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부메랑으로 돌아온 "부정선거 재선거" 주장
지난 15일 열린 국민의힘 최고위원회의. 비공개로 전환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문밖으로 장동혁 대표의 고성이 새어 나왔다. 장 대표는 양향자 최고위원을 향해 욕설을 섞어가며 격앙된 목소리를 냈다. 당 관계자들은 “장 대표가 취임한 이후 이처럼 크게 화내는 모습은 처음 본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양 최고위원은 경기 용인갑 조직위원장을 뽑는 과정에서 일부 당원에게 ARS 전화가 가지 않았으니 이는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다를 바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올림픽공원 원칙을 이번 사태에 대입하면 경선 모두를 처음부터 다시 해야 맞다”며 “선거 전수조사, 전면 재선거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 최고위원은 부실경선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로는 재경선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했고, 당은 그가 경선에 불참하자 경쟁자인 윤재복 후보를 16일 조직위원장으로 임명했다.

이번 경선 과정에서 일부 부실이 있었다는 데는 당내 대다수가 동의한다. 그러나 과정이 부실했다는 것과 결과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도 본다. 국민의힘의 한 중진의원은 “선거란 게 100% 완벽할 순 없지만 결과를 바꿀 정도의 부실이 일어나는 경우는 없다”며 “매번 관리 부실을 문제 삼으면 앞으로 있을 총선 경선 때 불복자가 줄줄이 나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양 최고위원의 논리는 낯설지 않다. 장 대표가 올림픽공원에서 ‘부정선거 재선거’를 외칠 때 사용한 바로 그 논리다. 장 대표는 투표용지 사태에 대해 “부실을 의도적으로 방치하는 것이 곧 부정”이라고 규정했다. 또 “별도 입증 없이도 이번 선거는 무효이며 총체적 부정선거”라며 전면 재선거를 주장하기도 했다. 자신이 쓰던 문장이 이제 자신을 향해 돌아온 셈이다. 부메랑은 던진 사람이 가장 먼저 알아본다. 장 대표가 유독 크게 화낸 이유를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장 대표는 올림픽공원에 모인 유권자들의 분노를 대변해 정치적 입지를 넓혔다. 하지만 정치인은 국민의 분노를 대변하는 데서 끝나선 안 된다. 분노라는 강렬한 감정엔 정당한 몫과 과장된 몫이 섞여 있다. 그걸 가려내 정당한 몫만 제도 안으로 끌어오는 것이 정치다. 또 다른 국민의힘 중진의원도 “장 대표가 부실선거와 부정선거를 교묘하게 섞어가며 정치적 입지를 강화할 땐 이런 사태를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이번 일이 터지면서 장 대표도 느끼는 게 많았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과장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가려내지 않은 채 무책임하게 뭉뚱그려 정치적 구호로 쓸 땐 편리하다. 다만 구호는 쓰는 사람을 가리지 않을 뿐. 오늘은 남을 겨누지만 내일은 나를 겨눈다는 것을 이번 일이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