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기술패권 경쟁 격화…'안미경중' 전략 한계
반도체 초격차가 한국 지킬 핵심 자산
노사 갈등·규제 넘어 미래 기술 투자에 집중해야
미·중 패권 경쟁이 안보와 무역 분쟁을 넘어 첨단 기술의 주도권을 다투는 전쟁으로 번지고 있다. '규칙 기반의 질서'가 흔들리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도하는 강대국 정치가 부상하면서 중견국들이 설 자리도 사라지고 있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안미경중)'이란 구호로 성장해온 한국은 이제 무엇으로 살아남아야할까.
신간 <지정학과 실리콘 방패>는 한국의 생존 전략을 모색한 책이다. 32년간 국제정세를 취재한 저자는 그 해법으로 '반도체'를 꼽는다. 그는 반도체를 단순한 수출 효자 상품이 아니라 국가의 경제와 안보를 지탱하는 '실리콘 방패'로 해석한다. 반도체가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높여주는 자산이라는 것이다.
저자가 반도체에 주목하게 된 건 국제 질서가 기본 틀부터 흔들리고 있어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관세와 기술 통제로 중국을 견제하고 있다. 중국은 핵심 광물과 거대한 내수시장을 무기로 맞서고 있다. 안보·경제 전 분야에서 두 패권국간의 경쟁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한국이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 의존해온 기존 전략만으로는 살아남기 어려워졌다고 진단한다.
책은 '규칙 기반의 질서'가 사라진 자리에 트럼프식 강대국 정치가 자리잡고 있다고 강조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촉발된 강대국 정치는 미국·이란 전쟁으로 이어졌다. 미국·이란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강대국 정치의 한계를 드러냈으며, 이는 무역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공급망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고 진단한다.
저자는 한국이 미국과의 기술동맹을 강화하면서도 중국 시장에 대한 의존도를 조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동시에 반도체에서 초격차 기술을 확보해 다른 국가가 쉽게 대체할 수 없는 산업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기술력이 곧 외교적 협상력과 안보 자산이 되는 시대라는 설명이다.
국내 반도체 산업을 둘러싼 논쟁에도 목소리를 낸다. 삼성전자의 노사 갈등과 성과급 배분 문제, 반도체 클러스터의 입지 선정, 주 52시간 근로제 등이 대표적이다. 저자는 정치적 이해관계나 단기적인 이익 배분보다 미래 기술에 대한 투자와 산업 경쟁력 확보가 우선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책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을 지키는 일이 곧 국가의 생존 기반을 지키는 일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반도체의 초격차 기술이 무너지는 순간 우리의 '실리콘 방패'에는 심각한 균열이 생길 것"이라고 경고한다.