳이어서 한국 당국에서도 많이 참고한 사례”라며 “홍콩의 최근 제도 변화 움직임은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