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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피지컬 AI, 승부처는 제조다
휴머노이드보다 특화 로봇에 집중
공정 지식·노하우에 AI 결합해야
주영섭 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 특임교수·前 중소기업청장
공정 지식·노하우에 AI 결합해야
주영섭 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 특임교수·前 중소기업청장
로봇을 향한 기대와 현실 사이에는 여전히 상당한 거리가 있다. 휴머노이드 로봇이 공장과 가정에서 곧 사람을 대체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넘치지만, 시연 성공이 현장의 경쟁력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인간에게 어려운 일은 로봇에 오히려 쉽고, 인간에게 쉬운 일은 로봇에 어렵다는 ‘모라벡의 역설’은 여전히 유효하다. 다양한 물건을 정교하게 다루고, 돌발 상황에 스스로 대응하며, 사람과 안전하게 일하려면 언어 지능뿐 아니라 지각·판단·제어 역량이 함께 요구된다. 이런 기술적 난제와 도입·운영 비용을 고려하면 성능, 경제성, 안전성을 동시에 갖춘 범용 로봇의 단기간 내 대중화를 낙관하기는 어렵다.
로봇은 산업용 로봇과 서비스 로봇으로 크게 나뉜다. 가사를 수행하는 범용 휴머노이드 대중화에는 수십 년이 걸릴 수도 있다. 이에 비해 제조 현장은 특정 기능에 특화된 로봇만으로 생산성을 높이고 투자 대비 효과를 확보할 수 있다. 제조 강국인 한국은 축적된 공정 지식과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제조 로봇에 우선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올바른 전략은 정확한 상황 인식에서 출발한다. 한국은 제조업 근로자 1만 명당 로봇 대수인 ‘로봇 밀도’에서 세계 1위다. 그러나 로봇을 많이 쓰는 나라와 잘 만드는 나라는 다르다. 활용의 지표를 기술과 제조 경쟁력의 지표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높은 로봇 밀도에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자동차 등 자동화 집약 업종 비중이 높은 산업구조의 영향이 크다. 이를 근거로 ‘로봇 강국’이라고 오해한다면 전략의 방향을 그르칠 수 있다. 정작 직시해야 할 현실은 외산 로봇과 핵심 부품에 대한 높은 의존도다. 국산 로봇의 저변이 넓어지고 있지만 소재·부품 국산화율은 여전히 40%대에 머물러 있다. 로봇은 거대한 제품 시장이면서 제조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수단이다. 완제품 보급을 넘어 핵심 부품과 소프트웨어, 시스템 통합 역량을 함께 키우는 로봇 생태계 육성이 시급하다.
로봇 열풍의 중심인 휴머노이드에서도 미국과 중국의 선도적 기술 역량을 직시해야 한다. 미국은 AI 소프트웨어, 중국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아우르는 생태계, 일본은 로봇공학과 소재·부품·장비, 정밀제어 기술이라는 강점이 있다. 특히 일본이 자국 강점 분야인 로봇을 중심으로 한 피지컬 AI 국가 전략에 올인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제조업·로봇·센서·제어 기술을 바탕으로 제조 현장 데이터와 AI의 결합을 국가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지난주 도쿄에서 열린 세계 산업AI 콘퍼런스에서 경제산업성은 소니, 소프트뱅크 등 44개 기업이 참여한 합작회사 노에트라와 국책연구기관 AIST가 공동 개발 중인 피지컬 AI의 핵심 모델(멀티모달 파운데이션 모델)의 추진 현황과 계획을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우리는 이들의 전략을 좇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제조 현장에 축적된 공정 지식과 데이터를 AI·로봇 기술에 결합해 한국만의 경쟁 우위를 만들어야 한다. 정책의 관점도 개별 로봇에서 제조 시스템 전체로 넓혀야 한다. 연구개발(R&D) 투자를 대폭 확대하고 로봇 기업과 수요 제조기업, 소재·부품·장비 기업, AI 전문기업이 함께 나서야 한다. 피지컬 AI의 승부는 로봇 한 대가 아니라 제조 시스템 전체의 경쟁력에서 갈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