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후면 집마다 로봇 가사도우미?"…1세대 테크 VC의 일침 [인터뷰+]
“벤처투자시장에서도 5년 정도 지나면 가정집에 휴머노이드 로봇 가사도우미가 한 대씩은 들어가 있을 것이란 막연한 기대가 형성돼 있습니다. 산업 현장에서 인간과 협동해 효율성을 높이는 협동로봇의 활용은 고도화되겠지만, 인간 가사도우미와 같은 수준의 로봇 가사도우미가 일반화되는 것까지는 무리라고 봅니다.”

김현진 NH벤처투자 대표는 최근 한경닷컴과 만나 요즘 투자 판단에서 가장 초점을 맞추는 기준이 있느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김 대표는 삼성SDI(당시 삼성전관)의 소재 담당 연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지 6년 만인 2000년 ‘닷컴 열풍’을 타고 벤처투자업계로 넘어온 1세대 테크 벤처캐피털리스트다.

1세대 테크 벤처캐피털리스트…"인터넷도 일상화에 시간 걸렸다"

김 대표는 벤처캐피털리스트 경력 초반 닷컴 버블 당시 경험을 예로 들었다. 당시에도 인터넷이 당장 세상을 바꿀 것이란 기대가 컸지만, 실제 통신 인프라가 구축되고 다양한 서비스가 일상생활에 자리 잡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는 설명이다.

휴머노이드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기술이 발전하는 방향과 그 기술이 산업 현장에 적용되는 속도는 구분해야 한다는 게 김 대표의 생각이다. 특히 로봇이 사람을 완전히 대체하기에 앞서 작업자의 생산성을 높이고 위험한 업무를 대신하는 방향으로 시장이 형성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우리가 기대하는 사람 같은 휴머노이드 단계까지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사람 같은 휴머노이드’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대표적 과제로 로봇의 상황 인지 및 동작 제어 기술의 정밀성이 대폭 높아져야 한다는 점을 꼽았다. 예를 들어 물이 든 용기를 들어 올리는 작업을 하는 로봇팔은 그릇이 쉽게 찌그러지는지 여부, 뚜껑의 유무, 용기에 들어 있는 물의 양 등을 인지하고, 물이 넘치지 않을 정도로 힘을 제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이 있는 △로봇의 움직임을 제어하는 감속기와 액추에이터 △물체를 잡는 그리퍼 △주변 환경을 인식하는 센서 등을 벤처투자가가 주목해야 할 유망 기술로 김 대표는 꼽았다.

“AI는 과거를 분석…인간 VC가 미래를 전망”

기술의 최신 트렌드를 놓치면 안 되는 벤처투자가라는 직업을 AI가 대체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내놨다. 김 대표는 본인도 대규모언어모델(LLM) '클로드'와 '제미나이'를 활용하고 있으며, 투자심사역들의 자료 분석 업무에서도 AI 활용이 확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과거 데이터를 분석하는 능력과 아직 나타나지 않은 미래의 산업구조를 전망하는 능력은 다르다고 봤다.

그는 “현재 AI가 가진 강점은 현재 이전의 것에 대한 정리·체계화는 사람이 따라갈 수 없다”면서도 “정리한 내용을 바탕으로 미래를 전망하는 건 미래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에 대한 철학을 지닌 사람이 할 일”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관점은 실제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 결정에도 적용된다. 김 대표는 투자 여부를 판단할 때 창업자가 그리는 미래와 VC가 전망하는 산업의 미래가 일치하는지를 중요하게 평가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들이 보고 있는 미래가 우리와 같으면 투자를 검토해서 투자할 수 있다"며 “그 비전에 우리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좀 더 적극적으로 투자를 검토한다”고 했다.

'농협이 주인인 VC'…솔닥에 농촌 네트워크 접목

대표적인 사례가 비대면 진료 스타트업 '솔닥'이다. 솔닥은 NH벤처투자로부터 투자를 받은 뒤 농협의 농촌 왕진버스 사업에 참여하며 성장의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농협의 전국적인 농촌 네트워크가 투자기업에 새로운 사업 기회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김 대표는 “농협 입장에서 보면 의료 취약지·사각지대 문제를 해결하는 데 비대면 진료만 한 게 없겠더라”며 솔닥에 대한 투자 결정의 배경을 설명했다. 특히 솔닥에 대한 VC가 투자 기업의 성장을 지원한다는 측면에서도 NH벤처투자와 궁합이 잘 맞았다고 김 대표는 강조했다. 현재 솔닥은 단위농협 마을회관 등에 모인 고령 주민들의 혈압과 혈당, 체온 등을 측정해 의료기관에 전달하는 사업을 진행 중이다.

김 대표는 "얼마 전 솔닥 서비스를 테스트할 때 혈당 수치가 위험 수준인 어르신이 있어 바로 병원으로 옮겨 응급 치료를 받게 한 사례도 있었다“고 소개했다.

"관심 쏠린 기업에 투자해 돈 벌기 힘들어"…포모 투자 경계

투자기업의 성장 지원과 별개로 투자 대상을 선정할 때는 시장의 유행에 휩쓸리지 않는다는 원칙을 김 대표는 강조했다. 유망한 기술을 보유하고 성장 가능성이 높은 기업이라도 지나치게 높은 기업가치에 투자하면 수익을 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그 당시에 제일 핫 회사에 투자한 VC 중 큰 수익을 남긴 VC는 흔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정 기업에 투자 수요가 몰리면 기업가치가 과도하게 높아져 기업이 실제로 성장하더라도 투자자에게 돌아오는 수익은 많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다. 결국 시장의 관심이 뜨거워질 벤처기업을 미리 발굴하고 기다리며 성장을 지원해 수익을 극대화한다는 원칙이 중요하다고 김 대표는 설명했다.

특히 2021년 언택트(비대면) 트렌드를 업고 주목받은 플랫폼 기업에 대한 투자 열풍을 언급하며, VC업계에서도 포모(FOMO·소외 공포) 투자가 이뤄진다고 지적했다. 당시 시장에서 인기를 끄는 기업에 경쟁적으로 투자하면서 적정 기업가치에 대한 판단을 소홀히 한 것이 이후 펀드 성과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설명이다.

스타트업·벤처투자의 성공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도 과장된 측면이 없지 않다고 김 대표는 지적했다. 10개 기업에 투자해 9개가 망하고 1개만 대박을 쳐도 전체 펀드에 엄청난 수익이 남는다는 인식이 있지만, 최근 개별 펀드의 규모가 커지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1할’ 타율로 엄청난 수익을 챙기기는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벤처투자를 야구의 '3할 타자'에 비유했다. 투자기업 10곳 가운데 3곳에서 홈런이나 장타에 해당하는 높은 수익을 거두고, 4~5곳에서는 야구의 희생타처럼 투자원금 정도를 회수하며, 나머지 2~3곳에서 삼진이나 병살타와 같이 손실을 감수하는 수준의 성과를 내면 업계에서 ‘잘 한다’는 소리는 듣는다고 한다.

AUM 62% 키운 NH벤처투자…1000억 모펀드로 영역 확대

벤처기업에 투자할 자금을 마련하는 것도 VC가 갖추고 있어야 할 중요한 역량 중 하나다. 좋은 벤처기업을 발견해도 투자할 재원이 없다면 기회를 놓치기 때문이다.

NH벤처투자의 운용자산(AUM)은 김 대표 취임 전인 2022년 말 2612억원에서 현재 4238억원으로 약 62% 증가했다. 농협금융 계열사의 자본력에 외부 출자기관의 자금을 더하면서 운용 규모가 커졌다. NH벤처투자는 2023년 말 한국성장금융의 위탁운용사로 선정된 것을 시작으로 모태펀드 등 정책 출자사업에 참여하며 외부 자금 모집 기반도 확대했다.

NH벤처투자는 운용자산 확대와 함께 투자영역도 넓힐 계획이다. 오는 11월 1000억원 규모의 'NH 금융 민간벤처모펀드' 결성을 추진하고 있다. 결성이 완료되면 기존 벤처기업 직접투자에 더해 다른 VC가 운용하는 펀드에 출자하는 간접투자 사업을 본격화하게 된다.

농협금융그룹 계열사들의 벤처투자 자금을 결집해 다양한 전문 운용사와 협력하는 것이 핵심이다. 김 대표는 모펀드 운용을 통해 다른 VC들의 관심 분야와 시장 흐름을 폭넓게 파악할 기회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NH벤처투자는 신규 펀드 결성을 통해 올해 운용자산을 5000억원 이상으로 확대하고, 2030년까지 9000억원을 달성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투자 전문인력을 확충하고 AI·반도체·로봇·바이오 등 첨단산업 분야의 투자 역량을 강화할 계획이다.

김 대표는 운용 규모 확대와 함께 투자기업과의 동반성장을 강조했다. 기업에 자금만 공급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업 확장 과정에서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NH벤처투자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좋은 회사에 적정한 밸류로 투자하고, 그 회사를 위해 지원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서, 돈만 투자하는 게 아니라 같이 손잡고 뛸 수 있는 심사역이 모여 있는 조직으로 계속 가야 한다"고 말했다.

한경우 한경닷컴 기자 ca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